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초음속 비행에 관한 여러 가지 설 극복해...양자 컴퓨터로 깨질 RSA에 관한 설도 여럿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최초로 음속 장벽을 깬 것으로 공식 기록되어 있는 파일럿인 척 예거(Chuck Yeager)가 오늘 사망했다. 향년 97세였다. 각종 신식 항공 기술의 시험 비행을 도맡기 전까지 2차 세계대전의 미국 공군 에이스였던 그는 하루에 적 전투기 5대를 격추시키는 등의 성과를 올리기도 했었다. 그의 손에 떨어진 독일 전투기는 총 13대라고 한다.

[이미지 = utoimage]
지금에서야 ‘음속 장벽’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초음속 비행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지만, 음속을 깨기 전까지 사람들은 음속 폭음(sonic boom)이란 것을 크게 두려워했었다. 음속을 넘는 순간 충격파로 기체가 산산이 조각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고, 따라서 파일럿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졌었다. 뭐가 됐든 소리의 속도를 넘어선다는 건 공포였다.
그렇다고 1947년 당시 오토파일럿 기술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즉 비행기를 사람 대신 조종해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릴 존재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몸이 찢겨 죽을 각오를 해야만 음속을 초월하는 게 인간에게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때에 공군 에이스 예거가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훗날 회고록을 통해 그는 “파일럿은 비행기를 타고 나는 사람이었고, 나는 파일럿이었을 뿐”이라며 “어차피 죽는다 해도 나로서는 그 순간에 뭘 느끼거나 알 도리가 없을 것이므로 실험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술회한다. 심지어 실험 이틀 전 말을 타다가 사고가 나서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였는데도, 이를 숨기고 실험에 참여했을 정도로 ‘그저 파일럿이고 싶던’ 사람이 척 예거라고 한다.
하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비행을 하는 그가 정말로 심드렁했겠는가.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 후의 느낌에 대해 그는 “허탈했다(letdown)”고 기억한다. 자신은 당시 온갖 소문과 예상 때문에 그 장벽이라는 미지의 존재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나오는 상상을 했고, 그 충격을 느낄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때 내가 깬 장벽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식과 경험에 있는 것이었다”고 역시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곧 깨지면서 충격파를 남길 ‘보안 장벽’, RSA 알고리즘
지금 우리도 컴퓨팅의 ‘초음속’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양자 컴퓨터 이야기다. 양자 컴퓨터가 우리 생활 가까이로 다가오면서 보안 업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존 슈퍼컴퓨터와는 비교되지 않을 강력함 덕분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암호화 알고리즘들이 무용지물이 될 것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다.
게다가 최근 중국과학기술대학의 연구진들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 때문에 보안 업계는 더욱 긴장하고 있다. 기존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계산을 양자 컴퓨터로 수분 만에 해결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글과 IBM에서도 작년 비슷한 성과를 올린 바 있어 이것이 세계 최초 사례는 아니다. 이미 최소 세 번이나 양자우위(quantum supremacy : 양자 컴퓨터가 슈퍼컴퓨터를 넘어서는 것)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데이터가 전송 중일 때 암호화 처리를 담당하는 RSA 알고리즘을 깨기 직전에 있는 세력이 최소 셋이나 된다는 뜻이 된다. 아직 깰 단계는 분명히 아니지만,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누군가 먼저 RSA를 깨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거의 초음속 비행 성공도 당시의 냉전 상황 때문에 극비에 부쳐졌고 1년 간 세계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안전한 양자 컴퓨터를 위한 기술 및 표준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기업 세이프퀀텀(Safe Quantum)의 CEO 존 프리스코(John Prisco)는 외신인 스레트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 시점에서 양자우위를 자랑하는 건 실질적인 연구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암호화 알고리즘을 실제로 깨버리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주의 최종 도착선은 암호화 알고리즘의 파괴입니다. 양자우위 발표는 그저 지나쳐가는 지점들일 뿐입니다.”
초음속 비행이 성공했다고 해서 일반인들의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심지어 충격파라는 것이 파일럿에게도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RSA라는 장벽이 깨지면 그 충격파는 일반인들에게 미칠 것이다. 으레 안전할 것이라고 여겨지던 데이터 전송 방식들은 폐기되고 다른 방법들이 사용되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에게는 이렇다 할 방법이 아직 없는 상태다. NIST가 양자 컴퓨팅 시대를 위한 암호화 알고리즘 경연대회를 열고 있는데, 그 대회에 제출되는 안건들이 거의 전부다.
보안 업계에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19년 디지서트(DigiCert)는 보고서를 통해 “2022년까지는 양자 컴퓨터 기술을 통한 데이터 침해에 대응할 방법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을 정도다. 값이 비쌀 것이 분명한 양자 컴퓨터를 동원한 국가 기관이나 정부가 개개인을 염탐하고 정보를 캐내는 것을 막으려면, 심지어 어느 정도 투자가 가능한 가격 선에서도 효과를 발휘할 방법이 나오기까지 해야 한다.
회의론 같은 긍정론도 있어
하지만 일각에서는 양자 컴퓨터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잘 들어보면 회의론도 아니고 긍정론도 아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지금도 데이터들은 끊임없이 새나가고 있는데, 양자 컴퓨터가 RSA를 깨부수고 데이터를 빼가는 것 때문에 더 큰일이 벌어질까”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미 현존하는 사이버 공격 기법을 가지고 RSA 키를 훔쳐냄으로써 RSA 알고리즘을 깨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현대 공격자들도 거둘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회의긍정론’에는 중요한 내용이 숨겨져 있다. 지금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면, 미래의 공격에도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데이터 탈취에 대응하는 것이 양자 컴퓨터 시대를 준비하는 것의 첫 걸음이라는 뜻이다.
또한 양자 컴퓨팅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산업 표준과 정책 역시 준비되어야 한다. 이는 정부 기관들이 나서서 준비해야 할 일이다. 해외 여러 단체들이 시작 및 주도하고 있는 ‘양자 리터러시(quantum literacy : 양자 컴퓨팅 기술에 대해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운동도 눈여겨볼 만하다. 양자 컴퓨터가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로 향상됐는지 이해하는 것부터 대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더럼대학교는 1월 22일 홈페이지를 통해 “비디오게임을 사용해 ‘양자 리터러시’를 키울 수 있다”고 소개하며 “높은 수준의 양자 리터러시를 시민들이 갖추고 있다면 획기적으로 빠른 데이터 처리 능력을 보다 앞서 누리고 보안 이슈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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