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재 없던 천 번의 연재 -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를 축하하며

2015-12-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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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위상,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지고
커다란 변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더 중요해


▲ 마음의 소리 1000화 중에서
[보안뉴스 문가용] 만화가 유해물 취급받던 때에는 누군가 귀신처럼 잘도 구한 해적판을 친구들끼리 물어물어 돌려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 유해한 걸 탐독하던 아이들은 만화가 왜 해로운가를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했지만, 사실 그걸 따질 시간에 지난주에 나왔다던 신간의 해적판을 누가 구했고 지금 누가 빌려갔으며 그 뒤로 대기인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보는 게 더 시급했다. 가끔 동네에서 힘 좀 쓴다는 녀석이 갑자기 새치기를 하는 수도 있었고, 해적판의 인쇄나 제본 상태가 형편없는 경우가 많아 여러 손을 타면 너덜너덜해지기도 했기 때문에 최대한 앞자리를 예약해야 했다. 당시 우리는 그 몇 장의 감칠맛 나던 그림들이 무슨 일본 순사들로부터 도망친 피투성이 독립투사라도 된 것인 냥 기를 쓰고 숨겨서 만화를 생존시켰다.

아나키스트가 아니라면 나라가 정한 정책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나라가 정한 정책이 다 옳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인간은 수없이 경험해왔다. 옳지 않은 정책이 시행되는 경우 궐기대회나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뜯어고칠 수도 있지만 이는 성공여부도 불투명할 뿐더러 복수나 분열 등의 후유증도 뒤따른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역사를 조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사실 아니던가.

가장 확실한 변화는 나라에서 만화를 아무리 때려잡아도 꾸역꾸역 교과서 사이에 해적판 끼워놓고 다니던 당시 중고등학생들의 자발성처럼 권력의 개입이 적으며 느리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느리고 자발적인 변화의 작은 일부였으므로 어느 덧 웹툰이라는 새로운 문화장르가 생기고 그것이 해외로 수출까지 되어 좋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에, 조금은 어깨를 뿌듯이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웹툰을 유해물로 보는 시각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고로 기자는 오늘로서 단 한 번의 휴재 없이 1주일에 두 번, 10년 동안 1000화를 그려낸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가 이룬 놀라운 업적의 일부에는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의 숨은 공로도 있음을 주장한다.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가 당시 부려댔던 놀라운 감시 우회 능력을 추억한다!

......고 자위한다. 뭘 주장하고 추억할까. 그저 우리가 저질렀던 ‘일탈의 행동’들로부터 좋은 결과를 누군가 뽑아내 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뿐. 지금처럼 만화나 웹툰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때보다 많이 너그러워지지 않고 조석과 같은 만화가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당시 했던 것들은 말 그대로 한 때의 죄책감 같은 일탈로 남아있었을 터.

큰 변화에는 많은 역할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눈물로 씨를 뿌리고, 누군가는 지나가다가 무심한 오줌 한 번 갈기고, 누군가는 그 결실을 얻는다. 만화 억제 정책으로 하루아침에 꿈을 잃고 벌이를 잃고 터전까지 잃었던 당시 만화가들과 만화가 지망생들이 남몰래 꾸역꾸역 그렸던 그림들이 지금 웹툰 문화의 씨앗이자 거름이었다면 그런 만화를 해적판이라도 부지런히 퍼다 나른 꼬마들은 운 좋게 오줌 한 번 갈긴 것으로 이런 자위글 써 갈길 수 있는 배설자이며, 그 명맥을 이어받아 끊임없이 가꾸고 열매를 맺게 한 조석 작가는 그가 1000화에 썼던 것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그 무엇보다 달달한 보상을 얻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당시 만화가들이 전국가적인 시위를 일으키고 경찰과 대치전을 벌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꼬마들이 순순히 만화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웹툰 작가들이 취미로만 그림을 그리고 죄다 ‘안정감이 열리는 공무원 나무’를 심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만화가 무려 국가기관인 콘텐츠진흥원이 후원해주는 정식 장르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아무도 답을 모르겠지. 하지만, 만화가들이건 해적판 독자들이건 지금의 웹툰 작가들이건 전부 저 가정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고, 현재 만화에는 ‘문화 콘텐츠’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때 각자가 했던 행동들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하기는 논리적으로 조심스럽지만, 역사란 의도되거나 의도되지 않은 선택의 단추들이 차곡차곡 채워짐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약한 인과관계’를 이어 붙여도 그다지 억지스러운 건 아닐 게다. 사람의 의도와 결과는 일치하지 않을 때가 더 많고, 역사는 어찌됐던 그런 결과들의 집합이니까.

말이 복잡해졌는데, 여기서 짚어야 할 건 아무도 2016년쯤에 대한민국에서 만화의 위상을 이 정도 수준으로 올려놓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지는 않았다는 거다. 당시 큰 변화의 씨를 뿌리고 있다는 인지나 그 열매에 대한 기대가 있으려야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시작한다는 자의식과 그 열매를 꼭 먹고 말겠다는 보상심리가 큰일을 이루는 데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데, 만화는 다행히 여태까지 그런 걸림돌을 잘 피해온 듯이 보인다.

성장세에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긴 하지만 아무튼 박봉에 격무가 주요 특성인 보안도 이런 길을 갈 수 있을까?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혹은 한 기업 한 기업은 씨를 뿌리게 될까, 아니면 무심코 영양분을 공급하게 될까, 아니면 단 열매를 맛볼 수 있게 될까? 그러나 이는 우문이다. 역사의 큰 관점에서 중요한 건 예측도, 의도도 아니요, 행동이기 때문이며 결과에 대한 결정권은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솔루션이나 보안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가? 행동해야 한다. 과연 재미있을까, 사람들은 뭐에 재미를 느낄까를 고민하는 건 나중 일이다. 세상 모든 해커들의 침투 도전에 응하고 또 이기고 싶은가? ‘날 뚫어보라’고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믿을만하고 실력 좋은 사람들을 엄선해야 하겠지만. 예측, 전망, 의도가 버무려진 정치적인 스마트함보다 하고 싶은 걸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엉덩이의 힘. 그게 오래 타는 연료라고 믿는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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