[보안뉴스= 김은영 LIG Defense&Aerospace Tech Agile Lab장] 지난 몇 년간 인공지능(AI)의 폭발적 성장은 글로벌 사이버 안보 지형에 뜻밖의 ‘기술적 평평함’을 가져왔다. 과거 바세나르 체제(Wassenaar Arrangement) 아래에서 오펜시브 시큐리티(Offensive Security) 기술은 전략물자로 묶여 수출이 통제됐다. 그 결과 후발국이 선진국의 공방 기술을 따라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성능 생성형 AI와 오픈소스 생태계가 등장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국경 없는 집단지성과 강력한 AI 도구의 대중화는 전 세계 연구자의 취약점 분석·사이버 공방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AI라는 지능형 도구를 통해 후발 주자도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며, 전 세계 오펜시브 시큐리티 역량이 동반 상승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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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스가 멈춘 날, ‘디지털 바세나르’의 전조
이 흐름에 균열을 낸 사건이 2026년 6월 12일 일어났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앤트로픽(Anthropic)의 최신 AI 모델 ‘미토스(Mythos) 5’와 ‘페이블(Fable) 5’에 대해, 미국 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외국인의 접근을 차단하라는 수출통제 지시를 내린 것이다. 회사는 사용자의 국적을 실시간으로 가려낼 수 없어 두 모델을 전(全) 고객에게 즉시 비활성화했다. 지시가 도착한 시각은 그날 오후 5시 21분(미 동부시간)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 조치의 ‘성격’이다. 이는 AI 전반을 겨냥한 수출통제의 출범이 아니었다. 대상은 단 두 개 모델에 한정됐고, 클로드 오푸스(Opus) 4.8 등 다른 모델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계기 또한 한 업체가 모델의 안전장치를 우회(탈옥)했다고 주장한 사안이었으며, 앤트로픽은 이를 ‘오해’로 규정하고 접근 복구를 위해 강하게 다투고 있다. 동일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경쟁사의 사이버 특화 모델은 통제 대상에서 빠졌다. 보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변덕스럽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바로 그 점이 더 서늘하다. 전직 국가안보회의(NSC)·국무부 법률고문조차 이번 조치의 광범위함을 ‘전례 없는 일’로 평가했다. 좁고 논쟁적인, 어쩌면 과잉이라 비판받는 단 한 번의 집행만으로도, 미국은 동맹국 사용자는 물론 자국에서 일하는 외국 국적 직원의 접근권까지 사전 협의 없이 하루아침에 끊을 의지와 수단이 있음을 증명했다. 형식상 바세나르 체제가 ‘부활’했는지를 따지기 전에, 동맹이라면 최고 성능 AI에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암묵적 전제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서 AI는 단순한 분석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취약점을 발굴하고 공격을 설계하는 자율형 무기체계에 가깝다. 실제로 이번에 통제된 미토스의 핵심 가치는 강력한 사이버 보안·취약점 분석 능력이었다. 미국이 특정 AI 모델을 ‘전략물자’처럼 다뤘다는 사실 자체가, 사이버 전장에서 AI 접근권이 곧 전력이 되는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준다. 핵심 AI에 대한 접근이 외부의 결정에 좌우된다면, 향후 AI 기반 사이버 공방에서 우리는 일방적인 정보·전력 비대칭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 단, ‘방패를 든 자’에게만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막연한 공포에 빠질 필요는 없다. AI 통제가 당분간 글로벌 사이버 방어 전선에 혼란을 줄 것은 분명하지만, 위기는 늘 기술의 순기능을 함께 끌어내 왔다.
코로나19 초기 미지의 바이러스 앞에서 두려워했으나 결국 항체를 형성해 냈듯, AI의 위협 또한 국방 보안의 ‘체질 개선 변곡점’으로 삼아야 한다. AI 고도화로 취약점이 대량 노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어 측면에서는 패치 생성·배포 속도, 즉 평균 취약점 해결 시간(MTTR)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순기능이 동시에 작동한다. 구글이 ‘AI 사이버 방어 이니셔티브’에서 제시한 문제의식이 바로 이것으로, 자동화된 AI는 공격자보다 방어자에게 더 큰 이점, 이른바 ‘방어자의 우위’(defender’s advantage)를 안길 수 있다는 것이다. 창이 날카로워지는 속도보다 방패가 견고해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면역 체계가 가능하다.
그러나 결정적 단서가 있다. 그 ‘방어자의 우위’는 그 AI를 손에 쥔 자에게만 발생한다. 미토스 사건이 보여주듯, 핵심 AI에 대한 접근이 끊기면 우리는 공격적 활용은 물론 방어적 가속의 혜택에서도 동시에 배제된다. 결국 두려움을 지우는 힘은 ‘강력한 AI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AI를 누구의 손으로 만드느냐’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의 결단 - 국방 특화 ‘소버린 사이버 AI’에 집중
제2, 제3의 미토스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쏟아질 것이다. 타국의 기술 통제에 매번 흔들리지 않으려면, 대한민국 독자의 소버린 AI 기반 사이버 공방 역량 강화에 국가적 자원을 모아야 한다. 특히 방위사업청이 2026년 1월 5일 제정한 ‘소프트웨어 중심 무기체계 애자일(Agile) 개발 도입·운영 지침’이 여는 새로운 획득 패러다임의 안보를 위해, 국방 특화 하이브리드 공방 모델의 자체 개발. 거대 상용 모델에 의존하는 대신, 보안·취약점 분석 데이터에 특화된 국방 전용 초경량 거대언어모델(sLLM)을 온프레미스로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격 패턴을 사전 시뮬레이션하고 즉시 패치를 적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무기체계 설계·양산 단계에서부터 우리만의 소버린 AI로 실전형 레드팀·블루팀 교전 훈련을 수행하고, 그 전술 데이터를 내재화하는 독자적 ‘학습 루프(Learning Loop)’를 돌려야 한다. 이 학습 루프야말로 기술 장벽을 깨는 열쇠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미토스 통제의 명분 자체가 ‘공격적 사이버 능력의 무분별한 확산 위험’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통제받지 않는 공격 도구의 양산이 아니라, 검증된 안전장치 위에서 우리 무기체계를 스스로 시험하고 지켜내는 방어 중심의 주권적 역량이다. 소버린 역량의 확보와 책임 있는 통제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김은영 LIG넥스원 Tech Agile Lab장 [출처: 본인 제공]
기술 종속의 사슬을 끊는 자립 국방
“창을 빌려 쓰는 군대는 전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미토스가 멈춘 그 하루는, 더 이상 타국의 기술 생태계에 안보를 기댈 수 없다는 분명한 경종이다. 다시 거세질 기술 장벽의 파고 속에서 대한민국이 택할 길은 자국 기술력에 대한 집중 투자를 통한 사이버 안보의 자립이다. 산·학·연·군의 첨단 AI 역량을 국방 공방 영역으로 흡수해, 우리만의 창과 방패를 우리 손으로 쥐어야 한다. 기술 비대칭을 극복하고 책임 있는 소버린 보안 역량을 확보하는 것 — 그것이 2026년 대한민국 국방에서 갖추어야 할 진정한 ‘살아 있는 전투력’이다.
[글_김은영 LIG Defense&Aerospace Tech Agile Lab장]
필자 소개_
·2026.1.1~현재 : LIG Defense&Aerospace Tech Agile Lab장,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자문위원
·2024.10.14~2025.12.31: LIGNex1 기술위원
·2001.3.12~2024.10.13: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실장
·2015.8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공학박사
·한국정보보호학회·한국정보처리학회 이사
·한국사이버안보학회 편집위원 및 위협대응연구회 연구위원
·국기원·IITP·KIST 사이버전 대응 및 미래 국방 전문가 그룹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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