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거래 유도로 거래세 또는 소득세 징수, 적극 고려해야
범죄에 악용되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 보호되는 암호화폐 개발·보급해야
[보안뉴스= 고려대학교 이상진 정보보호대학원장] 암호 기술이 사회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가 공인인증서로 알려진 공개키 기반 구조(PKI)이다. PKI가 있어 은행에 가지 않고 돈을 보낼 수 있고,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한 민원서류도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또 한번 암호기술이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다. 해시 함수와 공개키 암호에 기반을 둔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했으며, P2P와 결합함으로써 중앙통제 없이 이중 사용을 방지할 수 있는 암호 화폐인 비트코인이 출현했다. 이제부터 지폐 없이 살 수 있게 될까?

[이미지=iclickart]
비트코인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자발적인 참여자들의 협력으로 유지된다. 사이버공간에서 감시당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통신할 수 있게 해준 시스템이 토르(Tor)라면, 거래를 추적할 수 없게 함으로써 프라이버시를 지켜 주는 시스템이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사이버 공간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고 지갑 역할을 하는 비트코인 주소를 임의로 무한정 생성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된다. 물론 비트코인 이동을 추적할 수 있지만, 거래를 복잡하게 해주는 믹싱 서비스를 이용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환전하면 실소유자를 거의 알아낼 수 없다.
토르와 비트코인은 인터넷상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독재 국가의 반체제 인사와 안전하게 통신하고, 안전하게 후원할 수 있다. 위키리크스에 비리를 안전하게 제보하고, 추적당하지 않으면서 후원할 수 있다. 과연 그것뿐일까?
토르를 통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딥웹(deep web)이 있다. 딥웹에 있는 사이트에는 무엇이 게시되어 있을까?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열람하면 처벌되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범죄 정보이다. 무기 밀매, 청부 살인, 마약 거래, 아동 음란물 거래 등 반인륜 범죄 정보가 널려 있고, 비트코인이 결제수단이다.
이렇듯 비트코인이 실질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분야가 사이버 범죄이다. 비트코인이 없었다면 랜섬웨어가 활개치지 못했을 것이다. 암호 응용 분야로 전자화폐가 활발히 연구될 때, 완전 범죄 가능성이 제기됐다. 유괴의 몸값을 익명이 보장되고 추적할 수 없는 전자화폐로 받으면 돈을 매개로 하는 수사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익명성과 추적 불가능성이 보장되지만 범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거래에 한정해 추적할 수 있는 방안이 많이 제안된 바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범죄 방지 기능이 없다. 어쩌면 비트코인이 랜섬웨어를 비롯한 사이버 범죄를 부추긴 건 아닐까?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현금 없는 사회가 실현될 수 있지만, 아직은 모든 물품의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비트코인과 현금을 교환해주는 교환소가 필요하다. 이를 거래소라 부른다. 거래소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각종 암호화폐를 교환해준다.
그런데 암호화폐의 현금 교환 가치가 환율처럼 변동하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상승했다. 비트코인을 보유만 하고 있어도 현금 가치가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거래소의 적극적인 홍보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으면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능은 사라지고 현금 교환 가치에만 주목해서 아무런 효용도 없이 매매를 반복하면서 수익만 추구하고 있다. 거래소를 통해 변동폭 제한도 없고, 시간 제한도 없이 암호화폐가 실시간으로 매매되고 있다. 거래소를 통한 암호화폐 매매는 거래소 내부의 데이터베이스상에서 오고 가는 것일 뿐 암호화폐의 본질적인 거래는 아니다. 거래소를 도박장으로 해석한 법무부 장관의 말도 일리가 있다.

▲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그렇다고 거래소를 폐쇄하면 투기가 해결될까? 전 세계 어디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거래소를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래소가 없어지면 외국에 있는 거래소에 계좌를 만들 것이다. 이미 한국어로 서비스하는 외국의 거래소가 있다. 거래소 폐쇄는 답이 아니고, 국부만 유출시킬 것이다.
암호화폐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개인에게 엄청난 손해를 줄 위험한 암호화폐 거래소는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 암호화폐는 익명으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돈 세탁, 외화 반출, 탈세를 본질적으로 막을 수 없지만 거래소를 규제하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실명 거래를 유도하는 정부의 정책은 맞다. 또한, 거래세 또는 소득세에 대해서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범죄에 악용되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암호화폐를 개발·보급해야 한다. 이러한 암호화폐가 있다면 현금 발행·유지·관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암호화폐가 보여준 가능성을 극대화하면서 내재된 제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가 있었으면 한다.
[글_ 이상진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장(sangji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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