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통해 이미지 생산·가공·확대재생산 등 디지털 재화로 전환되는 관계성에 주목
[보안뉴스= 도승연 광운대학교 교수] 다양한 학제를 넘어 최근의 몇 년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온 과학기술의 담론은 단연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것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급격히 발전한 현대 과학기술의 총체적 변화를 대변함과 동시에 그 변화가 이끄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라는 양가적 의미로서 이해되어 왔다.

[이미지=iclickart]]
우리 사회는 세계적으로 통용됐던 ‘디지털 혁명, 로봇시대, 초연결사회’이라는 광의적 개념보다는 3차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적 지평 안에서 이를 압도적으로 소비해 왔다. 특히, 새로운 과학기술의 개발과 활용 문제를 산업의 위기에 대한 두려움, 혹은 ‘이때가 기회’라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조바심으로 반응했는데, 이러한 기류의 저변에는 성장과 경쟁을 내재화해온 한국적 정서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집중적 학습효과 덕분인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최근 논의는 기존의 경제과잉적 해석을 넘어서 과학기술이 이끈 삶과 문화의 변화라는 보편적 맥락에서 검토되고 있는 추세다.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핵심적 논의는 다음의 두 가지 함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 세계사적 변화는 인간중심, 문명중심의 근대적 세계관이 한계를 고했음을 전제한다. 둘째, 인간적 세계(주체, 정신)와 비인간적 세계(객체, 물질, 사물)가 각기 이원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자연이, 기술과 정치가 융합하는 인간-비인간의 관계적 연결망이 곧 우리의 세계라는 전제다.
위계적 관점에서 환경과 동물과 사물을 이용·착취하는 근대적 모델의 종말과 경고를 이미 재난 수준의 기후변화, 이름 모를 바이러스의 등장, 몰카 사태를 통해 충분히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기후 변화에 다소 무감했던 우리에게 최근 재난적 수준의 폭염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적 양상에 주목하게 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더 이상 ‘자연’의 속성에 해당하는 지구의 자정활동과 ‘인간’적 속성에 해당하는 파리 기후협약만으로는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는 기후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입 모아 주장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적 상호작용이 만든 결과 중의 하나이기에 이에 대한 대처 역시 이들 각각과 모두의 다양한 상호작용의 변수들을 상상하고 고려할 때에만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실효과와 복사열의 인과 관계, 높아지는 해수온도와 사라지는 빙하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보다 수천 배 가량의 온실가스를 내뿜는 에어컨 냉매의 악순환, 석유기반 산업 보호를 위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미국 우익 포퓰리즘의 입장 등 다양한 작용과 힘들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과거와 다른 수준과 범위에서 새롭게 상상할 때에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적절한 대응과 정책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면 말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론적 세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예는 ICT를 통해 구현된 가상공간에서의 경험일 것이다. 가상공간은 멀티미디어,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구현된 쌍방향적 소통의 네트워크, 보다 넓게는 이러한 특징을 포함한 기술기반의 매체적 환경을 의미한다. 이때의 가상공간은 분명 현실공간과 구별되는 문화적 특징, 다른 지각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지만 양자는 서로를 역동적으로 보완하며 작동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가상화의 목적은 현실화를 전제로 할 때 성립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공간에서 윤리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결코 현실 윤리와 다른 질서로 취급되어서는 안되며 두 공간의 접점을 통해 증폭되는 현실에서의 확산성, 즉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성의 여파를 고려하면서 전개되어야만 한다.
최근의 몰카 사태로부터 요구되는 윤리의 문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때, 그것은 특정 개인의 도덕적 일탈 행위로 환원되는 단순한 인간적 속성의 문제가 아니다. 더욱 작아지고, 숨겨지도록 제작되는 카메라를 통해 이미지가 생산·가공·확대재생산·소비되는 매체적 환경, 나아가 이들이 디지털 재화로 전환되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성에 논의의 방향이 집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사진=광운대학교 도승연 교수]
이처럼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은 기존의 인간중심적 사유를 넘어 작금의 실천이 발생하고 확산되는 관계적 연결망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양식적 변화를 고민하게 한다.
현실의 모순과 부족에 대한 재구성의 능력이 상상력이라면 여기에는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조화를 이끄는 융합적 상상력, 과거와 미래를 새롭게 구성하는 서사적 상상력, 기존의 것을 탈피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유목적 상상력,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의적 상상력 등 다양한 층위의 상상력들이 존재한다.
일자리 창출과 환경보호를 주장했던 지속가능성 1.0을 넘어 여기에 사회적 공정성과 평등의 개념이 지속가능성 2.0 시대의 요구에 추가된 것도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적 상상력이 발휘된 시대적 고민의 결과 덕분일 것이다.
[글_ 도승연 한국인터넷윤리학회 이사/ 광운대학교 인제니움 학부대학 인문 주관교수(coraa@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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