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보안] 진짜 전문가와 가짜 전문가의 차이, 보안 전문가들이 보여주고 있다

2024-10-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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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이 그저 빈 공백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이 진짜 고수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어떤 뜻 깊은 자리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한 연사가 나와 감명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도 나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끝에 가서 그 연사가 작은 말 실수를 저질렀다. ‘너무나 어려웠다’는 의미로 ‘여간 어렵지 않았다’라고 해야 하는데 ‘여간 쉽지 않았다’로 말한 것이었다. 화면에 띄워진 그의 PPT 화면에도 ‘여간 쉽지 않았다’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그 분께서는 ‘여간 ~하지 않았다’의 표현을 오인하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이미지=gettyimagesbank]

일단 아이들이 잘못된 용례를 배울까봐 ‘여간 ~하지 않았다’의 올바른 용법을 알려주었다. 문제는 그 분의 나중을 위해서 틀린 부분을 알려주어야 하느냐 마느냐였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아침까지 이 고민을 하다가 그냥 지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지간하면 다른 계기로도 충분히 수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실수였고, 경험상 국어 문법이나 맞춤법을 지적하면 당사자가 불쾌해하는 게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난 그 분과의 관계를 좋은 쪽으로 유지하고 싶었고, 따라서 ‘여간 ~하지 않았다’ 정도는 그냥 넘기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 유독 사람들이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맞춤법과 문법은 동서고금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적 조언이나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도 사실상 금기시 되어 있는 게 사회 분위기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음식이나 영화와 같은 것의 비평도 입 밖으로 내기 쉽지 않다. 이런 것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누구나에게 ‘내가 그래도 이 분야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분야라는 것이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말을 하며 자라온 사람들이라면, 그래서 어느 정도 학식까지 쌓고 사회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는 상태라면 은연 중에 한국말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정확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게 사실이 것이다. 가끔 세부적인 곳에서 틀리긴 하지만, 100% 올바른 국어를 구사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되니 누구나 국어 전문가 타이틀을 가져가려 한다. 그렇다고 매일 거울을 보며 ‘나는 국어 전문가야’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누군가에게 국어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그 순간 ‘나한테 감히?’라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이 전문가 타이틀 욕심이 증명된다.

특정 정치 신념을 갖게 되는 것도, 어떤 종교에 몸 담는 것도, 역시나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시험을 수차례 통과해야 특정 정당의 당원 자격을 갖는 것도 아니고, 종교 시설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고시를 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되고, 들을 귀만 있으면 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풍월을 읊을 수 있게 되고, 그런 세월이 쌓이면서 자기만의 견고한 신념의 성이 완성된다. 나 홀로 전문가가 되는 건데, 그러면서 외부의 비판이라는 것은 점점 강력히 막힌다. 눈만 있으면 가서 볼 수 있는 영화도, 입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접하기가 너무 쉬워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전문가가 되어 있기 좋은 분야다.

모두가 겉으로 표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어느 정도 전문가로 여기게 되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 의견만 맞다는 주장이 강해진다. 그러므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이 풍성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의견에 동조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진영 싸움이 벌어진다. 앞에서는 다양성과 똘레랑스를 고상하게 외치고서는 정작 생각 속에서는 ‘일단 당신 얘기 들어는 볼게, 결국 내가 맞지만’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난리 속에서 대부분의 진짜 전문가들은 침묵을 지키기로 결정한다. 그러면서 진짜 필요한 지식과 지혜는 더 발굴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간다.

그러는 와중에 세상은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있으므로, 더 많은 분야들의 진입 장벽이 낮아질 것이다. 지금은 늘상 사용하는 모국어를 지적 받았을 때나 밤낮으로 즐기는 음식에 대한 의견이 갈릴 때 사람들이 발끈하지만, 나중에는 더 많은 곳에서 이런 다툼과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보안 분야에서도 점점 부각되고 있다. 보안 상태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그 반작용으로 그 지적의 방법 역시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오늘만 해도 한 해커는 평소 인터넷아카이브(Internet Archive)의 보안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자신이 직접 해킹 공격을 실시해 3100만 건의 정보를 유출시켰다. 이 인물은 자신이 보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해킹까지 성공시킨 것으로 보아 꽤나 전문가다운 실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태도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 홀로 전문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직접 해킹한 것도 그렇지만, 그 사실을 온 천하에 떠들썩하게 알린 것이 더 그렇다. 정말 그가 보안 전문가였다면 설사 진짜 해킹을 했더라도 인터넷아카이브 측에만 조용히 알려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많은 해커들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돈을 훔쳐놓고서는 보안 점검을 했다고 주장하며 일부 금액을 빼돌린 돈만을 돌려준다. 어떤 소프트웨어를 해킹해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둔 뒤 보안 점검을 했으니 사례금을 내지 않는다면 데이터베이스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말이 좋아 보안 점검이지, 이렇게 과격해서야 누가 보안 강화의 마음을 먹겠는가.

진짜 보안 전문가들은 조용히 당사자에게만 사실을 알리고, 필요하다면 당사자가 보안을 강화할 수 있도록 협조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충분한 기간이 지나야 겨우 자신의 성과를 발표한다. 일종의 뒷북치기를 스스로 감수하는 것이다.

요즘 여러 곳에서 난립하는 나 홀로 전문가들과 진짜 전문가의 차이는, 이렇게 모두가 말 다툼 벌이기에 서슴없는 시대에는 얼마나 침묵의 가치를 발휘할 줄 아느냐에서 드러난다. 한글 전문가라면 모든 맞춤법 오류에 사사건건 국어사전을 들이미는 게 아니라 조용히 좋은 책을 권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교정하기를 기다려줄 줄 알고, 음식 전문가라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색다른 음식들을 경험케 하며 그 사람을 확장시켜줄 줄 알아야 한다. 정치나 종교적 신념이라는 것도 말로 하는 설교보다 삶 그 자체가 가장 큰 설득력을 갖는다. 패치 적용 등 실질적인 보안 강화의 시간을 허락하고자 사건이 한참 벌어진 후에야 스스로 뒷북을 치기를 택하는 보안 전문가들의 행보가 온 사방팔방 나의 해킹 실력을 자랑하는 해커보다 감동스러운 이유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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