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오다인 기자] 며칠 전 친구가 “사이버는 현실 문제”라고 말했을 때 감동했다. 그가 사이버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예술계 종사자라는 점도 감동을 키웠다. 사이버와 현실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을 뿐더러 더욱 어려워진 건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니지만 ‘사이버 문제=현실 문제’라고 사람들이 비로소 체감하기 시작한 건 아주 최근의 일인 것 같다.

▲ ‘사이버’라는 말을 들으면 여전히 이런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나? [이미지=iclickart]
그러나 문제는 ‘사이버’라는 단어다. 정보보안 전문매체의 기자로 일하며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사이버다. 사이버는 대개 사이버 보안 전문가, 사이버 보안 전문업체, 사이버 범죄, 사이버 공격, 사이버 테러와 같이 뒤에 오는 단어를 수식하며 사용된다. 그냥 보안 전문가라고 하지 않고 굳이 사이버 보안 전문가라고 호명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물리 보안과 정보 보안을 구분하면서 후자를 가리킬 때 사이버 보안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사이버 문제가 아직까지 현실로 완전히 와 닿지 않기 때문에 구태여 사이버를 붙이는 경우다. 두 번째 경우, 사이버가 붙으면 뭔가 덜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현실에서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일반 대학교와 사이버 대학교 사이 어감의 차이 또한 사이버라는 말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에 기인할 것이다. 교육이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사이버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데엔 컴퓨터 네트워크나 인터넷이 ‘가상현실’을 표방한 것과 관련돼 있다. 가상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따라서 사이버는 현실이 아니라는 막연한 인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사이버 문제로 기업이 망하고 사람이 죽는데도 사이버는 아직까지 좀 덜 중요한, 현실적이지 않은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참고로 사이버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이온’에 나오는 ‘키베르네테스(kybernetes)’로 알려져 있다. 키베르네테스는 배의 키를 잡는 사람, 즉 선장을 뜻하는데 플라톤은 인간 집단이 나아갈 방향을 지도하는 통치자의 의미로 썼다. 1948년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논문에서 이 같은 개념을 차용해 사이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인공두뇌학으로 번역되는 사이버네틱스는 생명체나 기계가 네트워크를 형성할 때 어떻게 소통하고 제어되는지 연구한 학문이다. 1984년에 이르러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이 ‘뉴로맨서(Neuromancer)’라는 소설에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처럼 사이버라는 말의 기원을 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원래 사이버는 공상 과학 소설보다 인간 사회의 실체적인 움직임과 훨씬 더 깊은 관련이 있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사이버라는 말을 사용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라이브러리를 검토한 결과, 1969년 4월 23일 경향신문 기사에서 사이버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사는 ‘인공지능시대’라는 기획의 마무리 편으로 “지식 혁명의 전위, 이것이 콤퓨터”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사이버라는 말은 기자가 인공지능에 대해 ‘사이버내틱스 또는 바이오내틱스’라고 부연 설명할 때 등장한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9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도 사이버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홍수처럼 쏟아진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사이버라는 말은 지난 수십 년간 거대한 오해를 만들고 현실을 왜곡해 왔다. 세계적인 보안 전문가 존 딕슨(John Dickson)은 본지의 ‘뜻도 없는 단어 사이버, 이제 바꿔도 되지 않나’(2015년 11월 24일자)라는 기고문에서 사이버라는 단어의 애매모호함을 비판한 바 있다. 딕슨은 “사이버라는 말처럼 과용되는 것도 없다”며 “이제 사이버라는 말이 들어간 내용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게 돼버려 소통이 단절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단어를 정확하게 쓰려면 반대말을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 사람이 있다. 사이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사이버의 반대말이 현실이라면 사이버라는 말 자체를 이제 폐기해야 하지 않을까.
[국제부 오다인 기자(boan2@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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