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4망(網)의 사이버 국제관계’ 맥락에서 한미일 사이버 안보협력 구도에 대한 입체적 발상 시급
[보안뉴스=김상배 한국사이버안보학회 회장] 최근 한미일 사이버 안보협력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2023년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 선언’은 한미일 3국이 전통안보 분야의 협력 강화를 넘어서 ‘정보·사이버 동맹’의 형성을 모색할 가능성을 기대케 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은 인공지능·양자·우주·사이버안보 분야의 기술개발과 인력양성 및 표준화·규제 등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한미일 3국은 북한의 사이버 위협 및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공동 대응과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위한 공동 지원에 협력하기로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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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미일은 캠프 데이비드 합의의 이행을 위해 고위급 및 실무급 회동을 마련해 후속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2023년 11월 한미일 3국은 ‘고위급 사이버 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했으며, 12월에는 한미일 고위급 사이버 워킹그룹 회의를 개최해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재확인했다.
외교 분야에서도 한미일은 2023년 12월 ‘북한 사이버 위협 대응 한미일 외교 당국간 워킹그룹’을 창설하는 데 합의했고, 2024년 3월에는 외교 당국 간 워킹그룹 제2차 회의를 개최했다. 국방 분야에서도 한미일은 2024년 7월 한미일 국방장관회의를 개최해 해상·공중 및 사이버 공간에서 3국의 공동 군사훈련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통해서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를 정비한 한미일은 고위급 회동의 정례화나 협력 의제의 설정이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 협력의 내용이 주로 선언적인 단계에 머무는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한미일 협력에 참여하는 세 나라의 동상이몽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북핵에 중점을 두는 한국과 포괄적 지역안보에 초점을 맞춘 미일 사이에는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 사이버안보 분야에서도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3국 간에는 이를 수행할 국내외적 여건의 차이가 존재한다. ‘캠프 데이비드 1년’을 맞는 현시점에서 한미일 사이버 안보협력이 실질적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을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사이버 국제관계를 고려하는 입체적 발상이 필요하다.
첫째, 한미일 사이버 안보협력의 ‘주축 링크’인 ‘미일 사이버 동맹’의 전개와 그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은 2013년 ‘사이버 방호정책 워킹그룹’을 창설한 뒤 지속적으로 사이버 안보협력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2015년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에 사이버 안보협력을 포함시켰는데, 미국은 일본의 군사시설과 국가 기반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는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일본이 미국의 사이버 방위역량에 기대어 자국의 사이버안보를 보장받았다는 점에서 미국의 ‘사이버 우산’에 일본이 편입됐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2019년 4월 ‘미일안보조약’ 제5조 집단자위권 조항에 사이버 공격을 포함하는 행보로 이어졌는데, 미일 양국이 집단자위권을 사이버 공격에도 적용한다고 확인했다. 2023년 1월 발표한 공동성명에도 미일 양국은 합동 태세를 강화해 사이버 억지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둘째, ‘미일 사이버 동맹’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일본의 전략적 행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은 미일동맹의 제고를 위해 일본의 사이버안보 능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미국의 요청을 활용해, 이러한 역량의 강화를 집단자위권 행사를 실현할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일본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국가들과 개별 협정을 맺어 사실상 파이브 아이즈 참여국 모두와 협력하고 있다.
미일동맹 차원에서 일본은 미국과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맺고 있으며, 영국과도 협력해 2022년 5월 일본 자위대와 영국군의 공동 훈련절차를 규정한 ‘상호접근협정(RAA)’을 체결했다. 일본은 호주와도 이미 상호접근협정을 체결한 상태인데, 2022년 4월에 개시하기로 합의된 뉴질랜드와의 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면 파이브 아이즈 중에서 캐나다를 제외한 모든 나라와 군사협력과 정보공유가 가능해진다.
셋째, ‘미일 사이버 동맹’과 이를 기반으로 확장하는 일본의 전략 구도에서 한일관계가 ‘약한 고리’임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일 양국은 각각 미국과 ‘사이버 동맹’ 수준의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전략적 사이버안보 협력 프레임워크(SCCF)’를 체결했다. 일본은 2015년 사이버안보 협력 조항을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추가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집단자위권을 사이버 공격에도 적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이미 고도화된 한미 및 미일 간 사이버 안보협력에 비해, 한일 간의 사이버 안보협력 수준은 아직 보안 인프라 구축이나 민관 기술협력 등과 같은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일 간에 활발한 협력이 진행되지 못했던 것은, 일본이 한국보단 사이버 위협에 덜 노출됐기도 했고, 일본의 사이버 대응 역량이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개선되고 있지만, 한동안 악화됐던 한일관계 전반의 분위기도 부정적인 환경요인으로 작용했다.
넷째, 한일관계를 회복해 장차 한미일 관계를 어떠한 아키텍처로 구성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일동맹 구도에 한국을 끌어들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기대하는 한미일 관계의 구도는 당분간은 ‘비대칭 삼각관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사이버 동맹’에 준하는 ‘강한 고리’를 만들기보다는, 고위급 사이버 대화 등을 통해 정책 공조를 진행하는 정도의 포괄적인 형태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한미일 사이버 안보협력의 진행 과정에서 한미일 정보공유협정(TISA)과 같이 미국을 매개로 한 한일 협력의 방식이나 한일 간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체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과 같은 기존의 안보협력 모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2024년 7월 개최된 한미일 국방장관회의에서 공동 군사훈련의 정례화를 명문화한 ‘안보협력 프레임워크(TSCF) 협력 각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미일 관계의 외연을 확장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소다자 협력체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문제이다. 제일 많이 거론된 것은 한국과 일본의 파이브아이즈(Five Eyes) 참여였는데, 최근에는 파이브 아이즈의 ‘구조적 확장’보다는 ‘기능적 확장’이라는 차원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의 쿼드(Quad) 참여도 제기된 바 있지만, 이보다는 한국과 일본의 오커스(AUKUS) 필러-II 참여가 더 큰 쟁점이다.

▲한국사이버안보학회 김상배 회장[사진=김상배 회장]
최근 미국은 오커스 필러-II에 일본을 초청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일본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전략도 오커스 구도와 한미일 구도를 ‘결합’하기보다는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조짐이다. 또한 최근에는 나토와 인도·태평양 4대 파트너 국가(IP-4)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의 협력이 주목받고 있는데, 2024년 7월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 사이버 방위, 허위조작정보 대응, 첨단기술 협력 등에서 나토와 IP-4 간의 협력이 언급됐다.
궁극적으로 한국이 당면한 핵심 과제는 한미일이나 여타 소다자 구도 내에서 한국의 위상을 설정하는 문제다. 북핵 대응이 한국이 원하는 바라면, 한미일 구도의 강화는 나쁘지 않은 방안이다. 미국이 주도해 인도·태평양 지역질서를 재편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구도의 적극적 수용은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양새를 띠는 데다가, 북중러 삼각관계에 대응하는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의 위상이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위계적 구도에서 설정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최근 미중 갈등의 양상을 볼 때, 한미일에 대한 지나친 밀착과 미국의 정책에 대한 적극적 동조화가 초래할, 예기치 않은 외교적·경제적 비용 발생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변수들에 대한 복합적인 고려를 바탕으로 ‘주변4망(網)의 사이버 국제관계’라는 맥락에서 한미일 사이버 안보협력의 구도를 입체적으로 보는 발상이 시급히 필요하다.
[글_ 김상배 한국사이버안보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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