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대비, 대응, 복구를 아우르는 ‘사이버 복원력’, 디지털, AI 시대의 마지막 방어선
[보안뉴스=류종기 한국기업보안협의회 이사] 사이버 공격 뿐 아니라 단순한 시설의 오류나 재해로 인해 대규모 정보서비스 마비가 발생하는 ‘디지털 블랙아웃’ 위험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최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료: gettyimagesbank]
정부의 핵심 전산망을 관리하는 국정자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정부24, 국민비서, 인터넷우체국, 119 신고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647개 업무시스템이 중단됐으며, 주요 서비스의 복구에 한 달 가량이 소요될 수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는 지난 2023년 행정전산망 장애 사고와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에도 여전히 IT시스템 재해복구 체계에 근본적인 허점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특히, 이번 사태는 여러 측면에서 사이버 복원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국정자원 화재 사태가 드러낸 복원력의 부재
이번 국정자원 화재는 재난 대응 및 복구 역량의 핵심 요소들이 부족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먼저, 행정·공공 정보서비스의 마비는 하나의 ‘단일장애지점(SPOF, Single Point of Failure)’에서 시작되어 전체 서비스 장애로 확산될 수 있다. 국정자원과 같이 다수의 공공·정부 시스템이 집중된 시설의 마비는 곧 정부 기능 전체의 마비로 이어지는 정보 집중화 위험을 보여준다. 이는 재해복구 시스템의 이중화 및 실시간 백업 체계 미흡이 낳은 결과이며, 시스템의 중복성(redundancy) 원칙이 설계와 구축, 운영 모든 단계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또한, 사이버 복원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고 발생 시 영향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복구해 더 강한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자원 화재는 과거 약속했던 ‘3시간 이내 복구’ 목표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복구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예방에 치중하고 대응 및 복구 역량 확보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한다. 나아가 신속한 대응을 위한 초동 조치와 위기 커뮤니케이션 계획, 그리고 위기 대응 조직의 역할 수행에 대한 허점도 다시 한번 노출됐다.
새롭게 부상하는 위험: 디지털 블랙아웃 위험과 영향
9월 11일 국가재난안전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정보서비스의 복잡·다양화에 따른 디지털 블랙아웃’은 ‘디지털 블랙아웃’의 위험 요소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국정자원 화재가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듯이 첫째, 인프라 위협은 주요 위험 요소 중 하나다. 화재는 물론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침수, 한파 등 외적 위협 요인이 증가하며, 물리적 피해가 시스템 마비를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유럽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의 데이터센터 화재로 360만 개의 웹사이트가 마비된 사례는 인프라 위험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둘째, 정보 집중화 위험이다. 공공 분야에서도 클라우드 기반의 구축·운영 사례가 증가하며,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클라우드 서비스 장애는 건강·의료, 항공, 금융 등 다양한 서비스를 동시에 마비시키는 사례를 발생시킨다.
셋째, 시스템 간 연계 심화에 따른 시스템 충돌 위험이다. 시스템 간 연계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하드웨어(H/W) 및 소프트웨어(S/W) 오류는 대규모 서비스 중단을 초래할 수 있다. 공공 및 민간 데이터의 상호 활용과 정보서비스 간 연계가 활발하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 주요 배경이다.
넷째, 구축·운영 역량 위험이다. 대형화된 정보시스템의 정교한 구축 및 관리를 위해 기술력 중심의 사업 시행 체계 마련이 요구되지만, 품질 검토 및 기능 테스트의 부실, 사업자 기술력 문제 등으로 공공 서비스 마비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서비스의 복잡·다양화에 따른 디지털 블랙아웃 위험은 현재의 정책 및 제도적 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정보기술의 격차, AI 등 신기술 발전, 법·제도의 복잡화, 공급망의 상호의존성, 사이버 범죄 고도화, 지정학적 긴장’ 등 6가지 주요 위험요인을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기술에서 파생된 위험이 다양한 사회·경제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확대되고, 일상화되고 전면화되는 디지털 위험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규모 정보서비스 마비 사고는 국가 안보와 사회 핵심 기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연재난으로 통신시설이 피해를 입을 경우 사고 발생 신고 자체가 불가능하고, 보안 시스템 문제로 치안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화재나 정전 등으로 인한 피해는 국가 안보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결제 시스템 이용 불가로 영업 손실을 초래한다. 트래픽 폭주 시에는 교통·전력·에너지·금융·통신 등 사회 핵심기반 시스템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사이버 복원력 강화를 위한 실천 전략
기업과 공공기관은 사이버 복원력을 ‘만일(IF)의 경우’가 아닌 ‘언제든(WHEN) 일어날’ 상황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국정자원 사태와 같은 디지털 재난으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다음과 같은 사이버 복원력 강화 액션 플랜으로 이어져야 한다.
① 복원력의 설계 원칙 적용: 중복성 및 다양성 확보
복원력이 높은 조직은 신중성, 중복성, 다양성, 모듈화 등의 설계 원칙을 통해 충격을 흡수하고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한다. 단일 장애 지점의 위험이 큰 경우, 멀티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 인스턴스를 확보하는 중복성(redundancy) 원칙과 더불어, 다양한 시스템을 활용하여 하나의 기술 문제가 전체 손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다양성(diversity), 모듈화(modularity) 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이슈칼럼 – 기업 보안의 완성, 사이버 복원력을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 3편 칼럼 참고).
② 극단적 상황을 상정한 실전적 훈련
현재의 훈련은 시스템 복구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대규모 장기간 기능 중단 등 극단적 상황을 상정한 훈련이 필요하다. 시스템 장애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정보 시스템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체계(BCP/DR 관점)를 훈련해야 한다. 또한, 도상훈련에서 벗어나 복잡하게 연계된 시스템의 상호 파급효과를 반영한 범부처, 민관 합동 대규모 재난대응 훈련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③ 기술력 중심의 구축 및 관리·운영 체계 확보
대형화·복잡화되는 정보 시스템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운영 담당 조직의 기술 역량 평가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자체 운영이 어려운 경우, 외주 사업자 선정 시에도 BCP(연속성계획) 이행 및 훈련 방안 등 기술력과 전문성을 상세히 평가해야 한다. 사업자의 기술력과 전문성을 상세히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스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핵심이다.

▲류종기 한국기업보안협의회 이사 [자료: 류종기 이사]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이자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지낸 재난관리 전문가 줄리엣 카이엠은 일순간 터진 사고처럼 보이는 재난은 훨씬 전부터 이뤄진 정책과 의사결정이 축적된 결과라고 말한다. 또한 대비를 위한 행동과 효과는 눈에 잘 띄지 않고, 큰 비용을 들여 대비한 것이 다른 이들에겐 과잉 투자 혹은 낭비로 보일 수 있다는 ‘준비의 역설’(Preparedness Paradox)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이버 복원력에서도 이러한 ‘준비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고에서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보 시스템의 각종 장애 및 사고 정보의 세부적 관리 및 통계자료의 구축을 통해 대형재난 사전 방지체계 마련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 블랙아웃은 더 이상 ‘만약’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자원 화재 사태는 우리 사회의 디지털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제는 충격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를 아우르는 ‘사이버 복원력(Cyber Resilience)’이야말로 디지털, AI 시대의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_류종기 한국기업보안협의회 이사]
필자 소개_
류종기 한국기업보안협의회 이사는 25년 간 기업 리스크, 리질리언스 컨설팅을 수행해 왔으며, ISO/TC 292 재난안전보안 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IBM Security & Privacy Services 보안 컨설턴트와 Cyber Resilience 서비스 리더를 오랫동안 역임하며 정보보호와 IT 재해복구(DR), 비즈니스 연속성(BCP) 분야에서 기업, 기관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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