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이일구 한국정보보호학회 클라우드보안연구회 위원장] 인공지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앙집중형 서버에서 동작하는 단일 모델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마트폰, 웨어러블, 각종 IoT 장치에 내장된 AI가 서로 연결되고, 각자 판단과 행동을 하며, 필요할 경우 다른 AI와 협력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멀티 에이전트 AI(Multi-Agent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여기에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스마트 가전, 산업용 자동화 장비처럼 물리적 환경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가 결합하면서, AI는 사이버 공간을 넘어 실제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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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클라우드 인프라와 엣지 컴퓨팅이 결합한 초연결 환경에서는, AI 에이전트가 전 세계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필요할 경우 물리적 장치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마트시티의 교통 제어, 원격 의료 로봇 수술, 도심항공교통(UAM) 관제까지, AI의 작동 범위는 사이버와 물리 세계 전반에 걸쳐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 혁신의 강력한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보안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융복합 위협 환경의 도래
기존의 보안 모델은 중앙 서버나 폐쇄망을 전제로 설계됐다. 그러나 멀티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가 만들어내는 환경에서는 공격 표면이 단일 시스템을 넘어 수많은 엣지 디바이스, 분산형 에이전트 네트워크, 물리적 제어 인터페이스까지 확대된다. 미래의 초지능·초연결 네트워크에서는 이런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예를 들어, 스마트팩토리의 생산 로봇을 제어하는 AI가 물류망의 자율 운송 시스템, 에너지 관리 AI, 도시 교통관제 AI와 실시간으로 연결된 상황을 생각해 보자. 단 한 번의 침해나 데이터 조작이 산업 전반의 연쇄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율주행차의 경로 제어가 교통신호 AI와 연결되어 있다면, 신호 시스템 교란이 대규모 교통 혼란으로 확산될 수 있다. 원격 의료 로봇이 병원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AI 진단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다면, 단일 장치 해킹이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이처럼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고 사이버와 물리 세계가 융합된 환경에서는 단일 산업, 단일 네트워크 수준의 보안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며, 산업 간, 그리고 사이버-물리 환경 간 상호 의존성까지 고려한 첨단산업 융합보안 프레임워크가 필수적이다.
두 축의 융합보안 패러다임
멀티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 보안 전략의 첫 번째 축은 Security for AI, 즉 AI 시스템 자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위협은 다음과 같다.
에이전트 신원 위조 및 권한 탈취: 가짜 에이전트를 네트워크에 투입하거나, 정상 에이전트의 인증서를 탈취해 권한을 확보한다. 피지컬 AI에서는 곧바로 물리 장비 제어권 확보로 이어져 생산 라인 정지, 물류 경로 변경, 드론의 비인가 비행, 의료 로봇의 오작동 등을 초래할 수 있다.
협력 알고리즘 교란: 합의 알고리즘, 투표, 평판 시스템을 교란해 집단 의사결정 결과를 왜곡한다. 산업용 로봇의 작업 순서 변경, 자율차량 경로 비효율화, 의료 로봇 일정 지연 등을 초래할 수 있다.
데이터·정책 중독(Data/Policy Poisoning):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이나 온디바이스 학습에서 오염된 데이터를 주입해 잘못된 판단을 유도한다. 피지컬 AI에서는 센서 데이터 조작이 대표적인 공격 벡터다.
물리 제어 오남용: 액추에이터를 악의적으로 제어해 물리적 피해를 유발한다. 예를 들어, 전력망 관리 AI를 통한 변압기 과부하, 화학 공정 밸브 오작동, 드론의 위험 구역 진입 등이 있다.
공급망 공격: 무선 소프트웨어/펌웨어 업데이트 (Over-The-Air, OTA), 플러그인, 로봇 제어 SDK 등 구성 요소에 악성 코드 삽입. 산업 장비 펌웨어에 백도어를 심어 원격 명령을 실행하는 경우다.
이러한 위협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단순 서버 취약점 점검을 넘어 적대적 에이전트(Adversarial Agent)를 투입해 실제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협력, 합의, 물리 제어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침투 테스트가 필요하다.
두 번째 축은 AI for Security, 즉 AI를 보안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멀티 에이전트 AI를 보안 운영센터(SOC)나 산업 제어시스템 보안 환경에 도입하면 탐지-분석-대응 전 과정을 병렬·분산 구조로 자동화할 수 있다. 탐지 에이전트는 클라우드 로그, 네트워크 패킷, 산업 프로토콜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분석 에이전트는 악성 코드 샌드박스 분석과 로봇 동작 로그 검증을 수행한다. 대응 에이전트는 긴급 차단과 격리, 학습 에이전트는 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탐지 성능을 개선한다.
이 구조는 피지컬 AI의 안전성 확보에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로봇 팔의 힘·속도 패턴이 비정상적으로 감지되면 탐지 에이전트가 이를 이상 신호로 인식하고, 분석 에이전트가 센서 데이터와 제어 로그를 교차 검증한 뒤, 대응 에이전트가 즉시 정지 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첨단산업 융합보안 프레임워크
멀티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의 확산은 AI, IoT, 로봇, 5G/6G 통신, 에너지, 교통,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을 하나의 초연결 네트워크로 통합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존의 개별 보안 체계만으로는 복합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어려우며, 사이버와 물리 세계를 아우르는 융합보안 프레임워크가 필수적이다. 이 프레임워크는 다음과 같은 핵심 요소를 갖춰야 한다.
첫째, 산업별로 분산된 보안 규제와 표준을 하나로 묶는 통합 거버넌스를 통해 보안 수준의 균형과 대응 효율성을 높인다. 이는 서로 다른 산업 간 정책 충돌을 줄이고, 위기 상황에서 일관된 대응 절차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 산업 간 위협 정보를 즉시 공유하는 실시간 위협 인텔리전스 체계를 구축해 연쇄 피해를 예방한다. 이를 통해 한 분야에서 감지된 공격 징후가 다른 분야로 확산하기 전에 신속히 차단할 수 있다.
셋째, 설계 단계에서 물리적 안전과 정보 보안을 함께 반영하는 안전-보안 동시 설계로 사이버와 물리 환경의 통합 보호를 실현한다. 이는 물리적 사고와 사이버 침해가 상호작용해 발생하는 복합 재난을 최소화하는 데 핵심적이다.
넷째, 멀티 에이전트 AI가 스스로 탐지·분석·대응할 수 있는 자율 방어 메커니즘을 내장해 분산 환경에서도 신속히 대응한다. 이를 통해 외부 지원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개별 노드가 독립적으로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
다섯째, 국제 표준 호환성을 확보해 글로벌 상호운용성을 강화하고, 국제 협력과 공동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해외와 연계된 산업망, 공급망, 데이터 흐름 속에서 보안 공백을 줄이는데 필수다.
결국, 초연결 산업 생태계에서의 보안은 개별 기술이나 산업을 넘어선 통합적·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구현하는 핵심 도구가 바로 융합보안 프레임워크다.
인재 양성과 정부 R&D 투자
기술과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런 첨단 융합보안 체계를 설계·운영·혁신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AI 보안, 산업 제어 보안, 물리보안, 통신, 로봇공학 등 서로 다른 영역을 아우르는 인력은 단기간에 길러낼 수 없다.
이를 위해 융합보안대학원 지원 사업 확대가 시급하다. 복수 전공·융합 전공을 통해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석·박사급 전문가를 꾸준히 배출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융합 실습과 현장 경험, 장기적으로는 국제 표준화와 글로벌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또한 정부 R&D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핵심 기술개발(멀티 에이전트 AI 보안, 피지컬 AI 안전·보안 통합, 연합학습 무결성, 5G/6G 보안 프로토콜), 융합보안 테스트베드 구축, 인재 양성 교육 프로그램 지원, 산업·정책 연계 체계 마련이 투자 우선순위다. 특히 민관 합동 위협 인텔리전스 네트워크와 국제 공동 연구를 지원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Security for AI, AI for Security, 그리고 융합보안
멀티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 시대의 보안은 Security for AI, AI for Security, 그리고 융합보안 인재전략이라는 세 축이 균형을 이루어야 완성된다. 기술적 대응책과 인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전략적 투자가 하나로 맞물릴 때, 우리는 초지능·초연결 시대의 위협을 산업과 국가의 도약 기회로 바꿀 수 있다.
보안 위협이 복잡하고 빠르게 진화하는 오늘, 국가와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AI 네트워크와 이를 지킬 인재·기술·정책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글_이일구 한국정보보호학회 클라우드보안연구회 위원장,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보안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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