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한국 TV 예능계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은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있다. 많은 이들이 ‘청춘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13년을 꾸준히 챙겨본 애청자라면 대부분 이 표현에 공감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토요일 오후의 빈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걱정하는 이들도 많은 듯 하다.

[이미지 = iclickart]
시간은 늘 배고픈 곳간이다. 오랜 연인과의 이별이 아픈 것도 사실은 같이 채워왔던 시간이 느끼는 허기이고, 길기만 했던 학창시절이 끝나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의 허전함도 그 곳간에서부터 울려나오는 공복의 소리다. 심지어 군대 전역할 때도 시원함 속에 ‘이제 이 곳간을 어떻게 채우나’ 하는 걱정이 살짝 들 정도니, 시간의 욕심은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재물이 가는 곳에 마음도 따라간다고, 그 곳간을 채우다보면 어느 새 우리 마음도 그곳에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싫었든 좋았든, 지겨웠든 늘 새로웠든 말이다.
그래서 이 시간은 공급원을 유지하기 위해 ‘겁주기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자신이 느낄 허기를 미리 걱정하도록 하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는 이별을 선언하기 전에 ‘또 누굴 만나 시간을 채울까’를 걱정하고, 무한도전 종영 후 토요일 오후 시간을 미리부터 탄식하고, 내 온갖 정보를 캐내갔다고 분노하면서도 줄기차게 드나들었던 SNS를 선뜻 탈퇴하지 못한다. 이를 미련이 남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미 페이스북은 인터넷이란 공간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이 뿌리의 이름은 ‘편리’다. 각종 ID 생성과 로그인 행위를 페이스북이 도맡으면서 터치폰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어려움에서 해방됐다. 페이스북 하나만 사용하면 반쯤 자동으로 인터넷 거의 모든 메이저 서비스를 편리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편리하다는 건 시간이 부리는 욕심을 만족시키기에 좋다는 뜻이니, 우린 갓 태어난 내 아이의 소식도, 방금 접한 따끈따끈한 뉴스도, 이 페이스북의 편리함을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다. 온갖 뉴스들이 사실상 SNS에 종속되었다. 곳간 채우기에 페북만한 것이 없게 되었다. 그것이 페북을 직접 사용하는 것이든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든 말이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인터넷 그 자체’라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사람들은 얼마나 그곳을 채웠을까). 최근 우리는 페이스북을 통하여 각자에게 주어진 곳간을 채웠을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이라는 회사와 일부 정치인들의 욕심도 채워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페북을 추적하면 나의 배우자나 친부모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소름끼치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 현상을 누군가 적극 이용했고, 우린 사실상 놀아났다는 내부자 고발도 있었다. 그런데 우린 어떤가? 탈퇴 버튼을 선뜻 누르지 못한다. ‘페북을 그만두면 그 남는 시간을 뭐로 채우지?’ 겁주기가 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파이어폭스를 만드는 모질라는 페북을 탈퇴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웹 서핑을 하게 해주는 플러그인을 발표했다. 탈퇴가 극단적으로 보인다면, 모질라의 방법은 온건하다. 하지만 그 온건함 때문에 ‘통할까?’하는 의구심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인터넷 구석구석, 인터넷을 사용하는 우리의 행동 방식과 시간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페이스북을 ‘온건하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치부가 드러났는데도 수십억 사용자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페북이 주커버그를 통해 약속한 것처럼 향상될 이유가 있을까?
탈퇴하자는 목소리만 크지 아직 이렇다 할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에, 엉뚱할지 모르지만, 보안의 갈 길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반인들의 인식 제고라는 측면에서는 ‘10년도 모자라겠다’는 실망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몰래 나를 지켜보고 있던 눈에 대한 불쾌감보다 당장에 비게 될 시간의 공복이 더 절감된다는 것이 아직도 팽배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를 잃는다는 상실감이 우리 안에 아직 장착되지 않았다. 페북을 접속하지 않았을 때의 그 허허벌판 같을 시간들이 더 무섭고 염려된다. 페북이 내린 뿌리를 통해 나라는 영양소도 함께 빨리고 있는데 말이다.
보안이 강력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안이 제대로 갖췄을 때의 좋은 점들이 대부분 ‘공공성’을 띄기 때문이다. 보안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잘 지킨다고 했을 때, 내 잔고가 불어나지 않는다. 대신 날 내 부모보다 잘 알게 될 타인이 생길 확률이 낮아진다. 그런 타인들이 조금씩 내 생각을 갉아먹을 통로도 제한된다. 그런 것들이 모였을 때 조금은 더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공통의 이득을 추구하는 데 우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보안은 모든 생명체의 과제인 ‘시간 채우기에’ 굉장히 좋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글자와 숫자를 조합해 멀쩡한 암호를 바꾸는 것도 은근히 시간이 든다. 이걸 토요일 예능을 시간 맞춰놓고 보듯 주기적으로 한다면, 시간의 곳간이 쑥쑥 채워진다. 패치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여러 인터넷 서비스나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프라이버시 옵션을 이리저리 만져보는 것도,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약관을 찾아 읽는 것도 시간을 기가 막히게 잡아먹는다. 그러는 가운데 IT 기술과 인간 생리를 어느 정도는 자동으로 익히게 되는 건 덤이다.
물론 보안이 달콤한 연애보다, 유재석 씨의 귀 넘김 좋은 진행 능력보다 친절하게 시간을 채워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게는 팔자에 없던 보안/IT 관련 자격증부터, 크게는 내 아이가 채울 시대를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까지 할 수 있다. 이만한 투자가 없다. 토요일 오후가 허전하거나, 혹시나 최근의 이별 때문에 시간이 배고프다고 악을 쓴다면, 보안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 한다.
헤어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간이 미리 주는 겁은 대부분 공갈이다. 어떻게 해서든 채워지는 것이 시간의 속성이다. 겁낼 것 없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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