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태의 글로벌 AI안보 전략-1] 글로벌 AI안보의 지정학적 풍경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2025-07-09 14:01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url
소버린 AI는 우리만의 ‘원천(wellspring)’ 파는 일
국방과 안보를 지킬 수 있는 ‘투명하고 강건한’ AI 시스템 구축 필요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글로벌 안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각국은 AI를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며 독자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AI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 한국은 기술 강국으로서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연재는 이원태 국민대 특임교수가 주요국의 AI 안보 전략을 심층 분석하고, 11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포함한 글로벌 AI 거버넌스 동향을 조망하며, 한국이 AI 지정학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 대응방안을 제시한다. 격주 연재를 통해 독자들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의 AI 리더십 확보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보안뉴스=이원태 국민대학교 특임교수/前 KISA 원장] 미국의 AI 헤게모니 전략은 동맹까지 엮어 생태계 전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반도체 칩 수출 통제나 클라우드 서비스 규제는 AI 공급망의 급소를 틀어쥐는 동시에, AUKUS나 쿼드 같은 기술 동맹을 통해 자국 중심의 기술 블록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기술 자체의 우위를 넘어, AI 생태계를 지배하는 구조적 권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자료: gettyimagesbank]

AI 지정학의 새로운 지형: 미중 경쟁 속 다극화의 흐름
중국의 AI 굴기는 최근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갖춘 ‘딥시크(DeepSeek)’와 같은 오픈소스 모델을 연이어 공개하며, 그 기술적 깊이를 전 세계에 충격적으로 입증했다. 이러한 저력은 14억 인구의 방대한 데이터와 이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국가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며 바이두, 알리바바 등 거대 기업들의 빠르고 경쟁력 있는 모델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국의 기술력과 거버넌스 모델을 ‘디지털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에 적극적으로 이식하며, 기술을 통한 영향력 확산이라는 ‘외부 확산’ 전략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다른 주요 행위자들 역시 생존과 주도권 확보를 위한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예컨대 유럽은 지금까지 ‘규범’을 무기로 AI 지정학의 제3축을 구축해 왔다. EU의 ‘AI법’과 영국의 ‘AI 안전 서밋’은 기술 경쟁이 아닌 거버넌스 표준을 선점하려는 독자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최근 유럽은 규범이라는 소프트파워만으로는 기술 주권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 인식 아래,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강력한 하드웨어 투자로 방향을 틀고 있다. EU의 ‘AI 팩토리’나 영국의 ‘AI기회 실행계획(AI Opportunities Action Plan)’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 전략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영국이 세계 최초로 설립한 ‘AI 안전 연구소(AI Safety Institute)’의 이름을 ‘AI 안보 연구소(AI Security Institute)’로 바꾼 것은, 추상적인 안전(Safety) 담론을 넘어 국가 생존과 직결된 안보(Security)의 문제로 AI를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변화이다.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AI를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로 접근하며 ‘Society 5.0’을 외치던 일본은 최근 절박한 위기감 속에서 공세적인 ‘AI 주권’ 확보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과거의 ‘사회적 수용성’을 따지던 신중한 태세를 버리고, ‘잃어버린 30년’의 디지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소프트뱅크 등 민간의 조 단위 투자와 정부의 파격적인 보조금은 AI의 핵심인 컴퓨팅 파워와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이다. 이는 AI를 단순히 활용하는 국가에서, AI 기술의 생산과 공급망을 주도하는 핵심 플레이어로 거듭나려는 국가적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소버린 AI: 기술의 닻을 내리고, 세계의 조류를 타라
우리는 AI 전략의 갈림길에서 ‘고립’이냐 ‘편승’이냐는 낡은 질문에 붙들려 있다. 우리만의 기술을 추구하면 고립될 것이라는 두려움, 글로벌 기술에 올라타면 종속될 것이라는 불안감 사이에서 방황한다. 일각에서는 ‘소버린 AI’를 쇄국정책이나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만 환원하며, 서구 주요국들의 소버린 AI에 비해 우리의 지향점을 과도하게 폄하하는 경향도 있다.

영국과 EU 등 주요국들 역시 ‘소버린 AI’를 외치며 자국 시장의 경쟁력 확보를 통해 글로벌 경쟁에 나서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소버린 AI는 결코 한국 시장에만 머무르자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고유의 기술적 ‘닻’을 내려 데이터 주권과 기술 자율성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을 포함한 기술 동맹국,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폭넓게 협력하고 연대하자는 것이다. 이는 남의 배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항해의 주체가 되어 세계의 조류를 이끌기 위한 전략적 자신감의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격변하는 기술의 바다에서 남의 배에 올라탄 ‘승객’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닻’을 내린 ‘항해사’가 될 것인가?

승객의 길은 편안해 보이지만, 배의 경로와 속도는 온전히 선장의 손에 달려 있다. 지정학적 파고가 높아지거나 선장이 뱃머리를 돌리면, 승객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릴 뿐이다. 여기서 ‘소버린 AI’는 우리를 고립시키는 섬이 아니라, 급류 속에서 우리 배를 붙잡아 줄 견고한 ‘기술의 닻’이다. 이 닻이 있어야만 우리는 외부의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기반, 즉 회복력(resilience)을 확보하고, 비로소 우리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세계라는 바다를 탐험할 항해의 자유를 얻는다.

이 닻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 거의 없다. 반도체라는 쇠를 녹여 인프라라는 닻줄을 꼬고, 모델과 서비스라는 닻의 몸체를 설계하고 주조하는 ‘풀스택(full-stack) 제어 역량’은 대한민국이 가진 독보적인 힘이다. 이 닻의 무게가 바로 우리의 전략적 자산인 것이다.

규모의 환상 너머 민첩성의 가치
따라서 GPU의 수나 모델의 크기 같은 ‘규모의 경쟁’은 허상에 가깝다. 거대한 항공모함이 작은 어뢰정보다 항상 강한 것은 아니다. 변화의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바다에서는, 상황에 따라 즉시 항로를 바꾸고 시스템을 최적화할 수 있는 ‘전략적 민첩성(Agility)’이 곧 전투력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AI의 핵심 역량을 기술, 모델, 서비스의 관점으로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특정 서비스의 성능만으로 파운데이션 모델 전체의 경쟁력을 섣불리 재단하는 협소한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단순히 챗봇과 같은 응용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부품이 아니라 국방, 금융, 의료 등 국가 핵심 인프라와 산업 전반에 내재화되어 예측 불가능한 위기에 대응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 자산 그 자체이다. 이 본질을 놓치면 우리는 민첩한 항해사가 아니라, 남이 만든 서비스의 좋고 나쁨에만 일희일비하는 승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외부 플랫폼에 종속된 승객은 선장의 업데이트 주기와 정책 변화를 기다려야 하지만, 닻을 가진 항해사는 즉시 엔진을 튜닝하고 돛을 고쳐 달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의 AI 기술력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제품을 소비해 줄 고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술 스택 위에서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예측 불가능한 문제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파트너를 원한다. 소버린 AI는 바로 이 ‘대등한 협력’의 전제 조건이다.


▲이원태 국민대학교 특임교수/前 KISA 원장 [자료: 이원태 교수]
결론적으로, 소버린 AI는 우리만의 ‘원천(wellspring)’을 파는 일과도 같다. 남의 강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은 쉽지만, 가뭄이 들면 가장 먼저 마른다. 우리만의 깊은 우물을 파는 것은 고된 일이지만, 그곳에서는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맑고 깨끗한 물이 솟아난다.

세계는 또 하나의 거대한 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땅에서 솟아나는 특색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샘물을 갈망한다. 문화와 산업에 최적화된 독창적인 AI 서비스, 국방과 안보를 지킬 수 있는 ‘투명하고 강건한(transparent & robust)’ AI 시스템이 바로 그 샘물이다. 우리만의 닻을 내려 기술의 주권을 확보하고, 우리만의 원천에서 새로운 가치를 길어 올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의 조류에 휩쓸리는 대신 그 흐름을 주도하는 진정한 ‘AI 강국’이 될 것이다.
[글_이원태 국민대학교 특임교수/前 KISA 원장]

필자 소개_
국민대학교 특임교수(정보보호·AI정책).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인공지능법학회 부회장 등 역임.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연관 뉴스

헤드라인 뉴스

TOP 뉴스

이전 스크랩하기


과월호 eBook List 정기구독 신청하기

    • 씨프로

    • 인콘

    • 엔텍디바이스코리아

    • 핀텔

    • 아이비젼

    • 아이디스

    • 씨프로

    • 웹게이트

    • 엔토스정보통신

    • 하이크비전

    • 한화비전

    • ZKTeco

    • 비엔에스테크

    • 지오멕스소프트

    • 원우이엔지

    • 지인테크

    • 홍석

    • 이화트론

    • 다누시스

    • 테크스피어

    • TVT코리아

    • 슈프리마

    • 인텔리빅스

    • 시큐인포

    • 미래정보기술(주)

    • 세연테크

    • 비전정보통신

    • 트루엔

    • 경인씨엔에스

    • 한국씨텍

    • 성현시스템

    • 아이원코리아

    • 프로브디지털

    • 위트콘

    • 다후아테크놀로지코리아

    • 한결피아이에프

    • 스피어AX

    • 동양유니텍

    • 포엠아이텍

    • 넥스트림

    • 펜타시큐리티

    • 에프에스네트워크

    • 신우테크
      팬틸드 / 하우징

    • 옥타코

    • 네이즈

    • 케이제이테크

    • 셀링스시스템

    • 네티마시스템

    • 아이엔아이

    • 미래시그널

    • 엣지디엑스

    • 인빅

    • 유투에스알

    • 제네텍

    • 주식회사 에스카

    • 솔디아

    • 지에스티엔지니어링
      게이트 / 스피드게이트

    • 새눈

    • 에이앤티글로벌

    • 케비스전자

    • 한국아이티에스

    • 이엘피케이뉴

    • (주)일산정밀

    • 구네보코리아주식회사

    • 레이어스

    • 창성에이스산업

    • 엘림광통신

    • 에이앤티코리아

    • 엔에스티정보통신

    • 와이즈콘

    • 현대틸스
      팬틸트 / 카메라

    • 엔시드

    • 포커스에이아이

    • 넥스텝

    • 인더스비젼

    • 메트로게이트
      시큐리티 게이트

    • 엠스톤

    • 글로넥스

    • 유진시스템코리아

    • 카티스

    • 세환엠에스(주)

Copyright thebn Co., Ltd. All Rights Reserved.

시큐리티월드

IP NEWS

회원가입

Passwordless 설정

PC버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