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영화] 소년들의 손에 무엇을 묻힐 것인가

2024-06-06 11:49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url
소년병 이야기 다룬 ‘집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메카물의 고전인 ‘건담’까지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아프리카 대륙에서 활동하는 테러 단체들의 여러 만행 중 하나는 소년병이다. 자신들이 공격한 마을들에서 소년들을 납치하고, 그 소년들에게 총을 쥐어준 후 자신들과 합류해 싸우라고 시키는 건데, 이 한 줄 말로 소년병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실제 소년병으로 살아왔던 한 피해자가 직접 쓴 경험담인 <집으로 가는 길>에는 책 한 권 만큼의 참상이 묘사되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들인데도 살인에 반복적으로 가담했을 때 그 마음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약을 하게 되고, 정상적인 소통과 생활의 방법을 상실하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인간이 아니라 살인병기로 둔갑한다.


[이미지=교보문고]

소년병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 목사는 직접 총을 들고 아이들을 구하러 나서기도 했다. <머신건 프리처>라는 실화 바탕 영화가 이 이야기를 담는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되는 종교인의 모습에 여러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가치관의 차이를 떠나 소년병의 참상을 색다른 시각으로 전달했다는 데에 이 영화의 의의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집으로 가는 길>과 달리 이미 소년병 생활을 하는 바람에 망가져 버린 아이들의 마음을 만지는 데에까지 이야기가 미치지는 못하기에 이 <머신건 프리처>는 긴 여운까지 남기지는 못한다. 그 목사님은 지금쯤 물리적 구출 이후, 심리적 구출까지 시도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이따금씩 들곤 한다.

이제는 ‘메카물’의 고전처럼 되어버린 <건담> 시리즈가 갑자기 생각이 나 드문드문 돌려보았다. 너무 어렸을 때 봤던 거라 주인공의 이름도, 이야기의 굵은 줄거리도, 중요한 사건들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마치 처음 관람하는 것 같았다. 전개나 인물 모두가 새롭기만 한 가운데 한 가지 ‘아, 맞다, 그랬었다’하며 기억이 새록새록한 게 있었는데, 바로 주인공 아무로의 그 신경질적인 태도였다. 예전에 봤을 때도 ‘쟤는 맨날 짜증만 부리네’라는 인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정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보니 아무로 역시 소년병이었기 때문이다. ‘왜 민간인인 내가 군인들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라는 아무로의 끊임없는 질문은 갑자기 전장으로 끌려온 그에게 있어 타당했다. 전투에서 사람을 죽이고 돌아온 그가 감정의 요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도 그럴 만했다.


[이미지=넷플릭스]

소년병이 되었으면서도 유일하게 마음이 망가지지 않은 주인공이 있는데 <트랜스포머>의 샘이다. 범블비인줄 모르고 자동차를 산 것 때문에(그리고 조상을 잘 둔 덕에) 시리즈 내내 전쟁터로 끌려다니면서 군인처럼 싸울 것을 요구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뒤에서 응원하는 역할이 대부분이고, 싸워서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오토봇들이기 때문에 샘의 마음은 멀쩡하다. 유머 감각도, 여자 친구에 대한 사랑도, 부모와의 정겨운 티키타카도 고스란히 유지한다. 불평이 좀 많긴 하지만, 그건 그냥 평소에도 그런 듯한 캐릭터이지, 소년병 신세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미지=넷플릭스]

아이의 손에 뭘 묻게 하느냐가 그 아이의 성장을 크게 좌지우지 한다. 아이는 발달 단계에 맞게 자기 발도 만지고, 연지곤지도 하고, 짝짝꿍도 하다가 분유병을 움키고 장난감을 낚아챈다. 그러다가 책을 넘기기도 하고 땅을 짚어 서게 된다(순서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보안 콘텐츠므로). 그러면서 자기 신체를 인지하고, 소근육을 발달시키고, 뇌까지 자극하면서 걷고 뛰며 주변 환경을 조우한다. 먹는 게 우리 몸을 만들듯이, 손을 쓰는 것에 따라 인지와 성향이 영향을 받는다. 손에 책을 묻히면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되고, 블록을 묻히면 조립과 분해의 논리를 익히고, 피를 묻히면 병기가 된다.

요즘 아이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묻는다. 그러다 태블릿도 묻고, 컴퓨터도 묻는다. 온갖 신기술이 등장하고 세상이 급격하게 디지털화 되어간다는 걸 생각하면 미래 그 자체가 아이들의 손에 묻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밀레니얼 세대들만 해도 신기술을 수용하는 속도가 기성 세대의 그것을 아득히 넘어선다고 하니 미리 스마트 장비 손에 잔뜩 쥔 채 자라나는 아이들이 기술에 대한 낯섦으로 헤맬 일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반쪽의 미래일 뿐이다. 물리 세계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다면 사이버 공간에는(그리고 어쩌면 더 많은 세상사에는) 작용 부작용의 법칙이 있다. 신기술 활용에 지나치게 능숙해지면 그 부작용으로 보안에 어설퍼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IT 기술을 가장 잘 다루는 부류로 손꼽혀도 손색이 없는 개발자들은 요즘 가장 많은 사이버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부류 중 하나다. 개발자를 노리는 공격의 성공률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를 낸 적은 없지만, 가성비 중요시 여기는 공격자들이 수년 째 반복해서 개발자들을 노린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러 통계에서, 어른들보다 훨씬 기술을 잘 활용한다는 밀레니얼은 보안과 관련된 지표에서 만큼은 밀리기도 한다.

당연하다. ‘내가 잘 한다’고 여기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초보 운전 딱지를 막 떼려는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며, 기자들도 자기 분야에 대한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기 시작하는 2~3년차에 가장 부끄러운 기사를 많이 써내는 편이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2학년을 영어로 sophomore라고 하는데, sopho는 ‘현명하다’, more는 ‘어리석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현명하면서 어리석다’라는 뜻인데, 이제 막 신입 티를 벗어 ‘나 어느 정도 안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의 그 어설픔을 잘 나타내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미래 기술을 손에 묻혀줘 능숙하게 만드는 건, 작용 부작용의 법칙에 의하면, 보안에 대한 허술함의 씨앗을 심는 것과 동일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손에서 스마트 장비들을 다 빼앗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대 기술에 대한 친숙함도 심어주되, 이제는 보안도 같이 그 손에 묻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했다. 아이들 손에 보안을 묻히려면 부모부터 보안을 온 몸에 뒤집어써야 한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여태까지 우리는 ‘잘 한다’라는 말 안에 ‘안전’이라는 개념을 좀처럼 섞지 않아 왔다. ‘잘 한다’는 건 맥락에 따라 ‘속도가 빠르다’라든가 ‘성적이 뛰어나다’ 혹은 ‘내 마음에 든다’ 정도의 의미를 가졌다. ‘느리지만 안전하게 한다’라는 식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느리지만 안전하게 한다’는 주로 ‘답답하다’라든가 ‘째째하다’ 등의 표현에 더 많이 실렸었다. 부모들 안에서부터 이 개념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 애는 컴퓨터를 잘 해” = “코딩을 빨리 해” + “타자가 빨라” + “검색해서 정보를 많이 찾아” + “신기한 걸 곧잘 만들어”...

이 공식은 이제 몇 가지 요소를 더 갖게 된다.

“우리 애는 컴퓨터를 잘 해” = 위의 모든 것 + “아무 거나 클릭하지 않아” + “요즘 해커 트렌드를 잘 알고 오히려 날 가르쳐줘” + “업데이트도 꼼꼼하게 해”....

여기서는 컴퓨터를 예시로 들었지만 생활 곳곳에 응용할 것들이 존재한다. 밥을 ‘잘’ 먹는다는 건 이제부터 ‘탈 나지 않게 스스로 알맞은 양을 조절해가며 먹을 정도로 자제력을 발휘한다’는 것까지를, 수학을 ‘잘’ 한다는 건 이제부터 ‘답을 제 시간 안에 써넣을 뿐만 아니라 검산까지 꼼꼼하게 한다는 것’까지를, 외국어를 ‘잘’ 한다는 건 ‘모국어에 대한 통찰이 덩달아 늘어난다는 것까지’를 아우르도록 말하게 되면 어떨까. 부모의 말이 이렇게까지 바뀐다면 아이들이 각종 IT 기술에 능숙해지면서 보안도 챙길 만한 자세가 잡힐 것이다.

아이들이 맞닥트릴 미래의 위협을 다 예측할 수 없는 때에 부모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일은 우리 스스로의 말을 바꾸는 것일 테다. 억만금을 쌓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 다행이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헤드라인 뉴스

TOP 뉴스

이전 스크랩하기


과월호 eBook List 정기구독 신청하기

    • 이노뎁

    • 인콘

    • 엔텍디바이스코리아

    • 마이크로시스템

    • 다봄씨엔에스

    • 아이디스

    • 씨프로

    • 웹게이트

    • 씨게이트

    • 하이크비전

    • 한화비전

    • ZKTeco

    • 비엔에스테크

    • 비엔비상사

    • 원우이엔지
      줌카메라

    • 지인테크

    • 인텔리빅스

    • 이화트론

    • 다누시스

    • 테크스피어

    • 렉스젠

    • 슈프리마

    • 혜성테크윈

    • 시큐인포

    • 미래정보기술(주)

    • 비전정보통신

    • 다후아테크놀로지코리아

    • 경인씨엔에스

    • 지오멕스소프트

    • 성현시스템

    • 한국씨텍

    • 프로브디지털

    • 디비시스

    • 유니뷰코리아

    • 스피어AX

    • 투윈스컴

    • 세연테크

    • 트루엔

    • 위트콘

    • 유에치디프로

    • 주식회사 에스카

    • 포엠아이텍

    • 세렉스

    • 안랩

    • 제이슨

    • 에스지에이솔루션즈

    • 이롭

    • 샌즈랩

    • 쿼리시스템즈

    • 신우테크
      팬틸드 / 하우징

    • 에프에스네트워크

    • 네이즈

    • 케이제이테크

    • 셀링스시스템

    • 에이티앤넷

    • 아이엔아이

    • (주)일산정밀

    • 새눈

    • 에스에스티랩

    • 유투에스알

    • 태정이엔지

    • 네티마시스템

    • HGS KOREA

    • 에이앤티코리아

    • 미래시그널

    • 두레옵트로닉스

    • 지와이네트웍스

    • 넥스트림

    • 에이앤티글로벌

    • 현대틸스
      팬틸트 / 카메라

    • 지에스티엔지니어링
      게이트 / 스피드게이트

    • 동양유니텍

    • 모스타

    • 엔에스정보통신

    • 구네보코리아주식회사

    • 엘림광통신

    • 엔시드

    • 넥스텝

    • 메트로게이트
      시큐리티 게이트

    • 포커스에이치앤에스

    • 티에스아이솔루션

    • 엠스톤

    • 글로넥스

    • 유진시스템코리아

    • 카티스

    • 세환엠에스(주)

Copyright thebn Co., Ltd. All Rights Reserved.

MENU

회원가입

Passwordless 설정

PC버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