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1. 화려한 CES 무대에서 늘 무시되는 정보 보안.
2. 그래서 소비자 단체들이 ‘최악의 제품’을 항목별 선정.
3. 좀 더 소비자 입장에서 이로운 제품을 만드는가,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한 제품을 만드는가?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세상의 모든 최신 IT 기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현장인 CES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짧게는 올해부터, 길게는 내년이나 내후년부터 시판될 미래의 제품들을 가늠하고 있다. 삶을 편하고 이롭게 해 줄 온갖 화려한 기술들이 앞다투어 전시장에서 이목을 끌고 있으며, 듣도 보도 못한 기술들이 구현되는 것을 보며 관람객들은 여기 저기서 탄성을 쏟는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하지만 수년째 진행되는 이 성대한 잔치에서 ‘정보 보안’은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나 사용자를 ‘현란하게 보호한다’는 게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기술과 강력한 성능의 ‘보조제’ 역할에 그치는 보안성이라는 것은, 각종 제품 설명 뒷마무리에 따라붙는 ‘보안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정도로 언급되는 게 전부다.
그래서 전자상거래 자가 수리 및 보안 전문 단체인 아이픽스잇(iFixit)은 매년 ‘CES 최악의 전시품(Worst in Show)’을 항목별로 꼽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항목은 다섯 가지로, ‘프라이버시’, ‘환경에 미치는 영향’, ‘수리 용이성’, ‘쓸데 없는 기능’이다. 그러고 나서 CES 행사 전체를 아울러 최악의 제품 하나를 선택한다. 다섯 가지 모두 정보 보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들이다. 항목별로 선정된 제품은 다음과 같다.
1. 프라이버시
올해 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건 보쉬(Bosch)의 레볼(Revol)이라는 제품이 뽑혔다. 레볼은 아기침대 및 유아 모니터링 제품으로, 카메라와 마이크로폰, 레이더 센서를 통해 아기를 ‘항상’ 지켜본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이러한 정보는 쉴새 없이 처리되기도 한다.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안에 민감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항상 지켜보고, 항상 듣고, 항상 저장한다’의 3박자가 고루 갖춰진 제품인 것이다. 보쉬의 레볼이 선정된 것은 바로 그 3박자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아이픽스잇 측은 설명한다.
2. 환경에 미치는 영향
환경 부문 최악으로 꼽힌 건 사운드하운드(SoundHound)의 차량 내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차량을 운전하면서 편리하게 음성 인식 비서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인공지능 서비스인데, 아이픽스잇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존 음성 기반 인공지능 비서들보다 훨씬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을 소모한다고 한다. 아이픽스잇은 컴퓨팅 자원 소모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3. 수리 용이성
수리 용이성 측면에서 최악의 제품으로 뽑힌 건 울트라휴먼 레어 럭셔리 스마트링(Ultrahuman Rare Luxury Smart Ring)이었다. 문제는 가격 대비 배터리 성능이었다. 2200달러의 가격인데 배터리 사이클은 500회에 불과했다고 아이픽스잇 측은 꼬집는다. 그러면서 이를 “치명적인 결함”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제품을 부수지 않고는 배터리를 교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제품 선정에 크게 작용했다.
4. 쓸데 없는 기능(Who Asked for This)
시장이 요구하지도 않은 기능이 들어가 있어서 ‘최악’의 제품이 되기도 하는데, 올해 CES에서는 삼성의 비스포크 인공지능 세탁기 제품이 뽑혔다. 전화통화 기능이 추가된 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얻어갈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기능인데, 이걸 구현하느라 스크린, 센서, 통화 모듈, 연결 기능, 마이크로폰 등을 추가로 넣어야 하고, 소프트웨어까지도 더 개발해 탑재시켜야 한다. 그것은 전부 가격이 되어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된다.
5. 최악의 제품
아이픽스잇은 올해 최악의 제품으로 LG의 ‘인공지능 홈인사이드 2.0 냉장고(AI Home Inside 2.0 Refrigerator with ThinkQ)’를 꼽았다. LG의 냉장고는 너무 복잡해 자가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최악의 제품’이 됐다. 삼성 세탁기와 결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LG는 신제품 냉장고를 내놓으면서 4도어 냉장고의 가장 큰 문 전체를 화면으로 변환시켰다. 화면 패널은 물론 스피커 장치와 카메라, 추가 센서들이 냉장고 문에 더 달린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무엇보다 고장의 가능성이 불필요하게 커졌을 뿐만 아니라 자가 수리가 더 어렵게 됐다는 게 아이픽스잇의 설명이다.
그래서?
‘최악의 상’ 어워드가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지고 있느냐는 저마다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공식 웹사이트(worstinshowces.com)에 공개된 후원 단체의 면면을 보면, 이 ‘최악의 상’이 어떤 관점에서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다. 바로 ‘소비자 중심’이다. 시큐어페어즈(Securepairs.org), 전자프런티어재단(EFF), 리페어(repair.org), 컨슈머리포트(CR) 등 기업이 아니라 일반 사용자의 관점에서 IT 기술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곳들이니 말이다.
이들의 후원을 받아 매년 CES에서 찬물(기업 입장)을 끼얹은 아이픽스잇은, 최악의 제품을 평가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주요하게 고려한다고 한다.
1) 제품/서비스의 수준이 얼마나 나쁜가?
2) 그 ‘나쁨’이 혁신적일 정도로 나쁜가?
3) 이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때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4) 이전에 나온 비슷한 기술과 비교해 얼마나 더 나쁜가?
5) 부정적인 면에 비해 긍정적인 면은 무엇이며, 둘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서 픽스잇은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하는 회사들이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하는 질문이 또 있다고 설명을 잇는다. 그것은 “우리의 새 제품이 정말로 더 나은 삶이나 생활 방식을 제공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이전 것들에 그저 더 많은 쓰레기, 비용, 감시 기술을 추가했을 뿐인가?”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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