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 해킹 사고로 인해 ‘보안’이 이제 전 산업에서 꼭 필요한 기반 인프라가 되고 있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보안뉴스>는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김정덕 명예교수의 연재를 통해 일상과의 비유를 바탕으로 보안의 여러 이슈를 짚어보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보안 패러다임과 지속가능한 보안을 위한 거버넌스와 리더십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연재목차 Part 1. 보안 다반사- 보안, 일상과 비유에서 길을 묻다]
1. 골프 지혜로 배우는 사이버 레질리언스
2. 케데헌 현상에서 배우는 사이버 보안문화
3. 트럼프발 ‘각자도생’ 시대, 한국의 디지털 안보 전략은?
4. 자전거 라이딩과 사이버 보안
5. 불꽃야구로 본 사이버 보안
6.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7. 나무의 전략에서 배우는 보안의 지혜
8. 기술중독, 사이버 보안의 새로운 위협
9. 워렌 버핏에게 배우는 사이버 복원력 원칙
10. 내면의 방패, 마음챙김
11. 가장 따뜻한 보안 교과서, 육아
12. 손흥민의 리더십과 사이버 보안
13. 의학 3.0시대, 보안의 새로운 지평
[보안뉴스= 김정덕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명예교수/인간중심보안포럼 의장] 지난 여름, 한 달 갓 지난 친손녀를 돌보기 위해 텍사스 댈러스의 맞벌이 아들 부부 집에서 저와 아내가 50일간의 육아 출장(?)을 하였습니다. 아직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울음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작은 존재와의 하루는 온전히 집중과 헌신을 요구하더군요. 밤낮없이 이어지는 수유와 기저귀 갈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보챔에 녹초가 되다 가도, 방긋 웃어주는 손녀의 미소 한 번에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자료: AI Generated by Kim, Jungduk]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손녀를 보며, 어제의 육아 방식이 오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옹알이가 늘고, 목에 힘이 생기고, 우유 섭취가 늘어가는 매 단계마다 저희 부부의 역할과 전략도 변화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저는 수십 년간 몸담아온 사이버 보안관리의 원칙들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말 못 하는 아기에게서 배우는 사이버 보안의 교훈이라니, 실로 오묘하고 깊은 지혜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상시 모니터링과 신속 대응: ‘울음’이라는 이상 신호
육아의 기본은 ‘상시 모니터링’입니다. 아기가 잘 숨 쉬고 있는지, 체온은 적절한지, 배고프거나 불편하지는 않은지 부모와 조부모의 눈과 귀는 24시간 아기에게 고정됩니다. 작은 뒤척임 하나, 가쁜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조직의 정보 자산을 지키려는 보안 관제요원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집니다.
사이버 보안의 첫걸음 조직의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24시간 365일 감시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보안 시스템은 결코 “제가 지금 공격받고 있습니다”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평소와 다른 트래픽 패턴, 비정상적인 로그인 시도, 시스템 로그의 미세한 변화 등 이상 징후를 통해 위험을 알립니다. 손녀의 울음소리가 배고픔, 졸음, 아픔 등 각기 다른 의미를 갖듯이, 보안 전문가는 이러한 이상 신호를 정확히 해석하고 그 원인을 신속하게 파악하여 대응해야 합니다. 아기의 첫 울음에 즉각 반응해야 하는 것처럼, 보안 위협의 초기 신호를 놓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공감과 소통: 말없는 요구를 읽는 능력
손녀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온몸으로 자신의 상태와 요구를 표현합니다. 미간을 찡그리는 표정, 허공을 향한 작은 손짓, 빨라지는 호흡 등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필사적으로 알립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깊은 ‘공감’과 끊임없는 ‘소통’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불편하구나”, “배가 고프구나” 하고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요구를 채워줄 때 비로소 아기는 평온을 찾고 울음을 그칩니다.
이는 보안 정책을 조직에 적용하는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보안은 단순히 기술적인 통제나 규정의 나열이 아닙니다. 현재의 보안 정책이 업무 효율성을 어떻게 저해하는지 이해하려는 공감의 자세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보안 정책은 사용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우회 경로’라는 또 다른 취약점을 낳기 마련입니다. 사용자들의 고충을 듣고, 그들의 입장에서 더 나은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인간 중심 보안(People-Centric Security)’의 접근 방식은 결국 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보안 문화를 구축하는 핵심입니다.
성장에 따른 맞춤형 전략: 진화하는 위협, 진화하는 방어
목을 가누기 시작하면 눕히는 방식이, 뒤집기 시작하면 주변 안전 조치가 달라지고, 이유식이 시작되면 영양 계획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기의 성장 단계에 맞춰 육아 계획 및 방법도 끊임없이 변경해야 하는 것처럼, 사이버 보안 전략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위협 환경과 조직의 성장에 맞춰 유연하게 진화할 수 있는 ‘적응형 보안’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제 유효했던 방화벽 정책이 오늘의 신종 랜섬웨어 앞에서는 무력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클라우드 도입, 원격 근무 확대 등 조직의 IT 환경이 변화하면 보안의 경계 또한 새롭게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는 정기적인 취약점 분석과 모의 해킹 훈련, 최신 위협 정보 학습 등을 통해 방어 체계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개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장을 멈춘 보안 전략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녀가 가르쳐준 명백한 진리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돌봄’의 자세로

▲김정덕 중앙대 명예교수 [자료: 김정덕 교수]
손녀를 돌보는 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그 끝에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미소와 행복이 있습니다. 이 과정은 저에게 사이버 보안이란 차가운 기술과 규정의 집합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따뜻한 ‘돌봄’의 행위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조직의 자산과 구성원을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연약한 아기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끊임없이 살피고, 보이지 않는 요구에 귀 기울여 공감하며, 성장에 맞춰 함께 변화하는 자세. 이러한 ‘돌봄’의 마음이야말로 복잡하고 차가운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가장 근본적인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저는 사랑스러운 손녀가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강력한 보안의 미래를 봅니다.
[글_ 김정덕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명예교수/인간중심보안포럼 의장]
필자 소개_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명예교수, 인간중심보안포럼 의장, 한국정보보호학회 부회장, 금융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위원, 전 JTC1 SC27 정보보안 국제표준화 전문위 의장 및 의원, 전 ISO 27014(정보보안 거버넌스) 에디터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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