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와 난 자리에서 더 빛나야 할 보안, 섣불리 들어서려다간...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회계와 관련된 직무를 맡아왔던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있어 어디든 새로 취업할 수 있다는 패기어린 지난 사표에 대한 후회가 두 배, 세 배로 진하게 몰려들 때가 있는데, 바로 연말정산 과정을 혼자 진행해야 할 때다. 그 때처럼 총무부 혹은 경리부의 인력들이 그리울 때가 없다. 특히나 행정 업무나 꼼꼼한 서류 작성과 거리가 먼 사람들일수록 홧김에 사표를 던져댈 확률이 높은데, 이 사람들은 연말정산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물론 경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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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세청에서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이러한 서류 작업이 쥐약인 사람들은 간소화된 서비스나 그렇지 않은 서비스나 매한가지다. 분명 한글인데도 외국어처럼 읽히는 기적은 물론이고, 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초자연적인 경험까지도 할 수 있다. 이 연말정산의 시기만 무사히 보낼 수 있다면 다시 그 회사로 돌아가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을 거 같고, 자존심이라는 속박마저 풀어헤칠 수 있게 된다. 원초적인 자연인으로 회귀하게 된 달까. 물론 경험담이다.
그렇다고 간소화 서비스에 침을 뱉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표 던지고 나온 곳이 다시 생각날 정도니, 세상에 감사 못할 게 없다. 서류뭉치 사이를 빽빽하게 행군하다보면 이거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기입할 수 있는 칸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글자를 익혀 그 칸을 뭔가로 채울 수 있다는 것마저도 커다란 감동이 된다. 식구들 다 자는 새벽, 가장이랍시고 이 몇 만원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원서로 된 전공 서적보다 어려운 세금 서류들을 붙잡고 있으면, 세상이 다 감사와 고마움으로 가득이다. 심지어 이걸 해낸 나라는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경험담이다.
그런데 여기 저기 전화를 하고 주위에 세금 관련 고수들이 있으면 붙잡고 늘어져 어떻게든 연말정산 서류들을 혼자서 다 작성해 제출하고 나면, 그런 열정과 고마움은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진다. 얼마 들어올까, 설마 돈을 더 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궁금함과 불안감이 마음의 새로운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완수한 자연인은 순식간에 원래의 백수가 된다. 은근히 기대했던 액수만큼 들어오지 않을 경우, 세금을 더 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보다, 겨우 이거뿐인가, 하는 허탈감이 1등으로 찾아든다. ‘하, 그 고생을 했는데...’
보안의 역할에 대해 일반 직원이나 경영진이 느끼는 감정은 자의든 타의든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연말정산 기간을 보낼 때와 비슷하다. 큰 은행이나 대형 쇼핑몰, 통신사 등에서 사고가 터졌다는 소식에 불안감이 시작된다. 그래서 ‘보안 강화’를 떠올리지만, 이건 뭐 간소화된 서비스도 없고, 전문가들은 너무나 많고,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아주 가까운 업체나 아는 사장님이 사고에 휘말렸을 때, 혹은 본인이 사고 기업의 운영자일 때일수록 도움은 절실해진다. 보안에 대해 누군가 아는 척만 해줘도 감사하고, 새로운 보안 관련 지식들에 감격이 철철 넘친다. 허기와 가난이 가득한 마음이니, 은혜로운 나날들이 지난다. 그리고 뭔가를 해놓긴 한다.
그러나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가라앉고 다시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으로 돌아오면 보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잘 방비했던 거야’라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한 마음이든, ‘괜히 쓸데없는 돈을 쓴 건 아닐까’하는 후회이든, 결국 ‘이 참에 보안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어’라고 마음먹는 사람은 드물다. 누군가에게 맡기고, 자기는 서서히 잊어간다. 사실 보안에 관심이 떨어질수록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이다. 속기 쉽고, 따라서 편하게 마음먹기도 쉽다. 모든 상황이 보안을 잊을 수 있게 돕는다.
든 자리로 환영받는 것들이 있고, 난 자리로 후회를 만드는 것들이 있다. 연말정산 시즌에 떠올리는 전 회사의 총무부서든 보안이든, ‘난 자리’에서 빛이 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등장과 함께 화려하게 박수 받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원래 뭔가를 ‘보호’하고 ‘지원’해주는 것들이 대부분 그렇다. 난 자리에서 빛나야 할 것이 든 자리로 대접을 받으려고 할 때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그 부작용이 가장 확실히 나타나는 것이 교육 현장이다. 부모의 꿈이 아이들 인생에 들어설 때, 얼마나 많은 비극이 일어나는가. 또, 포털에 ‘최악의 복싱 포스터’를 쳐보라. 얼굴만 가득한 그림이 한 장 뜰 것이다. 시합을 홍보해야 하는 포스터인데, 숨어있어야 할 협회 관계자들이 죄다 포스터 전면에 드러나는 바람에 복서가 누구인지, 뭘 하는 행사인지 알 수가 없다. 이 포스터는 최악의 디자인, 최악의 클라이언트 등의 수식어와 함께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한 동안 돌아다녔다. 얼굴 한 번 내보이겠다는 욕심이, 전체를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난무하는 인터넷 콘텐츠 속에서 클릭 한 번 유도해보겠다고 ‘낚시성’ 제목을 단 단신 기사들 역시 기자라는 집단을 ‘기레기’로 만들고 있다. 물론 경험담이다.
가끔 보안하는 사람들도 드러나고 스스로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때가 있다. 기자가 구닥다리인 건지, 아직은 ‘공격 표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보안 담당자가 숨어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더 마음이 간다. 사실 많은 업체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보안 솔루션에 대한 이야기나 보안 담당자들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한 명이라도 섭외해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달갑지 않으나 ‘보안을 위해서 숨고 싶다’라는 거절 메시지를 들으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본질상 그 조직의 보안이 단단해지는 게 기자가 원고량 채우는 것보다 나으므로.
든 자리에서 받는 환호성은 대부분 몇 번 메아리치지 못한다. 굵을 수 있으나 짧다. 그러나 난 자리에서 나오는 탄식은 길고 깊다. 그 자리를 비게 한 것이 일생의 실수임을 깨달은 조직이나 사람은, 그 바뀌지 않는다는 사람이, 변화하기도 한다. 짧고 굵게 산 부모는 단편 영화의 좋은 소재일지 모르나, 길고 깊은 영향을 남기는 부모가 아이에겐 더 바람직하다. 보안은 드러나길 꾀하기보다 난 자리에서 남은 사람이나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기를 꾀해야 더 어울린다. 부재의 상황에서까지 영향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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