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태의 글로벌 AI안보 전략-6] 한국의 AI 외교, 글로벌 권력 지형을 다시 그리다

2025-10-0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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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안보리에서 APEC까지, 대한민국이 만드는 새로운 기술 질서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글로벌 안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각국은 AI를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며 독자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AI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 한국은 기술 강국으로서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연재는 이원태 국민대 특임교수가 주요국의 AI 안보 전략을 심층 분석하고, 11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포함한 글로벌 AI 거버넌스 동향을 조망하며, 한국이 AI 지정학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 대응방안을 제시한다. 격주 연재를 통해 독자들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의 AI 리더십 확보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보안뉴스=이원태 국민대학교 특임교수/前 KISA 원장]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석에 앉아 첫 의사봉을 두드린 순간, 국제 안보의 좌표축이 재설정되기 시작했다. 한국 정상이 안보리 공개토의를 최초로 주재하며 선택한 주제는 ‘AI와 국제평화·안보’.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인공지능이 단순한 산업기술을 넘어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전략자산으로 부상한 현실을 국제사회 최고 권위의 무대에서 공식화한 것이다.


▲UN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자료: 연합]

기술과 안보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
냉전 시대 핵무기가 국력의 척도였다면, 21세기는 AI 역량이 국가 안보를 좌우한다. 사이버 공격은 물리적 파괴 없이 한 국가의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AI 기반 허위정보는 민주주의 체제를 혼란에 빠뜨린다. 자율무기 체계는 인간의 판단 없이 작전을 수행하며, 알고리즘의 편향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 전장은 이미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했고, 무기는 코드로 작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이러한 변화에 제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왔다. 20세기 군사 동맹과 핵 비확산 체제로는 AI 시대의 안보 위협을 관리할 수 없다. 한국이 안보리라는 전통적 안보 거버넌스의 핵심 무대에 AI 의제를 상정한 것은 바로 이 공백을 메우려는 전략적 시도였다. 기술 발전이 안보 환경을 재편하는 속도에 비해 국제 규범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었다.

권력의 새로운 언어: 포용성으로 경쟁하기
현재 글로벌 AI 경쟁은 기술력과 경제력을 앞세운 강대국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의 혁신 생태계를 기반으로 최첨단 AI 모델 개발에 집중하고, 중국은 막대한 데이터와 제조업 인프라를 활용해 AI 산업화를 가속화한다. 두 국가 모두 AI를 전략적 패권의 핵심 수단으로 간주하며, 기술 봉쇄와 표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기술 민족주의의 격화는 전 세계를 새로운 진영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다. AI 기술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글로벌 디지털 경제는 분절화되며, 기술 격차로 인한 국가 간 불평등은 심화된다. 결과적으로 AI 기술이 소수 강대국의 전유물이 되고, 그 혜택 역시 일부 국가와 계층에 편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제시하는 ‘AI 기본사회’와 ‘모두를 위한 AI’ 개념은 이러한 배타적 경쟁 구도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기술 혁신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의 경쟁력 추락 속도는 더욱 가파르다. AI 격차가 계층 격차로, 다시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면, 기술 발전 자체가 지속 불가능해진다.
한국의 제안은 AI 발전의 방향성을 경제적 효율성에서 사회적 지속가능성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기술 접근권을 보편화하고, AI 교육을 확대하며, 기술 혜택의 공정한 배분을 보장하는 것. 이는 단순히 윤리적 당위가 아니라 AI 시대 사회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필수 요건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도구로 AI를 활용할 수 있다는 비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됐다. 기술이 권력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할 때만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사이버 공간의 지정학: 보이지 않는 전선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보이는 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표현은 현대 안보 환경의 본질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토를 침범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전통적 전쟁과 달리, AI 시대의 위협은 사이버 공간에서 은밀하게 작동한다.

AI 기반 사이버 공격은 기존 해킹과 차원이 다르다. 머신러닝을 활용한 공격 도구는 방어 시스템의 취약점을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한다. 자동화된 봇넷은 인간 해커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작동하며, 딥러닝 기반 악성코드는 탐지를 회피하는 능력을 갖춘다. 방어자가 한 발 앞서려 해도 AI 공격 도구는 이미 두 발 앞서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AI 기술의 이중적 속성이다. 의료 진단을 돕는 AI는 생화학 무기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고, 언어 모델은 대규모 허위정보 생성에 악용될 수 있으며, 자율주행 기술은 무인 공격 시스템으로 전환될 수 있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 활용 방향은 전적으로 인간의 의도에 달려 있다. 국제사회에 이러한 이중용도 기술을 관리할 공동 규범이 부재한 상황은 위험천만하다.

한국이 안보리에서 제기한 핵심 쟁점은 바로 이것이다.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자율무기 시스템의 개발과 배치를 어떤 원칙 하에 통제할 것인가? 국가 간 사이버 공격에 대한 국제법적 책임은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더 이상 기술 전문가들만의 논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전을 책임지는 안보리가 다뤄야 할 본질적 안보 의제다.

사이버 공간은 국경이 없다. 어느 한 국가의 취약점은 연결된 모든 국가의 위험이 된다. AI 사이버 공격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며, 그 파급 효과는 예측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국 차원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제 협력과 공동 규범 마련이 절실하다. 한국이 안보리를 통해 제시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술의 독점과 배타적 경쟁은 모두의 안보를 위협하며, 공유와 협력만이 지속가능한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자본과 규범의 전략적 결합
한국의 AI 외교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구상이 실행 능력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엔에서 규범을 제안하는 동시에, 블랙록과의 협력으로 이를 뒷받침할 자본을 확보했다. 12조 5천억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의 최고경영자가 “한국이 아시아의 AI 수도가 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과의 양해각서는 세 가지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 재생에너지 기반 AI 데이터센터 구축이라는 개념은 기술 발전과 환경 지속가능성의 동시 추구라는 한국 모델의 구체화다. 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이 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지는 딜레마를 해결하는 혁신적 접근이다. 둘째, 아시아태평양 AI 허브 구축은 한국이 단순히 기술을 수입하는 국가가 아니라 지역 AI 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적 포부를 담고 있다. 셋째, 글로벌 금융 리더들의 동참은 한국의 AI 비전이 실현 가능한 구체적 프로젝트로 인식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민관 협력 모델은 전통적 정부 주도 외교와 차별화된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면 민간 자본이 실행력을 제공하고, 국제기구를 통해 규범화하는 선순환 구조다.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AI 3대 강국’ 국정 목표, 블랙록과의 협력은 하나의 통합된 전략 체계를 이룬다. 구호와 선언이 아니라 자본과 제도로 뒷받침되는 실질적 외교다.

경주 APEC, 비전을 현실로
10월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의 AI 외교가 결실을 맺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유엔에서 제시한 ‘AI와 평화’ 의제가 이제 지역 차원의 구체적 협력 체제로 구현되는 것이다. ‘AI 이니셔티브’는 단순히 선언적 문서가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 21개 회원국이 AI 발전과 거버넌스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실행 프레임워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2005년 부산 APEC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경험을 공유했다. 20년이 지난 2025년 경주 APEC에서 한국은 AI 시대의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안한다. 학습자에서 선도자로의 전환이다. 기술을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방향성 자체를 제시하는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한국이 APEC을 통해 추진하는 글로벌 AI 이니셔티브는 명확하다. 첫째, 회원국 간 AI 기술과 인재의 교류를 확대해 지역 전체의 역량을 강화한다. 둘째, AI 윤리와 안전에 대한 공동 원칙을 수립해 책임 있는 기술 발전을 도모한다. 셋째, 중소기업과 개발도상국의 AI 접근성을 높여 포용적 성장을 실현한다. 이는 기술 패권을 추구하는 배타적 모델과 정반대 방향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세계 인구의 40%, GDP의 60%를 차지하는 경제 중심지다. 이 지역에서 포용적 AI 거버넌스 모델이 성공한다면, 이는 글로벌 표준으로 확산될 잠재력을 갖는다. 한국이 제시하는 ‘AI 뉴노멀’은 예외적 이상이 아니라 보편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여기에 있다.

룰메이커로의 도약, 그 역사적 의미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이번 UN 안보리 주재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한국은 오랫동안 국제 질서의 수혜자이자 규칙 준수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왔다. 전후 재건과 경제 발전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규칙을 만드는 주체는 아니었다.

AI 거버넌스 분야에서 한국은 이제 규칙 제안자로 나섰다. 기술 강국들이 주도해온 논의 구조에서 벗어나 한국만의 독창적 비전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있다. 이는 외교적 위상의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주어진 질서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자체를 형성하는 주체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한국은 첨단 기술과 민주적 가치를 동시에 보유한 독특한 위치에 있다. 반도체, 5G, AI 등 핵심 기술에서 경쟁력을 갖추면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는 기술과 가치를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토대다.

둘째, 중견국으로서 강대국 간 갈등을 중재하고 보편적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신뢰를 확보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어느 한쪽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을 갖출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셋째, 급속한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를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 이해를 축적했다. AI가 초래할 수 있는 양극화, 일자리 변화, 프라이버시 침해 등은 한국 사회가 이미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경험은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AI 시대 기술 질서의 재편, 한국의 선택
결국 한국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AI 시대의 국제 질서가 기술을 독점한 소수 강국의 패권 경쟁으로 점철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의 혜택을 공유하고 위험을 공동 관리하는 협력 체제로 진화할 것인가?

전자의 길은 단기적으로 기술 선도국에 유리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불안정을 초래한다. 기술 격차가 권력 격차로 고착되고, 배제된 국가들의 불만이 축적되며, 결국 기술 냉전이 심화된다. AI 사이버 공격과 자율무기 확산이라는 안보 위협은 강대국도 피할 수 없다.

후자의 길은 초기에는 더디고 어려워 보이지만, 지속가능한 질서를 만든다. 기술 접근권이 보편화되면 혁신의 기반이 확대되고, 공동 규범이 확립되면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며, 협력이 강화되면 집단 안보가 실현된다. AI 시대의 위협은 일국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기에 협력이 유일한 해법이다.


▲이원태 국민대 특임교수/양자보안포럼 회장 [자료: 이원태 교수]
한국의 선택은 명확하다. 포용과 협력의 길이다. 이는 이상주의적 수사가 아니라 냉철한 전략적 계산의 결과다. 중견국인 한국이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경쟁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경쟁하는 대신, 가치와 비전으로 경쟁한다. 배타적 독점 대신 포용적 공유를, 일방적 주도 대신 다자적 협력을 제안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에서, 그리고 곧 경주 APEC에서 펼치고 있는 AI 외교는 바로 이러한 전략이 구체화된 것이다. 기술이 권력을 재편하는 시대, 한국은 그 권력의 작동 방식을 다시 쓰려 한다. 역사는 이러한 시도가 성공할 때 비로소 새로운 장을 열어왔다. 한국이 제시하는 제3의 길이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을지, 그 여정이 시작됐다.
[글_이원태 국민대학교 특임교수/양자보안포럼 회장]

필자 소개_
국민대학교 특임교수(정보보호·AI정책), 양자보안포럼 회장,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인공지능법학회 부회장 등 역임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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