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거대한 자금 세탁 네트워크가 유럽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영국의 국가범죄수사국이 앞장서서 벌인 작전을 통해 이 네트워크가 일부 무력화됐다. 이 과정에서 84명의 용의자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 작전은 ‘디스테빌라이즈(Operation Destabilise)’라고 하며, 각종 국제 제재 대상인 러시아를 비롯해 여러 범죄 단체들이 이용하던 자금 세탁 네트워크를 표적으로 삼아 진행됐다. 네트워크 자체는 중동, 러시아, 남미에까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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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범죄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스마트(Smart)와 TGR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둘 다 러시아어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기업이었다. 이번 공조 작전 이후 미국 재무부는 이 두 기업은 물론, 여기에 연루된 주요 인사들을 추가 제재 대상으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위에서 말한 84명의 용의자들이 아니다. 체포되지 않았기에 제재 대상으로 지목한 거라고 할 수 있다.
영국 국가범죄주사국에 따르면 스마트와 TGR은 영국 내 범죄 조직들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범죄 집단들과 결탁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런 범죄 집단의 고질적 고민인 ‘자금 세탁’을 해결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과 연계된 조직 중에는 마약과 총기 밀수입으로 악명 높은 일당인 키나한(Kinahan)도 있었습니다. 키나한은 2022년부터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는 러시아가 간첩 활동을 지원하는 데 필요로 하는 자금을 충당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특정 범죄자들의 배만 불린 게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위협을 가했다는 뜻이 된다.
국가범죄수사국에 따르면 체포된 84명은 전부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로부터 2천만 파운드의 현금과 암호화폐를 압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과는 이들이 복잡한 연결고리와 네트워크를 통해 불법 자금을 세탁해내고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는 겁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들은 암호화폐와 현금을 계속 교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세탁했습니다. 범죄자들의 수익은 대부분 서방 세계에서 일어났으며, 그 돈은 세탁된 후 러시아나 범죄자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러시아의 제재 대상들도 이런 식으로 서방 경제권에서 여전히 활동할 수 있었다고 국가범죄수사국은 덧붙였다.
영국이 이 작전의 전면에 나선 건,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 중 하나가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영국 전국 각지에서 자금 세탁이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네트워크는 영국 안에서 정착한 상태였다고 수사국은 설명한다. “이들은 여러 방법으로 돈을 확보한 뒤, 이를 가지고 더 많은 마약과 무기를 밀매했습니다. 그 외에 여러 불법 사업에 투자하기도 했고, 폭력적인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 각지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피해자들이 양산됐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범죄 촉진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사 결과로서 공개된 스마트 관련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1) 예카테리나 즈다노바(Ekaterina Zhdanova) : 스마트 운영
2) 하지무라트 마고메도프(Khadzi-Murat Magomedov) : 1)의 협력자
3) 니키타 크라스노프(Nikita Krasnov) : 1)의 협력자
셋은 힘을 합해 자금 세탁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며, 신원이 전부 공개됐다.
한편 TGR 쪽에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1) 조지 로시(George Rossi) : TGR 운영
2) 엘레나 치르키니안(Elena Chirkinyan) : 1)의 협력자
3) 안드레이스 브라덴스(Andrejs Bradens) : 1)의 협력자
이 여섯 명은 현재 전부 제재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 자금 세탁 네트워크를 사용한 고객(?) 중 대표적인 건 류크(Ryuk)다. 랜섬웨어 조직인 류크는 2021년 한 피해 단체로부터 230만 달러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전부 암호화폐였다. 그 외에도 149명의 영국인들로부터 2700만 파운드를 갈취하기도 했다. 류크는 이렇게 얻어낸 돈을 스마트와 TGR의 네트워크를 통해 현금화 할 수 있었다. 이 네트워크에 연결된 암호화폐 교환 서비스가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가란텍스(Garantex)였다. 2022년 영국과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꼽혔다.
“이번 작전은 영국의 수사 기관들만이 아니라 미국의 연방수사국, 마약단속국, 프랑스 중앙사법경찰국, 아일랜드 경찰 등 여러 국제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해 이뤄졌습니다. UAE 당국은 자금 세탁 활동을 방해하는 데에 협조해 주기도 했습니다.”
영국 안보부 장관 댄 자비스(Dan Jarvis)는 이번 성과를 두고 “불법 자금이 미치는 악영향은 실로 지대하다”고 말했다. “그 검은 돈이 파생시키는 범죄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죠. 이번 작전을 통해 우리 수사 기관들은 경제 범죄에 맞서 싸우는 데 있어 중요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영국과 동맹국들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범죄를 근절시키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작전을 통해 “결국 국제 제재를 받은 자들끼리 암호화폐 생태계를 이용하기 시작하면 제재라는 것도 어느 정도 무력화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오랜 국제 제재 대상이었던 북한이 꾸준히 미사일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것도 암호화폐 때문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심화되고 제재가 더 강력해질 전망인데, 암호화폐가 있어 이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국가들 혹은 세력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건 국제 사회가 기억하고 다뤄야 할 사안이다.
3줄 요약
1. 영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공조 작전으로 거대 자금 세탁 네트워크 발견됨.
2. 84명이 체포되고, 여러 조직과 개인들이 제재 대상으로 새롭게 선정됨.
3. 자금 세탁 서비스는 범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음.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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