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희 수리과학부 교수가 이끌어... 동형암호 SW ‘혜안’ 개선점 제시하기도
[보안뉴스 양원모 기자] ‘SNUCRYPTO’는 동형암호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평가되는 천정희(50)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교내 암호동아리다. 2013년 천 교수 연구실 인턴들이 만든 소모임에서 시작한 SNUCRYPTO는 2017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선정하는 대학 암호동아리 지원사업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차지하는 등 ‘청출어람’의 표본이 되고 있다.
▲24일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이동환 ‘SNUCRYPTO’ 회장(오른쪽)과 최형민 ‘SNUCRYPTO’ 부회장(왼쪽)이 <보안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보안뉴스]
24일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이동환(25·수리과학부) 회장과 최형민(26·수리과학부) 부회장은 “교수님이 동아리 활동이라면 뭐든 지원해 주시려 한다”며 웃었다. 이 회장은 “작년에 천 교수님 연구실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며 동아리에 가입했다”며 “전공이 수리과학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암호 분야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동아리에 속한 친구들을 보고 암호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빠듯한 교과과정을 따라가며 동아리 활동을 병행했다. 암호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천 교수는 자신이 창립 회원으로 있는 카이스트 수학문제연구회(수문연)를 떠올리며 ‘서울대에도 비슷한 동아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위대한 학자들이 수천 년간 쌓아올린 업적을 맹목적으로 쫓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습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동아리 회원은 천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동형암호 소프트웨어(SW) ‘혜안(HeaAn)’에 대한 개선점을 제시할 정도로 학부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천 교수의 설명이다. 천 교수는 “전대 SNUCRYPTO 회장이 최근 혜안의 재부팅(복호화 함수를 다항식으로 표현하는 작업) 기술에 수치해석기법을 활용하는 법에 대한 논문을 써서 세계 3대 암호학회 중 하나인 ‘아시아크립트’에 제출했다”며 “학부 레벨에서 이 정도 논문을 썼다는 건 고무적이고 대단한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다음은 동아리 이동환 회장과 최형민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동아리 소개를 부탁한다 총 13명으로 구성된 소수정예 동아리다. 13명 중 8명은 천 교수님 연구실 인턴이다. 나머지는 컴퓨터공학부, 자율전공학부 등 타 학부생들이다. 연구실 인턴이 대다수였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부원들 전공이 다양해진 편이다. 동아리 외연이 넓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 동아리는 인턴이 중심이기 때문에, 인턴 활동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올해는 연구실 인턴 선발 과정이 늦어지면서 부원 구성이 좀 미뤄졌다. 부원 숫자는 매년 13명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수상 실적이 화려하다 KISA의 대학 암호동아리 지원사업에 3년째 참가 중이다. 첫 두 해에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국암호포럼에서 매년 여름 개최하는 ‘국가암호공모전’에도 꾸준히 참가 중이다. 작년엔 최우수상을, 재작년엔 우수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대학원생들과 협업해 국가암호공모전 논문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력하는 암호 분야는 뭔가 동형암호다. 동형암호는 데이터를 암호화 상태에서 연산하는 차세대 기술이다. 복호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 정보 유출 위험이 낮은 게 장점이다. 하지만 아직 완벽한 건 아니다. ‘부트스트래핑(Bootstrapping)’ 등 보완할 점도 있다. 동형암호는 특성상 연산 과정에서 다량의 에러 값이 쌓인다. 에러값이 방치되면 기존 데이터를 오염시킬 수 있다. 부트스트래핑은 이 에러 값을 초기화하는 작업이다. 부트스트래핑 기술이 개선되면 동형암호의 성능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SNUCRYPTO’ 활동 모습[사진=이동환 회장 제공]
천정희 교수님의 동아리 지원이 남다르다던데 늘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라’고 말씀하신다. 외부 워크숍,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의 암호여름학교, 연구실 인턴 등 기회가 생기면 최대한 부원들을 챙겨주려 노력하신다. 작년에는 교수님 덕분에 교내 산업수학센터에서 주관하는 산업수학 워크숍을 무료로 다녀왔다.
동아리 활동은 어떻게 하나 2주에 한 번 꼴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연구실 인턴을 병행하는 부원은 자기 연구 분야나 최근에 공부한 논문을 리뷰하고, 일반 부원은 관심 갖고 있는 암호 관련 주제를 선정해 발표하는 식이다. 양자 알고리즘, 동형암호 등 여러 주제를 다뤘다. 말만 들어선 딱딱하고 학술적 분위기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부원들끼리 식사도 자주 하는 편이다.
동형암호 외에 동아리 차원의 관심 분야가 있다면 함수암호다. 함수암호는 동형암호보다 한층 더 기술적으로 진화한 암호체계다. 동형암호가 ‘4세대 암호’라면 함수암호는 ‘4.5세대 암호’쯤 된다. 함수암호란 데이터를 복호화하지 않고 함수를 적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2009년쯤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아직 기초적 이론만 나와 있는 상태다. 함수암호는 욕심이 많은 암호다. 많은 기능이 들어있다 보니 구현이 어렵다. 양자컴퓨터도 20세기 초반 이론이 제시됐지만, 여전히 구현을 못 하고 있다.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향후 동아리 활동 계획은 곧 한국암호포럼에서 개최하는 ‘국가암호공모전’에 참여할 예정이다. 국가암호공모전은 두 분야로 구성된다. 논문과 문제 풀이다. 우리 동아리는 문제 풀이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공모전에 참여하는 다른 학교나 동아리를 보면 수학 전공자가 많지 않다. 하지만 출제되는 문제 중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처럼 큰 수학 지식이 없어도 해결 가능한 것이 있고, 고도의 수학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있다. 우리 부원 중엔 수학 전공자가 많아 문제 풀이에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암호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최우선 목표다. KISA도 연말 최우수 암호동아리 시상 때 공모전 성적을 중요하게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양원모 기자(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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