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욱 아이피코드 대표
[IP NEWS= 박병욱 아이피코드 대표(前 한국표준협회 산업표준원장)] USB-C 타입 표준은 국제적으로 통일된 충전 및 데이터 전송 방식이다. 2021년 세계 3대 표준화기구 중 하나인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표준으로 채택했다. 2022년엔 대한민국 국가표준(KS)으로 제정됐다. 유럽연합(EU)에서 작년말부터는 모바일 기기, 내년부터는 노트북에 각각 USB-C 충전 포트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국제적인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반적인 기술표준의 특성상 다양한 기기와 호환되는 범용성이 있을 뿐 아니라, 작은 크기와 방향성이 없는 대칭형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러한 USB‑C 단자의 디자인은2014년에 인텔, HP,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회원사를 가진 USB-IF(USB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비영리 단체)가 처음 개발하여 공개한 것으로 특허에 대한 사용료는 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 대만의 업체가 USB-C 타입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하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미국특허 침해소송에 돌입했다.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USB-C 타입 단자의 특징인 위아래 관계없이 삽입 가능한 연결 방식이 자신들의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8월 18일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대만업체는 키위 인텔릭츄얼 에셋(KIWI Intellectual Assets Corporation)이다. 키위는 대만 신베이시에 본사를 둔 비실시 기업(NPE)이다. 키위의 핵심 인물인 시엔짜이라는 발명가는 미국에서만100여 건이 넘는 특허를 개발 및 등록했다.
그 중 하나인 특허가 이번에 소송에 쓰인 USB 관련 특허로, 해당 특허는 USB-C 타입의 형태 그대로는 아니지만, USB-A를 개선해 방향과 관계없이 삽입이 가능한 구조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키위 미국특허의 원출원인 대만의 특허는 2009년6월에 출원되었고, 이는 USB-IF가USB-C 타입을 정식으로 공개한 2014년보다 먼저다.
USB-C 타입은 이미 대부분의 국가와 기업에서 쓰이는 표준기술이기 때문에, 키위의 소송은 삼성전자만을 상대로 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만약 법원이 키위의 특허가 유효하고 침해가 맞다는 판결을 내릴 경우, 여파는 전 세계 전자 업계에 비상사태로 번질 수 있다.
기술에 대한 표준은 기술적인 시스템에 대한 규범이나 요구사항이다. 중국의 진시황은 전국적으로 수레가 다니는 길의 폭을 일률적으로 정하여 육상교통을 발전시켰고, 간편한 서체를 선택하여 전국의 문자체 통일하였으며, 표준이 되는 자와 저울을 배포하여 백성들의 물물교환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표준은 장치나 기기의 부품 등 구성 요소를 다른 기기의 요소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호환성을 확보하게 해 주고, 기본 품질을 보장하는 한편,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무역 경제의 수단이 되어 새로운 무역규범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또한 기술의 표준화로 인해 소비자들의 편의성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고, 기술혁신의 도구 내지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표준과 특허는 무엇이 다를까? 표준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이용해야 하는 범용성이 있어야 하므로 최대한 보급되어 시장에서 사용자가 많아야 하나, 특허는 권리자를 독점적으로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면에서 상반되는 특징이 있다. 표준은 기술의 공유화가 목적이나, 특허는 기술의 사유화가 특질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된 부분을 조정하기 위해 ISO나 IEC 등의 국제표준화 기구들은 나름의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만일 표준으로 제정되는 기술에 특허권자가 있다면 해당 특허권을 표준 제정 과정에서 미리 공개하고, 표준 채택시에는 일정 요건 하에서 라이선스를 하도록 특허권자에게 강제하게 된다. 이것을 FRAND 요건이라고 한다. FRAND의 뜻은 해당 특허에 대해 공정하고(Fare), 합리적이며(Reasonable), 비차별적으로(Non-Discriminatory) 라이선스를 허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위와 삼성전자의 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표준과 특허의 충돌지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만일 법원이 키위의 손을 들어준다면, 표준특허 소송에서 라이선스를 강제하는‘FRAND 원칙’이 적용돼 전자 기업들은 키위와 대규모 로열티 협상을 해야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키위가 얻을 수익은 천문학적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표준으로 채택되는 기술은 그 파급력이 엄청나다. 기술의 표준화는 기업의 존망과 국가의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선진국들과 기업들이 자신의 기술이 표준으로 채택되는데 목숨을 걸게 된다.
지난 2024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제표준화기구인 ISO의 수장으로 조성환 전 모비스 사장이 취임해서 2년의 임기를 수행중이다. 하지만 중국은 ISO나 ITU, IEC 등 세계 3대 표준화기구의 수장을 이미 배출한 바 있으며, 활동하는 위원의 수도 한국보다 3-5배 이상 많다. 한국에서 국제표준화 활동을 하는 임원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표준화 활동을 하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표준과 특허는 서로 상반되기도 하고, 서로 오버랩되기도 하지만, 한번 표준으로 채택되면 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아무리 중요성을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1류 국가는 표준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정부가 표준과 특허라는 두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정교하고 파격적인 정책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글_ 박병욱 아이피코드 대표 (bwparki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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