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박은주 기자] 인공지능(AI) 다음 주자는 양자다. 올해 CES에 양자 컴퓨팅 분야가 신설됐다. 미래 경제와 산업, 국가 안보를 좌우할 핵심 기술로 양자가 낙점된 셈이다. 상용화까지 갈 길이 멀지만, 잠재적 파급력은 확인됐다.
▲IBM 양자 컴퓨터[사진=IBM]
양자 기술이 주목받는 건 우월한 성능 때문이다. 작년 12월, 구글이 발표한 양자 칩 ‘윌로우(Willow)’는 기존 슈퍼컴퓨터가 10의 24제곱 년 걸릴 작업을 단 5분 만에 처리했다. 10의 24제곱 년은 우주 나이보다 긴 시간이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산업에서 혁신을 이뤄낼 차세대 ‘게임체인저’로 평가된다.
CES 2025에 신설된 양자 컴퓨팅 부문은 ‘양자, 비즈니스를 뜻하다’(Quantum Means Business)를 주제로 삼았다. 구글(Google)과 아이비엠(IBM), 아이온큐(IonQ), 콴델라(Quandela), 큐심플러스(QSIMPLUS) 등 양자 혁신을 이끄는 기업이 대거 참여해 양자 기술이 주도할 미래 전략 산업을 조망했다.
해킹 ‘제로’
‘100% 보안은 없다’란 불문율, 양자키분배(QKD)로 깰 수도 있다. 송·수신자가 동시에 양자 암호키를 만들고 공유하는 게 QKD이다. 양자는 더 나눌 수 없는 에너지 최소 단위로, 작은 자극에도 상태가 변한다. 초 미세한 특성을 활용해 외부 접근을 알아챌 수 있다. 양자통신 분야 대표 기술로, 이론상 해킹이나 도청을 원천봉쇄한다.
양자통신 선두는 중국이다. 2021년 베이징-상해 간 200km 유선 양자암호통신을 구현했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과 KT 등 대형 통신사에서 QKD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양자 기술 중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는 만큼,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작지만 큰 쓰임
양자 센서는 아주 작은 변화를 감지하는 초정밀 도구다. 기존 센서에 비해 정밀도가 월등히 높아 초정밀 계측이 필요한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중첩, 이중성, 얽힘과 같은 양자역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동작한다.
▲뉴라닉 자기근전도 센서 칩[사진=뉴라닉]
스타트업 ‘뉴라닉’(Neuranics)의 자기근전도(MMG) 센서가 눈에 띈다. MMG 센서는 ‘터널링 자기 저항’(TMR)이라는 양자역학 현상을 응용한 기술이다. 이를 통해 사람 근육에서 나오는 초미세 자기장을 측정할 수 있는데, 문구용 자석 자기장보다 약 1조 배 약한 세기다. 뉴라닉은 MMG 개발로 올해 CES 혁신상을 받았다.
양자 센서로 자기장뿐만 아니라 중력, 온도, 전자기파 등을 측정할 수 있다. 의료·환경·자율주행 등에서 쓰임새가 기대된다. 시장 성장도 예견되는 바이다.
한편, AI 발전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발전하는 기술을 감당하기에 슈퍼컴퓨터로는 부족하다. 금융권 초고속 트레이딩이나 신약 개발을 위한 분자 시뮬레이션 분야에서는 한계가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다. 복잡한 계산을 혁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양자 컴퓨팅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조 브로즈 IBM 양자 부문 부사장은 “지금이야말로 양자 유틸리티 시대라고 믿는다”며 “양자 우위는 가까운 미래에 달성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예견된 ‘위협’
양자 컴퓨팅 발전에 따라 기존 보안체계는 붕괴 위험에 처했다. 전자서명, 금융거래 등 보편적인 암호화에 ‘공개키 암호화’(RSA)를 쓴다. RSA 방식은 소인수분해를 활용한다. 큰 수를 소수로 분해하기 어려운 특성을 활용해 데이터를 보호한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 특기가 소인수분해다. 쉽게 해독되는 암호는 중요 정보를 지킬 수 없다. 양자 시대를 대비해 양자내성암호(PQC)가 국제 표준화 단계를 거치고 있다. 금융·공공기관에서도 점진적으로 PQC 암호를 채택하는 추세다.
‘선 수집, 후 해독’(Harvest Now, Decrypt Later) 공격에 따른 예방도 필요하다. 양자 컴퓨터 상용화 시대를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보안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이처럼 혁신적인 기술 발전엔 위협이 공존한다. AI가 ‘양날의 검’이라고 불리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왼쪽부터)젠슨 황 엔비디아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사진=SNS 갈무리]
문제는 ‘시간’
양자 기술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도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양자 컴퓨터 상용화까지 최소 15~2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불어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양자컴퓨터가 유용한 패러다임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따라 양자 기술 관련 주가 일제히 급락하기도 했다.
상용화까지 갈 길은 멀다. △하드웨어 비용 △큐비트 안정성 △에러 보정 기술 △냉각 장치 △노이즈 억제 등이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양자 기술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나 실험실의 전유물이 아니다. AI, 클라우드, 차세대 통신망(6G) 등과 융합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
신동형 알서포트 팀장은 “2030 년대 초반으로 예상되는 본격적인 양자 시대가 열릴 때, 양자 기술에 대한 준비가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boan5@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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