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퀴아오 vs. 메이웨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던 이유
유럽연합을 향한 손가락질, 사실 우리 자신을 향해 있어
강력함이란 장점의 계발보다 약점의 보완으로부터
[보안뉴스 문가용] 분야를 막론하고 깊이 파고들다보면 어느 순간 보편의 진리와 맞닿는 때가 생긴다. 보안도 바로 그러한데, 여태껏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울림을 느꼈던 말은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 했던, ‘네트워크는 가장 약한 곳만큼만 강력하다(your network is as strong as your weakest part)’이다. 좀 더 매끄럽게 번역을 해보자면 아마 ‘네트워크 보안, 취약한 곳의 관리에 따라 결정된다’ 정도 되겠다.
정보보안에서 해커와 보안인들의 대결구도는 결국 취약한 곳을 누가 먼저 발견하고 활용하느냐의 싸움이다. 해외 보안 관련 매체에 올라오는 칼럼, 뉴스, 오피니언의 내용 역시 이 취약점과 관련된 것이다. 외주업체, 앱, 가정자동화 컨트롤러, 인터넷 공유기, 암호 확인 시스템 등 때에 따라 그 취약한 부분이 새롭게 부각되는 것일뿐, 정보보안의 본질은 언제나 ‘약점 보강’에 있다. 강점이란 장점이 얼마나 뛰어난가가 아니라 약점이 얼마나 없는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있었던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복싱 경기에서도 증명됐다. 세기의 대결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대전료에 부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나 생각해봄 직했던 관람료 수준(근처 공항이 관람객들의 개인 비행기들로 꽉 찼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 미국에서는 TV 시청을 하는 데에도 약 10만원을 내야 했던 경기였다. 무엇보다 파퀴아오라는 불세출의 창과 메이웨더라는 명불허전의 방패가 붙는 경기라 복싱 팬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결국 경기는 방패의 승리로 끝이 났다. 졸전이다, 재미없었다, 다신 복싱을 볼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야유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는 있지만, 현장에 있었던 심판관들 포함 전문가들은 거의 하나 같이 방패인 메이웨더의 손을 들어주었다.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유효타를 꽂는 데 성공했다는 뜻. 3:0이라는 일방적인 판정승 점수도 이를 보여준다. 챔피언이 되려면 우선 방어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공격력과 개인기, 용수철 같은 점프력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포츠 스타로 불리는 마이클 조던이 덩크만 잘했을까. 그는 스틸의 제왕이기도 했다. 최다 스틸수를 기록한 시즌이 세 개에, 전반전 최대 스틸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축구 선수들은 공격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있는 팀보다는 골키퍼가 든든한 팀에서 더 안정감을 느낀다고도 한다. 김태균이라는 거포를 보유하고도 최근 몇 년 KBO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한화의 수비 실책은 팬들의 계속된 질타 대상이다.
또 세계적인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단체가 있으니 바로 유럽연합이다. 2주 전에 있었던 지중해 사태 때문이다. 아직도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계속된 아프리카와 중동의 테러와 내전, 기근 때문에 나뭇잎 같은 배 한척에 기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려던, 어쩌면 지구 전체에서 최약체에 속한 사람들이 결국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건이다.
유럽연합이 질타를 받는 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구조작업을 벌임과 동시에 ‘이들을 전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가뜩이나 그리스와 러시아 때문에 내부 사정이 좋을 수 없는 유럽연합이 불법 이민자 및 망명인들을 대거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뭔가 다른 걸 기대했었나보다. 아마도 난민 수용 실패를 통해 우리의 해결 못한 약한 부분을 보며 생각보다 그리 멀리 가지 못한 인간 발전의 현주소를 보았던 것이리라. 그렇게 따지면 EU를 향한 질타는 우리 수준이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 라고 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이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경기가 재미없었다고 규칙을 바꿔 무제한 난타전으로 복싱을 새롭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복싱에 붐은 일어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복싱 선수들이 단명할 것이다. 현 챔피언인 메이웨더의 경기 방식은 메이웨더가 쪼잔한 성격의 사람임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젊은 선수들을 죽이고 죽였던 복싱이라는 경기의 룰 자체가 보완되고 또 보완되는 과정 중에 최적화된 형태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을 다시 부활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중동과 아프리카의 불법 이민자들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게 된 유럽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유럽일 것이다. 외주업체의 보안과 사용 중인 앱의 보안을 늘 보강해 그곳에서부터 들어오는 해킹을 차단할 수 있다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지금보다 한 단계 더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해킹과 보안이 취약점 빨리 찾기 전쟁을 벌이는 관계에 있다고 표현했는데, 달리 보면 좀 더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여기서 어린이날 기념, 소파 방정환 선생의 말을 몇 구절 인용해 정보보안 상황에 응용해 보자.
1) 어린이를 내 아들놈, 내 딸년하고 자기 물건같이 알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 -> 취약점은 박멸해야 할 해충 같은 게 아니라 더 나은 보안으로 이끌 길 안내판임을 알아야 한다.
2) 나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10년을 투자하라. -> 취약점에 투자하는 건 땜질 비용을 들이는 게 아니라 미래를 단단히 여미는 것이다.
3)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입니다. 어른들은 미래의 희망이요, 주인공이 될 우리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존경합시다. -> 취약점은 더 강력해질 보안의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기존 정보보안이 몰랐던 미래의 희망이요 강력한 조력자입니다. 찾고 해결합시다.
4)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 취약점은 보안을 한 시대 더 새롭게 만듭니다. 취약점을 단순히 임시방편으로 처리하지 마십시오.
5) 어린 사람의 운동도 크지만 제일에 앞으로 그들을 직접 낳고 기르고 교양해 나갈 어머니들의 문제도 또한 큰 것이다. -> 취약점이 자꾸만 발견되고 해결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이제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보안에 신경을 쓰는 문화도 배양할 때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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