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성기노 기자] 중국의 기술 탈취는 단순하게 부도덕한 ‘절도’ 문제로 보아선 안 된다. 우리가 중국의 기술 탈취와 산업스파이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절취’가 한국의 산업 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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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의 황사가 한국인의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정부도 그 대비책을 강구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중국의 기술 탈취와 산업스파이 문제는 201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불어닥치고 있는 산업계의 ‘황사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23년 6월 발표된 국가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사이 적발한 국내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93건이었다. 그중 24건은 반도체, 나머지 69건은 디스플레이와 이차전지·정보기술(IT)·자동차·조선 등이다. 해당 기간 사업기술 해외유출을 막은 피해예방액은 2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외로 나간 국가 핵심기술 수는 2018년 22건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82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국의 기술 탈취가 빈번히 일어났다고 한다. 2020~2023년 사이 중국으로 유출된 기술은 26건으로 전체의 70%가 넘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2024년 11월 말 발표한 해외 기술 유출 사건도 심각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2024년 1월부터 10월까지 국가 핵심기술 등 해외 기술 유출 사건 25건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1년 1월 국수본 출범 이래 가장 많은 수치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적발한 25건의 해외 기술유출 사건 중 18건은 중국과 관련돼 그 비율이 70%를 넘는다. 중국이 한국 산업 기술 유출의 최대 유발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국가 핵심기술 유출 사건은 2024년 1월부터 10월까지 10건이 적발됐다고 한다. 국가 핵심기술이란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안보와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말한다. 지난 2021년 1건에 불과했던 국가 핵심기술 해외 유출 적발은 2022년 4건, 2023년 2건에 이어 2024년 10건으로 급증했다.
산업기술 유출은 한국 산업 생태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일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특히 그 기술 탈취의 70%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이 한국의 경제와 안보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외로 유출된 기술을 산업 분야별로 보면 디스플레이가 8건(32%), 반도체가 7건(28%)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자 수출 주 종목인 ‘전략 산업’에 대한 유출 위험이 높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피해를 환산할 수 없는, 국가 안보에도 최대의 적이 될 수 있다.
한국 기술 유출의 70%는 중국
중국은 한국의 최첨단 기술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을 기술 탈취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청두가오전(CHJS)의 대표 등이 적발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에서 임원을 지낸 CHJS의 대표 최모(66)씨는 삼성전자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20나노급 D램 메모리 반도체 핵심 공정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 등으로 지난 2024년 9월 구속 송치됐다. 경찰은 해당 기술의 경제적 가치가 4조3,000억원 이상이라고 봤다.
우리가 중국의 기술 탈취에 대해 “어쩌다 기업의 보안 ‘방화벽’이 허술해 운이 없어 ‘털렸다’”라고 넘어간다면 한국의 기간산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설 정도로 위협적인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중국은 한국 미국 등의 첨단 산업 기술 탈취를 단순히 한 개인의 ‘절도 행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최선두에 서서 중국을 세계 원톱의 초강대국으로 이끌기 위한 전략과 비전의 가치 아래 두고 있다.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군사 현대화를 포함해 혁신 주도의 경제 성장을 창출해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동등한 반열에 오르고 싶어 했다. 특히 중국은 자국 중심의 국제 질서로 형성된 가치 체계를 세계의 보편적 가치로 규정하고 국제적으로 공인받으려는 야심찬 계획에 도취돼 있다.
과거 도량형(미터법) 통일이나 비디오 기술 등의 국제 표준화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가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는 것처럼 중국은 경제적 우위 확보와 표준화의 ‘싹쓸이’를 통해 세계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열망에 들떠 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은 국가 주도의 산업 첩보활동과 기술 탈취를 통해 경제적 우위를 확보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기업은 물론 학술 연구소까지 기술 탈취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김진용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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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국의 첨단 기술 탈취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포섭’이다. 중국은 거액의 연봉을 미끼로 국내 기술 탈취를 위한 산업스파이를 찾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방식도 점점 조직화되고 있다.
국내에는 중국 등에 기술 유출을 하는 전문 브로커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들은 전문성을 가진 핵심 인물이나 특정 장비 기술자 등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주기적으로 관리를 한다. 영입 타깃을 찍어 놓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또한 인적 네트워크 플랫폼인 ‘링크드인’(Linked In) 등에서 프로필이 공개되는 것을 이용해 ‘목표물’에게 이메일을 보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기업의 기술 전문가라면 누구라도 중국 기술 유출 ‘작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에는 핵심 인력의 유출이 더 어렵게 됨에 따라 아예 인수합병(M&A)이나 합작 등의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가장해 기술을 탈취하는 방법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그것에 필수적인 고성능 반도체와 바이오 등의 첨단분야에서 기술 탈취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간첩죄는 ‘적국’인 북한에 기밀 누설한 사람만 처벌
그런데 한국 기술 유출 사건의 70%가 중국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한마디로 중국의 ‘봉’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한국의 인적 보안 의식이 철저하지 못하다는 점도 있지만 기술 유출의 심각성에 비해 그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형사 사건 33건 중 무죄나 집행유예 비중은 87%가 넘는다. 미국이 국가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적발되면 징역 30년형 이상이 가능한 간첩죄 수준으로 강력히 처벌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만도 지난해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도 간첩행위에 포함시킨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처벌 수준은 너무나 관대하다.
산업 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에 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 외 산업기술 유출 시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중국은 기술을 빼내 적발되더라도 처벌이 가볍기 때문에 한국의 첨단 기술을 마음껏 유린하고 있는 셈이다.
현행법으로는 중국의 산업스파이들이 기술을 유출하더라도 그것이 ‘이적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형법의 간첩죄는 ‘적국’인 북한을 위해 국가기밀을 누설한 사람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분단된 특수한 상황에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도 주로 북한을 중심으로 다뤄지기 때문에 중국의 ‘이적 행위’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중국 기술 탈취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이런 점 때문에 지난 2024년 11월 여야는 북한을 뜻하는 적국뿐 아니라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간첩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는 간첩법(형법 98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애초 이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말 국회 본회의 통과가 예상됐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신설됐던 ‘간첩죄’가 71년 만에 처음으로 개정되는 것이라 산업 기술 유출 분야에서도 진일보한 법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초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은 국가기밀과 군사기밀 등의 범위가 모호하고, 간첩법 개정안이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기존의 산업, 군사 등 기밀 관련 특별법들부터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민주당이 “외국으로 확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악용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내부에서 있어서 그것부터 검토해보자는 것이다”(노종면 대변인)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은 여전히 남북이 분단돼 있고 국가보안법도 살아있는 만큼 간첩법의 ‘확대’ 적용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검토와 협의를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기간산업 보호와 산업 기술 유출 방지는 경제뿐 아니라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여야가 조속히 합의를 해야 할 것이다. 간첩법 개정안이 정쟁으로 매몰될 경우 우리의 기업들이 공들여 개발한 첨단 기술이 어이없게 중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 가속화될 것이다. 기술은 기업이 개발하지만 그 유출 방지는 정부와 국가의 문제다.
[성기노 기자(kino@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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