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자유를 되찾은 어산지, 범죄자 타이틀도 같이 얻어

2024-10-2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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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길고 긴 어산지 사건이 끝났다. 어산지는 범죄자가 됐지만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일단 그를 뒤쫓는 미국의 걸음도 멎게 됐다. 보안 업계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결론 난 것을 기념하며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간의 일들을 되짚어 본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지난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보안 업계를 뒤흔든 인물을 꼽는다면 누가 있을까? 이 업계를 너무 심하게 흔드는 바람에 다른 분야로까지 그 진동이 넘어가 정부를 화나게 만들었을 정도라면 누가 먼저 생각이 나는가? 먼저는 스노든이 있겠고, 그 다음으로는 어산지 정도가 꼽힐 수 있을 것이다. 순서야 어찌됐든 이 두 명은 대부분 보안 전문가들이 다섯 손가락 안쪽으로 셈할 가능성이 높다. 그 어산지가 이번 여름 14년의 긴 법적 공방을 끝내고 자유의 몸이 됐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먼저 어산지의 지난 14년을 간략히 되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1) 2006년 : 어산지가 비밀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를 창립했다. 그와 동시에 각종 민감 정보와 국가 기밀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2) 2010년 4월~7월 : 위키리크스를 통해 어산지는 미군의 각종 전쟁 관련 문건들을 공개했다. 50만 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헬리콥터를 타고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처형하는) 영상까지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당시 사망한 사람 중에는 로이터 통신의 기자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어산지는 반전주의자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 정보는 브래들리 매닝이라는 군 첩보 분석 요원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매닝은 남성이었고, 훗날 성전환 수술을 받아 첼시 매닝으로 개명까지 한다. 지금 이 사건을 되짚는 기사와 문건들은 대부분 매닝을 ‘첼시 매닝’으로 지칭하는데, 2010년 즈음을 짚을 땐 브래들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매닝은 이 사건으로 2013년 군법 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35년형에 처했다. 다만 2017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그를 사면하면서 35년형은 7년형으로 귀결됐다.

3) 2010년 8월 : 스웨덴 정부가 어산지를 대상으로 체포 영장을 발부한다. 한 여성이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어산지는 근거 없는 누명을 씌우려 한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고, 스웨덴 검사 측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기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검사장이 나서서 사건 조사를 재개했고(9월), 어산지는 스웨덴을 떠나 영국으로 도주한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4) 2010년 12월 : 어산지 입장에서는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스웨덴 정부와 협조하여 영국으로 온 어산지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스스로 경찰서로 갔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아직 미국 정부의 국가 기밀 유출과는 관련이 없는 법정 공방이 진행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 vs. 어산지’의 대결은 이 시점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고, ‘스웨덴에서의 성폭력 사건’이 핵심이었다. 물론 미국 정부의 사주를 받아 스웨덴 정부가 움직인 것이라는 음모론이 존재하긴 했었다.

체포가 된 어산지가 감옥으로 곧장 간 건 아니었다. 공식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기 전의 시점이기 때문에 그에게 걸린 혐의는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게다가 증거도 불충분했고, 자수까지 한 마당이었다. 물론 그는 범죄 행위를 적극 부인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 사법부는 보석금을 받고 그를 석방시켰다. 스웨덴으로 인도하느냐 마느냐로 시끌시끌한 상황이었다.

5) 2011년 2월 : 영국 법원에서 어산지를 스웨덴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때부터 어산지는 항소를 시작했고, 스웨덴으로 인도되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약 1년 동안 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법원은 그의 항의를 들어주지 않았고, 그는 결국 스웨덴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6) 2012년 5월~6월 : 1년이 조금 넘는 법정 공방 끝에 영국 대법원은 공식적으로 그를 스웨덴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다만 스웨덴 감옥으로 가야 한다거나, 그의 성폭행 혐의가 인정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가서 스웨덴 측의 조사에 임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인 6월 어산지는 아무런 예고 없이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들어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다. 대사관은 치외법권이라 영국 경찰들은 건물 밖을 둘러치고 어산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7) 2012년 8월 : 에콰도르 정부가 어산지의 망명을 승인했다. 어산지는 당시 에콰도르 대통령이자 강성 좌파였던 라파엘 코레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둘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는 설도 나돌았다. 6월부터 시작된 어산지의 대사관 기거는 이렇게 공식 승인 아래 이어질 수 있게 됐다. 런던의 경찰은 계속해서 대사관을 둘러싸고 있었고, 어산지는 단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8) 2014년 7월 : 스웨덴에서 어산지의 체포를 허락한 영장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한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했던 어산지의 성범죄 혐의에 더해, 또 다른 두 명의 여성이 피해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산지로서는 더더욱 스웨덴으로 가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이러면서 양측의 기싸움이 팽팽히 이어졌다.

9) 2015년 : 3월, 결국 스웨덴 검사들이 영국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에콰도르 대사관의 중재로 어산지와 대화했다. 수사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를 질문하고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8월, 스웨덴 검사 측에서는 2명 여성에 대한 성범죄 혐의를 취하했다. 그의 무죄가 입증된 것이 아니라 공소시효가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성폭행 혐의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10월, 런던 경찰은 24시간 대사관을 감시하던 병력을 철수시켰다. 다만 어산지가 한 발이라도 대사관 바깥으로 나올 경우 체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3년 동안 어산지만 기다리며 경찰은 수백만 파운드의 예산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 2016년 : UN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 그룹(UN Working Group on Arbitrary Detention)이 어산지에 대하여 “불법적으로 구류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를 즉각 석방시키고 구금되어 있던 시간에 대한 보상까지 하라고 권고했다. 이를 기반으로 어산지는 자신의 완전 무죄를 주장했다. 영국은 UN의 발표나 어산지의 주장에 대해 코웃음쳤다. “솔직히 우스꽝스럽다”고 받아치면서였다. 어산지의 대사관 생활은 계속됐다.

11) 2017년 : 에콰도르에서 대선이 진행됐다. 코레로가 물러나고 모레노가 당선됐다. 모레노는 코레로와 같은 정당 소속이었으나 노선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대다수 좌파들이 그렇듯 미국을 악의 세력으로 보던 코레로와 달리 모레노는 좌파이면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다. 그렇기에 어산지 문제를 다루는 측면에서 다른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12) 2018년 9월~10월 : 에콰도르의 모레노 대통령이 “어산지가 대사관을 안전하게 떠날 수 있는 방법을 영국 측과 논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누구나 그 속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콰도르는 어산지를 버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산지도 알아들었다. 그리고 10월부터 에콰도르가 그를 내치지 못하도록 법원의 개입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에콰도르가 망명을 허락했으니 그의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했다.

사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부터 에콰도르 대사관과 어산지 사이에서는 불협 화음이 나오고 있었다. 어산지는 에콰도르 대사관 직원들이 런던 경찰의 사주를 받아 그를 염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대사관에 살면서 온갖 기행을 저지른다는 주장이 대사관 측에서 나왔다. 그 기행이 녹화된 장면도 공개됐다. 크지 않은 대사관 건물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축구를 하며 업무를 방해하기도 했으며 일부 직원들과 다투기까지 했다. 모레노는 “수년 간 그를 돌봐준 대사관과 에콰도르에 감사하기는커녕 모욕만 듣고 있다”며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미 그는 어산지를 “해커”로 지칭하고 있었다. 대사관 측은 어산지에게 생활 수칙까지 만들어 제공했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한 장소에서만 7년째 지내고 있는 어산지의 건강도 심각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대사관 건물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서 그는 쇠약해졌다. 이것 역시 에콰도르가 더 이상 어산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중대한 이유로 꼽혔다.

재미있는 건 아직 이 시점까지는 미국 정부가 어산지를 뒤쫓고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어산지는 아직 ‘스웨덴에서의 성폭행 혐의로 인해 대사관에 갇혀 있는 용의자’였다. 그럼에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요시하는 에콰도르 대통령이 어산지 문제를 해결하려 움직였다는 건, 사실 이 사건 뒤에 미국이 있었다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미 많은 언론들도 미국 정부가 어산지를 원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수차례 내걸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그는 성폭행 범죄 혐의자였지만 언론과 운동가들을 그를 미국에 저항하는 저널리스트로 보고 있었다.

13) 2018년 11월 :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미국 정부가 실제로 비밀리에 어산지를 대상으로 한 형사건을 진행 중에 있다는 문건이 세상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문서 전체가 세부적으로 공개된 건 아니었지만, 그 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미국이 어산지를 잡고 싶어 한다’는 게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게 됐다. 이 때부터 어산지 사건은 ‘미국 정부 vs. 어산지’를 넘어 ‘국가 기밀 vs. 언론의 자유’의 구도로 정식적으로 전환된다.

14) 2019년 4월 : 아직 에콰도르와 어산지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위키리크스가 모레노 대통령의 부정 부패 혐의와 관련된 문건을 공개하면서 모레노가 자국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모레노는 분노했고, 영국 경찰이 대사관에 들어가는 것을 승인했다. 경찰은 즉각 출동했고 어산지를 끌어냈다. 그는 큰 소리를 지르며 온 몸으로 저항했고, 결국 여러 명이 달려들어 그를 들고 나와야했다.

이 때 영국 경찰의 체포 이유는 ‘보석 조건 불이행’이었다. 위 4)번을 보면 그가 한 번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것을 알 수 있다. 보석으로 석방되는 조건에 ‘법정의 소환에 충실히 임한다’가 있었는데, 그가 7~8년 동안 에콰도로 대사관 속에서 두문불출하면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50일 구금형이 선고된다. 아직 미국 스파이방지법 위반 건과는 관련이 없다. 오로지 보석 조건 불이행 때문에 내려진 형이었다.


15) 2019년 5월 : 드디어 미국이 공식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무려 18개나 되는 혐의를 어산지에게 적용하며 기소한 것이다. 미 국방부 컴퓨터를 해킹함으로써 불법적으로 침투했으며, 그렇게 얻은 문건을 공개했다는 것도 지적됐다. 즉 스파이 범죄와 해킹 범죄에 대한 혐의가 이 18개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 미국은 “어산지를 미국으로 보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어산지는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싸우기 시작했다.

16) 2019년 11월 :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스웨덴 정부가 어산지에게 걸려 있던 성폭행 혐의를 취하한다. 여기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이 모든 사건의 진짜 배후인 미국이 나온 만큼 스웨덴이 개입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가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17) 2020년 : 원래는 이 시기부터 미국과 어산지의 줄다리기가 진행되었어야 했으나 하늘이 어산지를 도왔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터진 것이다. 그래서 어산지의 공판이 모두 연기됐다. 미국과 어산지는 법정에 서는 대신 각자의 주장이 담긴 문건을 법원에 제출하는 식으로 싸움을 이어갔다. 미국은 여전히 어산지를 미국 법정에 세우길 원했고, 어산지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미국에 가는 것만큼은 막으려 애썼다.

18) 2021년 1월 : 코로나의 위세는 여전했지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 평상시의 생활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법원은 “어산지가 미국으로 인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정신 건강이었다. 법원에서 그를 관찰한 결과, 인도가 결정되는 순간 그가 자살할 확률이 높다고 본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미국 감옥에 대한 그의 공포가 너무 커서 감옥 생활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고 영국 법원은 설명했다. 미국은 항소했다.

19) 2021년 7월~12월 : 영국 법원은 미국의 항소를 받아들여 다시 한 번 재판이 열리는 걸 허락했다. 재판이 다시 열리는 걸 허락했지 미국 편을 든 건 아니었다. 미국은 열심히 영국 법원을 설득했고, 결국 영국 법원은 이전의 판결을 뒤집고 어산지의 인도를 허락하기로 결정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어산지의 인권을 보장해 주고, 그를 인간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그를 잘 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어산지는 항소했다.

20) 2022년 : 3월, 영국 대법원은 어산지의 항소를 기각시켰다. 어산지는 인도를 막기 위해 법정 싸움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이러한 법원의 판결을 받아 6월에 어산지의 미국 인도를 명령했다. 어산지는 다시 한 번 영국 정부의 명령에 항소했다.

21) 2023년 5월 : 호주의 알바니즈 총리가 어산지의 석방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이나 어산지 자신이나, 이렇게 사건을 질질 끌어서 결론을 내봤자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은 영국이나 미국 어느 쪽에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결국 바로 다음 달인 6월, 영국 대법원은 다시 한 번 어산지의 항소를 기각시켰다. 이제 정말로 어산지가 갈 곳은 미국밖에 없어 보였다.

22) 2024년 2월 : 어산지의 변호인단은 마지막 투쟁을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가 미국으로 가면 안 된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영국 법원은 미국 측에 추가 요청을 보냈다. 어산지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어산지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확증 자료를 더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산지나 영국 법원이 안심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보강하라고 했다. 그런데 미국이 여기서 고자세를 유지했다. 인권을 보장하겠지만 그 인권이 어떤 항목을 포함하는지는 미국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언론의 자유에 관한 해석은 미국 법원의 권한이라고 말했다.

23) 2024년 5월 : 미국의 이런 대응을 본 영국 대법원은 어산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미국 인도라는 이전 결정 자체를 철회한 게 아니라, 어산지가 다시 한 번 싸울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 때 어산지의 지지자들은 법원 밖에서 승리를 연호했다. 여러 매체들도 ‘어산지의 승리’라는 뉘앙스로 해당 소식을 보도했다.

24) 2024년 6월 : 어산지와 미국 사법부가 합의에 이르렀다. 그가 미국 영토에 있는 법원에 출석하여 스파이방지법 위반에 관한 혐의 한 가지에 대해서 유죄를 인정한다면 미국은 그의 인도를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협약 아래 태평양에 있는 미국 영토로 날아가 법원에 출석했고, 스파이방지법 위반에 대한 혐의를 인정했다. 그래서 그의 행위는 공식적으로 ‘범죄’의 범주 안에 들어가게 됐다. 재판이 끝난 후 그는 고향인 호주로 돌아갔다. 자유인의 신분이었다.

어산지의 유죄 판결, 어떤 의미를 갖는가?
위의 타임라인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물밑에서 움직였던 미국의 행보다. 그 14년 동안 미국도 여러 번 수장이 바뀌었고, 따라서 국가의 기조도 여러 차례로 변했다. 처음 어산지와 공조했던 매닝의 경우, 기밀을 다룰 자격이 있던 국가 요원이었다. 스파이방지법 위반을 정부 요원에 적용해 범죄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드물기는 했어도 없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어산지는 민간인이었고, 일각에서는 그를 언론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그를 기자로 볼 수 있는가 없는가도 중요한 논제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깊게 다루지 않기로 한다.) 민간인을 스파이방지법 위반으로 엮어 유죄 판결을 내린 사례는 미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고, 따라서 미국 정부로서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와 밀접하게 엮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사건을 언론의 자유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매닝을 사면해주었을 뿐 아니라 어산지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 외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정권부터 이어져 오던 각종 스파이방지법 위반 사건을 기각시키기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는 ‘기자의 보도 행위를 통해 국가 기밀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범죄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분위기가 만연했었다. 어산지를 기자로 인정한다면, ‘어산지 기소’는 곧바로 ‘언론 자유 탄압’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오바마가 망설일 만도 했다.

그러다가 정권이 트럼프로 넘어갔다. 2017년의 일이다. 에콰도르 대통령이 바뀐 해이기도 했지만 ‘선 넘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트럼프가 미국의 수장이 된 해이기도 했다. 그러더니 2018년부터 미국 법원의 기소 사실이 공표되면서(기소는 2017년부터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어산지 체포 작전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에콰도르의 새 대통령이 친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이 작전의 속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가 이 긴 사건을 협상으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정리하자면, ‘어산지 기소 = 언론 자유 탄압’이라는 금기가 트럼프를 통해 깨졌고, ‘언론 행위로 인한 국가 기밀 누설 = 범죄’라는 공식이 바이든을 통해 완성됐다는 뜻이 된다. 언론의 자유라는 것에도 범위가 존재한다고 트럼프가 외치고, 그 선을 넘으면 범죄자가 된다고 바이든이 결정을 지은 것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는다. 해석하기에 따라 저널리즘 그 자체가 범죄 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건, 국가 기밀을 입수하고 공표함으로서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언론의 힘이 크게 꺾인다는 뜻이 된다. 어산지의 지지자들이 그의 석방에 환호하고 있지만, 사실 뒤에서 어산지가 언론 전체, 더 나아가 민주주의 자체를 팔아넘겼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핵티비스트? 기자?
14년 동안 사건이 이어지면서 해킹 범죄 혐의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도 눈에 띈다. 그와의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 정부가 과감히 포기한 것 중 하나가 그의 해킹 범죄 혐의였다. 그가 해커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 권리 중 일부를 범죄 행위로 만들었기 때문에 남의 컴퓨터에 함부로 침투했다는 혐의 정도는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남의 컴퓨터에 함부로 침투하는 것은 분명한 범죄 행위다. 핵티비즘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핵티비스트 자신들의 메시지 공표를 위해 누군가의 컴퓨터에 불법적으로 들어갔다면 그건 범죄가 된다. 그래서 어산지를 핵티비스트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지지자들은 이를 영 달가워하지 않는다. 핵티비스트라는 용어 자체가 범죄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에게 있어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내부 고발자이며 참 언론인이다. 그래서 그를 저널리스트라고 부르지 핵티비스트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가 핵티비스트인지 아닌지 공식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건 법원이었다. 미국 정부가 해킹 범죄에 대한 혐의를 취하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면 그는 스파이 범죄를 저지른 것에 더해 해킹 범죄까지 저지른 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그가 해킹 범죄에 가담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해커들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보도했을 뿐 스스로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어산지가 꾸준히 주장해온 내용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가 해킹 범죄 혐의를 포기한 것은 아마도 그의 해킹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재판을 끝까지 이어가 스파이 혐의를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해킹 범죄에 관해서 무죄가 선고된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면 그는 ‘언론인이긴 하지만 해커는 아닌’ 인물이 된다. 범죄와 완전히 동떨어진, 깨끗하고 결백하지만 정치적 탄압에 의해 14년을 낭비한 영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이 나기 전에 해당 혐의를 아예 취하함으로써 미국 정부는 그가 핵티비스트라고 불릴 여지를 남겨두었다. 열린 결말을 이용한 교묘한 한 수로 해석된다. 그에게 여지 없는 범죄의 굴레를 씌우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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