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김성미 기자]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진 발생시 이를 신속하게 파악한 뒤 대책을 마련하는 시스템(BCP)을 도입하는 일본기업이 늘고 있다.
▲일본 중부지역의 지진 피해 예상 지역[이미지=중부전력]
BCP(Business Continuity Plan)란 재난이 발생해도 기업의 비즈니스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재해·재난으로 정상적인 운용이 어려운 고객서비스의 지속성을 보장, 핵심 업무기능을 지속하는 환경을 조성해 기업 가치를 최대화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진앙지인 일본 동북지역은 물론, 일본 전국의 기업들에 큰 영향을 줬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중부지방(나고야 인근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은 지진 다발국으로 전국적으로 6년 전과 비슷한 혹은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중부지방의 주요 일본기업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은
일본의 대표 자동차 제조사인 도요타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시 공급망의 단절로 인해 발생한 부품 부족으로 차량 생산이 불가능했다. 이후 도요타는 비상상황 발생시 부품의 대체생산이 가능한 회사나 생산시설 복구 시기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사인 아이신 정밀기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지진 피해가 발생한 지역의 지도와 재해 정보, 거래처의 데이터를 연동시키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그 결과 2016년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 당시 아이신 규슈를 비롯한 자회사들이 피해를 보았음에도 지진 발생으로부터 수 시간 내에 상황을 파악해 신속한 대체 생산을 할 수 있었다.
중고차 경매회사 USS는 지진으로 발생하는 화재에 대비하는 한편, 쓰나미를 대비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매년 9월 총 17개의 경매장에서 방문객들을 피난시키고 경로를 유도하는 훈련이다.
일본 기업의 BCP에 대한 외부평가
일본 기업 중에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BCP 훈련을 하면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객관적인 외부평가를 받는 회사도 있다.
메이코 건설은 지난 2014년에 BCP 시스템을 개편한 후, 쓰나미 피해가 예상되는 해안 연안부의 현장에서 해저드 맵을 게시하는 것과 피난 장소의 확인을 의무화했다. 거래처를 포함해 현장마다 연 1회씩 피난훈련도 실시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메이코 건설은 2015년 일본정책투자은행이 평가하는 BCP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다. 해저드 맵이란 지진·화산분화·태풍 등이 일어날 경우, 재해를 일으키기 쉬운 각종현상인 진로·도달 범위·소요시간 등을 나타낸 지도다.
사무용품 메이커 우마지루시는 2016년 12월 레질리언스(Resilience) 인증을 획득했다. 일본의 내각관방장관이 추진하는 국토강인화계획을 기반으로 하는 인증제도다.
국토강인화계획은 어떠한 자연재해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억제해 신속하게 복구가 가능한 강인함과 유연함을 지닌 국토·지역·경제사회를 구축하는 것으로 제2차 아베 내각의 주요 정책 중 하나다.
일본철도와 전력회사의 지진 대책
일본철도와 전력회사들은 동일본 대지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쓰나미 피해가 컸던 해안가 지역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파괴된 일본의 모습[이미지=야후 재팬]
2017년 2월 JR 도카이는 2009년부터 추진해 온 신칸센의 탈선방지 공사의 대상을 지진 발생시 특히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되는 부분(신칸센 선로 596㎞)에서 전체 노선(신칸센 궤도 1072㎞)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약 2,100억엔이 투입될 예정으로 완공 목표는 2028년이다. 일본 중부지역의 전력기업인 중부전력은 안전문제로 정지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을 목표로 하마오카 발전소의 안전대책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총 공사비 약 4,000억엔의 대규모 공사다.
이밖에도 설비의 방재 체재를 정비했고 사원을 대상으로 교육과 훈련을 통해 대응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부전력 카츠노 사장은 “6년 전의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를 교훈삼아 두 번 다시 같은 사고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안전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中企 BCP 도입률 40% 넘어
일본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진을 대비한 BCP의 도입이 상당히 진행됐다. 일본 내각의 방재담당이 2016년 발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이 BCP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사는 2016년 1월 21일부터 2월 29일까지 5,070개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이 중 1,996개사로부터 응답(응답률 39.4%)을 받았다. 대기업은 총 2,206개사 중 861개사(39.0%)의 조사에 응했다. 중견기업은 1,465개사 중 556개사(38.0%)가, 기타 1,399개사 중 579개사(41.4%)의 답변했다.
조사 결과, BCP의 도입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60.4%가 ‘이미 도입했다’고 답해(2013년 대비 6.8% 증가) 처음으로 60%를 넘었다. ‘도입 중(15.0%)’을 더하면 80%에 달하는 기업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소기업은 29.9%가 ‘이미 도입했다’고 답했으며(2013년 대비 4.6% 증가), ‘도입 중(12.1%)’이란 답변을 합하면 도입률이 40% 이상에 달했다.
대기업에서는 ‘BCP 도입 예정’이라는 응답이 16.4%(2013년 대비 1.4% 증가)였던 반면, ‘도입할 예정이 없다’는 응답은 5.1%(2013년 대비 3.2% 감소), ‘BCP를 모른다’는 응답은 0.8%(2013년 대비 1.4% 감소)로 전년 조사보다 감소했다.
한국 기업도 지진대비 BCP 도입 필요
나고야무역관은 한국도 BCP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몇 년전만 해도 한국은 일본과 매우 인접한 지역임에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안전지역으로 분류됐으나 더 이상 지진 안전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시 일본기업들은 자국의 생산거점을 더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한국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일본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 안전함을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9월 경주지역에서 진도 5.8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그 이후에도 수차례 여진이 이어지는 등 한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역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지진을 겪어오면서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도 많이 쌓여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에 비하면 무방비 상태다.
다행히 아직까지 한국에서 생산설비가 파괴될 정도의 지진이 발생한 적은 없지만 가능성이 충분한 만큼 일본을 포함한 주변 국가의 사례를 참고해 기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성미 기자(sw@infoth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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