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2025년 1월 3주차 <보안뉴스>가 선정한 키워드는 ‘그를 맞이하라’이다. 다음 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트럼프를 맞이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이 각계 각층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가 보여주는 반PC 성향에 발 맞추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또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긍정적인 효과도 없지 않다.
1. 은행들의 발빼기
지난 주부터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갑자기 NZBA에서 탈퇴하기 시작했다. NZBA는 ‘넷제로은행연합(Net Zero Banking Alliance)’를 뜻한다. 넷제로은행연합이란, 2050년까지 온실 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맞추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투자와 대출, 자본 운영을 조정하기로 약속한 은행들의 모임이다. 소규모 은행들이 이런 약속을 해봐야 큰 소용이 없다. 세계의 돈을 좌지우지 할 만한 은행들이 나서야 하고, 실제 그런 은행들이 대부분 여기에 가입되어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여섯 개 은행이 여기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시티그룹(Citigroup),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웰스파고(Wells Fargo),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JP모건(JP Morgan)이다. 실제 탈퇴는 이미 12월에 이뤄졌고, 이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게 지난 주말부터다. 왜? 트럼프의 ‘반PC주의’ 성향 때문이다. 그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우려들을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환경 보호에 나서는 기관, 기업, 기구들을 적대시 하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NZBA가 탄생하고 환경 보호 및 기후 변화 대책이 전 세계의 시급한 현안으로 급부상하던 때에 이 은행들은 “환경의 리스크는 곧 투자의 리스크”라고 선언하며 팔을 걷어부친 채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은행이 ‘투자 리스크’라고 말한다는 건 ‘목숨 걸고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걸 그들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기 직전이 되자 그런 멋진 선언이 무색하게도 앞 다투어 발 빼기에 바빴다.
이들은 언론의 질문 앞에 “충분히 넷제로를 위한 뱅킹 시스템을 갖췄다”라든가 “다른 은행들과 연계 없이 개별적인 노력을 해야 할 때로 판단했다”, 혹은 “NZBA가 요구하는 것들이 지나쳤다”는 식으로 답했다. 이들과 함께 넷제로 운동을 펼치던 이들은 이 은행들을 두고 “겁쟁이”라고 비판했다.
2. 저커버그의 ‘남성 에너지’
트럼프를 맞이하기 위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 중 하나는 저커버그 메타 CEO다. 그는 이번 주 “여성적 에너지가 있고 남성적 에너지가 있다”며 “기업들은 지금 후자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에는 남성성 에너지가 넘치는데, 유독 기업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남성 특유의 공격적인 태도가 주는 이점이 있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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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 발언은 임박한 트럼프 취임과 맞물려 해석되고 있다. 메타는 트럼프의 지난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마자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차단한 바 있다. ‘가짜뉴스를 살포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또한 각종 ‘다양성’ 이모티콘을 출시함으로써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플랫폼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애쓰기도 했었다. 소셜미디어 업계 내에서는 메타가 이런 방향성을 선구적으로 취해왔고, 당시 많은 인권 운동가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찬사를 받았었다.
그런 가운데 다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 그를 앞장서서 쫓아냈고, 그가 가장 싫어하는 PC주의를 플랫폼 곳곳에 심어둔 저커버그 입장에서 입이 바짝 마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 트럼프가 좋아할 만한 발언들을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비판하고 있다. 사업을 살리기 위해(즉 돈 때문에) 하루아침에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틀린 추측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변명이 될 만한 개인사가 있기도 하다. 그가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에게는 여자 형제가 세 명 있으며, 자녀도 딸만 셋이라고 한다. 여성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으로, 이 때문에 오히려 남성성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을 거라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실제로 그는 수년 전부터 무예를 열심히 익힌 것으로 유명한데, 이 경험 역시 남성성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 경험들이 차례로 누적돼 ‘기업 문화에 남성성이 더 베어들어야 한다’는 발언까지 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무튼 저커버그는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시절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취임식 파티까지 호스팅할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그는 바이든 정권 때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정계와 거리를 두어왔었다. 그 파티에 다른 빅테크 CEO들도 적잖이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실리콘밸리 전체가 트럼프 때문에 처신을 고민하고 있다.
3. 드디어 휴전 성사?
트럼프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인가. 바이든 행정부가 1년 동안 단 한 번 외에는 모두 실패했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을, 아직 정식 취임도 하지 않은 트럼프 팀이 성사시켰다. 정확한 협상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는데, 이스라엘은 공격을 중단시키고 하마스는 인질을 풀어주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번 협상 하나로 영구 평화가 온 건 아니다. 협상이 유지되는 건 6주 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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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 6주 동안 미국을 비롯해 카타르와 이집트 등 중재자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더 장기적인 평화 제안에 동의하도록 끊임없는 설득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것에까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트럼프의 영향을 받아 금세 수락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왜 갑자기 바이든 말기 혹은 트럼프 취임 직전에 1년 동안 이뤄진 적이 없었던 상호 협약이 이뤄졌을까? 이건 진영마다 다른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측에서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행정부가 바이든의 면을 살려주기 위해 많이 양보했다, 즉 바이든의 영향력이 발휘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 측은 당연히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트럼프를 의식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트럼프는 “나의 취임 전까지 둘이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중동에서 지옥이 열리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 바 있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중재에 참여했던 이집트와 카타르 측에서는 “바이든 팀이 1년 동안 성공시키지 못한 걸 트럼프 팀은 회의 한 번만에 성공시켰다”고 언론에 말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한쪽의 공적이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1년 동안 작업했던 게 마침 트럼프 팀이 참여했던 회의에서 결실을 맺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협상에 의한 휴전은 현지 기준 이번 주 일요일부터 공식 시작된다. 그 때부터 6주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부터 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한다.
4. 미국의 유조선 제재
트럼프가 당도하기 전에 서둘러 마무리 지어야 하는 전쟁이 하나 더 있다. 러-우 전쟁이다. 트럼프가 친러 성향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의미 있는 성과를 내거나, 트럼프도 취소하기 어려운 지원 약속을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서둘러야 하는 건 바이든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우크라이나에 쏟아부었던 것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이번 주 선택한 건 더 광범위하고 더 치명적인 ‘추가 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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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러시아산 석유를 수출하는 데 사용되는 선박들을 제재 대상으로 삼는다”였다. 대상이 되는 선박은 무려 183척이었다. 이 배들은 러시아에서 석유를 싣고 인도와 중국으로 배달하는 임무를 가졌었다. 이 배들을 제재한다는 건, 그 동안 이 배들을 통해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했던 중국과 인도의 기업들에 ‘더는 구매하지 말라’는 압박을 넣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므로 러시아는 석유를 판매할 수 없게 되고, 전쟁 자금이 부족하게 되는 것을 노린 수였다.
그 동안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자금줄을 꾸준히 견제해 왔었다.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타격하다가는 세계 3차대전이 벌어질지 모르니 시들시들 말려죽이려 한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실제적으로 피해를 입었고, 경제적으로도 휘청거리게 됐다. 하지만 전쟁을 중단시켜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국, 이란, 인도가 러시아와의 거래를 이어가는 게 러시아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중국은 유럽이 사 가지 못하는 러시아 석유를 대신 구매하겠다는 듯 수입량을 대폭 늘리기도 했었다. 제재의 효과를 의심하는 회의론이 대두된 이유다.
이번 제재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오히려 구매자들 측에서만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듯하다. 중국과 인도의 충성 고객들이 일제히 계약서와 관련 법령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서둘러 법적 자문을 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유가도 올랐다. 세계 석유 생산량 중 러시아가 담당하는 비율이 적지 않았는데, 이것이 한꺼번에 묶이게 됐으니 공급이 줄어든 것이다.
러시아가 먼저 이번 제재로 인한 피해를 굳이 밝히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외부에서 러시아의 상황을 명확히 알 기는 힘들 확률이 높다. 러시아가 쏘는 미사일과 드론의 양이 줄어든다면 희망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러시아에는 중국과 이란, 북한이라는 친구가 있다. 각종 무기와 병력까지 제공하는 나라들이다. 서방 국가들의 제재를 통해 서너 나라에 경제적 타격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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