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영화] 세 얼간이와 ‘새로운 것’의 함정

2017-01-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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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우드 기록 깬 화제의 영화 <세 얼간이> 보고 나니
새로운 것만 보도록 훈련받은 눈, 식상함 속의 중요한 것들 보지 못해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살다보면 희생되는 것들이 있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읽으려고 사놓은 책, 나중에 볼 생각으로 어딘가 메모해 놓은 영화 제목, 언제가 볼 결심으로 메신저 프로필만 넘겨보는 옛 친구들과 그 자녀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날 버킷 리스트가 되는 걸까. 기자에겐 그 중 하나가 한 때 ‘발리우드(인도 영화 통칭)’ 최고 히트작이라고 알려진 <세 얼간이>라는 영화였고, 마침 후배 한 명이 아직도 그걸 못 봤냐며 강력히 추천하기에 시간을 냈다.



하지만 실망, 실망, 대 실망. 걸핏하면 시청자 대신 울어주는 출연진들은 그렇다 쳐도, 주인공 ‘란초’의 대사는 자체 스포일러 수준일 정도로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사실 그 주인공은 놀 거 다 놀아도 늘 최고점수를 기록하는 천재이니 스토리를 따라가기가 곤욕스러웠다. 게다가 그 메시지가 새롭고 신선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80년대 우리나라 전국 국민학교에 광풍을 몰고 온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나 ‘어른들은 몰라요’와 전혀 다르지 않았으니까.

영화를 겨우 끝마치고 클리셰와 신파 덩어리인 이 영화가 얼마나 흥행했을까 기록을 찾아봤다. 난리도 아니었다. 각종 인도 영화 시장의 기록을 갈아치운 역사적인 작품이었던 것이다. ‘햐, 인도에서는 이 교육열 문제가 이제 시작된 건가?’하는 궁금함이 들었다. 우린 2~30년 전에 다 노래하고 외쳐본 것들이다, 인도인들아, 하는 비틀린 우월감이 아니었다. 선생님과 부모님 앞에서 행복이 어쩌고, 어른들이 어쩌고를 줄기차게 외쳤던 장본인이 어른이 되고 보니 ‘학교 성적과 어른들의 말이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닌데...’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맞는 줄 알고 흡수했던 ‘옛 진리’를 오랜만에 대면했을 때의 반응은 ‘식상하고 지겹다’와 ‘아, 그러고 보니...’로 갈린다. 전자의 반응은 거의 본능처럼 즉시 나타나고, 그 적대적인 감정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후자의 반응이 나타난다. 물론 식상하고 지겨운 걸 못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 그러고 보니...’하고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난 거기에 매우 큰 함정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1. 그 ‘옛 진리’가 여전히 유효할 때
식상한 것들이 여러 사람의 입을 타고, 다양한 포장 방법을 통해 강조된다는 건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거나, 아직도 인식 개선이 되지 않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어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언급될 만하니까 반복되는 건데, ‘식상해 보이기’ 때문에 본질을 탐구하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는다. 항상 새 것만 찾도록 우리가 눈을 길들이는 동안(혹은 그러한 눈에 길들여지는 동안),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검토해보는 습관은 젊은이의 버킷 리스트처럼 희생된다.

본지에 꾸준히 기고를 하고 있는 보안 전문가 리사 마이어스(Lysa Myers)는 이번 주 기고문인 ‘매일 똑같은 잔소리보다는 더 깊은 고민 나눌 때’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매일처럼 발생하는 보안사고와 정보 유출. 매일처럼 실리는 전문가들의 똑같은 권장 사항, 팁, 충고들. 어제 사건이 터졌다면, 오늘은 여러 전문가들이 암호를 바꿔라, 경보 시스템을 점검하라, 가시성을 확보하라, 신용 동결을 신청하라 등의 목소리가 쏟아질 차례다.”

그 말 그대로, 새로운 해킹 기술이 발견되거나 사건이 터지면 보안전문가들은 늘 다음 중 하나 이상의 팁들을 공유해준다. 1) 최신 업데이트 적용, 2) 암호 변경하고 이중 인증 옵션 활용, 3) 수상한 링크 클릭 말고, 4) 수상한 메일 열지 말고, 5) 수상한 파일 실행하지 말고, 6) 공식 스토어에서만 앱을 구매, 7) 가까운 전문가와 상담. 기업들을 향한 보안 지침도 대동소이 하다. 1) 가시성을 확보하고 2) 서버 업데이트 하고 3) 직원 교육을 실시하라는 것이다.

본지를 포함해 국내외 다양한 보안 매체들도 늘 기사가 비슷하다. 1) 랜섬웨어 터졌음, 2) 새로운 멀웨어 발견됐음, 3) 새로운 취약점 발견됐음, 4) 새로운 봇넷 찾았음, 5) 러시아랑 중국이 또 미국이랑 아웅다웅함, 6) 보안 전문가가 새로운 해킹 기법 발견했으니 주의 요망, 7) 이 기업 저 기업이 패치 발표했으니 설치 요망.

이런 것들이 정말 ‘식상하기만’ 한 내용인가? 보안의 여러 지침들이 식상하게 보인다면, 그건 아직 우리가 끈질기게도 보안의 기본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보안 칼럼들이 ‘정말 할 얘기가 없나보다’라고 느껴진다면, 우리 자신에게 해야 할 손가락질을 애꿎은 곳을 향해 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핑계, 조금 더 어려운 표현을 빌리자면 책임전가. 식상해서 지겹다는 게 맞는 평가가 될 때도 있지만, 아닐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식상하다는 감정에 눈이 가려져 있으니, 우린 똑같은 것에 당하고 또 당하는 것 아니겠는가.

2. 그 ‘옛 진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때
반대로 식상하다고 치워버린 ‘옛 진리’가 우연찮게도 ‘거짓’으로 전락해버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결과적으로 잘못된 걸 버린 것이니 잘 된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건 잘 된 거라기보다 ‘어쩌다 운이 좋은 편’에 가깝다. 스스로 분별하여 버린 게 아니라 ‘식상하니 지겹다’는 감정에 근거를 둔 행동이므로, 여기서 훈련이 된 건 ‘분별력’이 아니라 ‘감정에 충실한 법’ 뿐이기 때문이다. 감정에만 충실한 걸 보통 ‘치기 어리다’고 한다. 두 번째 거짓을 구별해내야 할 때, 우린 스스로의 분별력이 아니라 또 다시 운에 기대야만 한다.

물론 앞서가는 누군가가 ‘아, 그 이론은 잘못된 것이고, 대체할 새로운 이론은 이 것이오’하고 멋지게 등장할 수도 있다. 평범한 대다수는 그 새 진리를 편하게 따라만 가면 된다. 운에 기대는 것에 비교하자면 안정성과 신뢰도 측면에서 훨씬 더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 따끈따끈한 새 이론 역시 언젠가 거짓 판명 받지 말라는 법 없다. 분별력은커녕 분별을 해보고자 하는 습관조차 없는 사람에겐, 저명하고 믿을만한 누군가가 설파하는 새 진리를 채택하는 것과 그저 운에 기대는 것이 결국엔 같다. 묵직한 진리에 다가가는 우리의 방법론이 새털처럼 가볍기만 한 건 아닌지.

최근 정권의 변화 직전에 놓인 미국의 보안업계가 보이는 모습에서 이러한 가벼움이 보인다. 미국 대선 중 발생한 해킹 사건을 러시아가 했느냐 마느냐를 두고 입장이 갈리고 있는데, 이 광경이 영 낯설다. 여태껏 러시아나 중국이 미국을 해킹했다고 누군가 보고서를 내면 반대파가 거의 없었다. 있어도 묻혔다. 그런데 ‘친 러시아’ 성향을 가졌다고 알려진 새 대통령의 취임식이 가까워오니까 ‘정말 러시아일까?’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그런 의심들이 매체에도 실리기 시작한다. 분명 진실은 하나뿐이고, 정보보안이야말로 그 하나밖에 없는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분야인데, 바람 줄기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새털 같은 가벼움이 우습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다.

우린 항상 새로운 걸 좋아한다. 새롭기만 하면 아름다워 보이고, 타당하게 보이고, 옳아 보이기까지 한다. 새로운 것에 열광하고, 반응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면 그럴수록 새로움에 중독되기 시작하고, 이전 것에 대한 식상함은 점점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소름끼치도록 자연스럽게, 아무렇게나 버린 식상한 것들 속에 섞여 있는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

<세 얼간이>의 러닝타임을 견디지 못하고 꺼버렸다면 기자는 가보지 못한 인도의 풍경들과, 발리우드 특유의 뮤지컬 타임도 못 봤을 것이고, 발리우드 영화 전체에 대한 옳지 못한 선입견이 생겼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식상함 속에서 발견하는 보석들이 있어 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 정보보안 업계의 기자 노릇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듯 하다. <세 얼간이>를 다시 틀지는 않겠지만, 발리우드 영화라면 또 한 번 시도해볼 의향이 남아 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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