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칼럼] 디지털 경제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시작됐다

2026-06-0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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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경제 토대는 물리적 인프라
AI 시대 전쟁은 IT-정보보호 부서 경영 리스크


[보안뉴스= 류종기 한국기업보안협의회 이사] 과거의 전쟁은 정유시설과 발전소, 항만과 공항, 도로와 교량 같은 물리적 인프라를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가 경제의 핵심 기반이 되고 있는 오늘날, 전쟁의 충격은 전혀 다른 경로로 확산되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급망, 해저케이블, 클라우드 서비스, 전력망까지 전쟁의 영향권에 들어오고 있다.

전쟁은 더 이상 전장만 파괴하지 않는다
최근 글로벌 IT 산업 분석기관 IDC는 중동 전쟁을 단순한 지정학적 충돌이 아니라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로 정의했다.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디지털 시스템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금융권이 위기 상황을 가정해 시스템의 건전성을 점검하듯, 이번 전쟁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반도체 공급망, AI 인프라로 연결된 디지털 경제가 실제 충격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전쟁을 외교와 국방, 혹은 에너지 시장의 문제로 인식한다. 하지만 AI 시대의 전쟁은 IT 부서와 정보보호 조직이 직접 대응해야 하는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물리적인 기반 위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AI 칩이 탑재된 서버 [출처: 연합]

AI는 생각보다 물리적이다
생성형 AI 열풍 이후 기업들은 앞다퉈 AI 도입과 전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AI는 결코 가상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AI 모델은 대규모 GPU와 고성능 반도체 위에서 학습된다. 수많은 서버가 집적된 데이터센터에서 운영되며, 막대한 전력과 냉각 설비에 의존한다.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과 글로벌 네트워크 없이는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AI는 소프트웨어를 넘어 거대한 물리적 인프라 위에 구축된 산업이다. IDC는 이번 중동 전쟁이 IT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로로 에너지 가격, 데이터센터 운영비용, 공급망 안정성, 클라우드 인프라, 사이버보안, 투자 심리 등을 지목했다. 이들 요소는 서로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충격이 연쇄적으로 다른 영역으로 전파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에너지 가격 급등은 데이터센터 운영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데이터센터 비용 상승은 다시 클라우드 서비스 가격에 영향을 준다. 기업의 IT 운영비가 증가하면 AI 프로젝트 투자 우선순위가 조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지정학적 위기가 디지털 전환 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 랜섬웨어나 해킹 공격을 우려하지만, 때로는 공격이 없어도 디지털 경제는 흔들릴 수 있다. 전력 공급 불안정, 물류 차질, 반도체 수급 문제만으로도 AI와 클라우드 생태계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는 새로운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20세기 산업경제에서 석유 저장시설과 정유공장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었다. 오늘날 디지털 경제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데이터센터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IT 시설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 성장과 기술 주도권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세계 주요 클라우드 리전과 초대형 데이터센터, AI 학습 인프라 상당수는 제한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정 국가의 전력 문제나 지정학적 갈등, 물류 차질이 발생할 경우 그 영향은 전 세계 기업들로 확산될 수 있다.

최근 각국이 주권 클라우드(Sovereign Cloud)에 관심을 높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데이터 보호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디지털 자립성과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인 것이다.

보안의 경계도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정보보호 조직은 네트워크 보안과 시스템 보안, 랜섬웨어 대응, 침해사고 관리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AI 시대의 보안은 더 이상 사이버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안정성은 충분한가? 특정 국가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AI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핵심 공급망은 얼마나 다변화되어 있는가? 해저케이블 등 주요 네트워크 인프라에 커다란 장애나 중단이 발생할 경우 업무 지속이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들은 이제 정보보호 조직이 함께 고민해야 할 새로운 보안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지정학적 갈등은 사이버보안과 경제안보, 공급망 리스크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보안이 IT 부서의 책임이었다면, 이제는 경영진과 이사회 차원의 전략적 의제로 확대되고 있다.

AI·클라우드 시대, 기업이 점검해야 할 4가지 질문
IDC가 지적했듯이, 이번 사태는 디지털 경제 전반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의 성격을 갖는다. 기업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자사의 디지털 운영 체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AI와 클라우드 의존도가 높아지는 환경에서는 다음 네 가지 영역에 대한 선제적 검토가 중요하다.

1. AI 및 클라우드 공급망의 ‘지정학적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
이제는 단순히 단일 벤더의 시스템 장애(SLA)를 넘어,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나 에너지 쇼크 발생 시 자사 AI 서비스와 클라우드 인프라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거시적 스트레스 테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특정 국가나 특정 빅테크 클라우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면, 위기 시 즉각 대체 가능한 멀티 클라우드나 하이브리드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

2. 기술 주권을 고려한 ‘소버린(Sovereign) 인프라’ 검토
최근 국내 금융·공공 분야의 망분리 규제 완화 흐름과 맞물려 클라우드 기반 AI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단절이나 데이터 규제 강화에 대비해,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데이터와 중요 AI 모델만큼은 국가 차원의 디지털 자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주권 클라우드’(Sovereign Cloud)나 ‘소버린 AI’ 인프라를 혼용하는 분산 배치 전략을 장기적 로드맵에 반영해야 한다.

3. ‘디지털 자산의 물리적 의존성’ 매핑(Mapping)
보안 및 리스크 관리 부서는 우리 기업이 사용하는 무형의 디지털 서비스(SaaS, AI API 등)가 실제로 어느 지역의 데이터센터에서 구동되며, 어떤 전력망과 해저케이블 노선에 의존하고 있는지 ┖물리적 연결지도┖를 그려보아야 한다. 리스크의 시각화를 통해 예상치 못한 인프라 단절 시의 우회 경로를 사전에 확보할 수 있다.

4. 이사회 및 경영진 주도의 ‘디지털 운영 복원력’(Digital Operational Resilience) 체계 구축
보안은 더 이상 CISO나 IT 부서만의 기술적 방어가 아니다. 지정학적 위기, 전력망 마비, AI 인프라 단절이 초래할 재무적·운영적 충격을 경영진과 이사회가 직접 인지하고, 이를 전사적 리스크 관리(ERM)의 핵심 의제로 격상시켜 ┖무중단 경영┖을 위한 예산과 자원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새로운 질문

▲류종기 한국기업보안협의회 이사
이번 중동 전쟁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군사적 충돌이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가 구축해 온 디지털 경제가 얼마나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얼마나 물리적 기반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실험에 가깝다. 우리는 오랫동안 디지털 경제를 무형의 공간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AI와 클라우드가 발전할수록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더 많은 전력과 더 많은 데이터센터, 더 많은 반도체와 네트워크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앞으로의 기업 경쟁력은 더 뛰어난 알고리즘이나 데이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충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디지털 기반, 즉 ‘물리적 복원력’이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이미 시작됐다. 준비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성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필자 소개_ 류종기 한국기업보안협의회 이사는 IBM Security & Privacy 컨설턴트와 Deloitte, EY에서 Cyber Resilience 서비스 리더를 역임하며 26년 넘게 정보보호와 비즈니스 연속성(BCP), IT 재해복구(DR) 분야에서 많은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왔다. 경기대 AI컴퓨터공학부 AI·SW안전 전공 산학협력 겸직교수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겸임교수, ISO/TC 292 재난안전보안 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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