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2024년 10월 1주차 <보안뉴스>가 선정한 키워드는 ‘New Order’이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는데, 바로 이 때 사용된 작전의 이름이 New Order이기 때문이다. 이 작전 때문에 중동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고,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게 됐다. 이번 주는 이 소식 하나만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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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헤즈볼라 제거 작전, New Order
이스라엘이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 싶었던 일을 감행한 것이다. 900kg이 넘는 폭탄을 투하해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했다. 나스랄라는 당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근교의 한 지하 방공 시설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한 방공 시설이라고 해도 900kg의 폭탄은 버티지 못했다.
나스랄라는 대중들에게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보안에 집착하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 최측근들이 아니면 알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스라엘은 그런 그를 정확히 겨냥했다. 하스랄라가 암살되던 당시에도 그는 비밀리에 움직였고, 당시 방호 시설에서는 여러 헤즈볼라 사령관들과의 비밀 작전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스라엘은 레바논 사람들이나 헤즈볼라 대원들도 잘 알지 못하던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서 그를 암살할 수 있었을까?
여러 매체들의 보도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이미 헤즈볼라의 매우 깊숙한 곳에까지 손을 뻗쳐 원하는 첩보를 얻을 수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 표적이 된 방공 시설의 경우, 이스라엘은 꽤나 오래 전부터 모니터링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래서 그 시설에 나스랄라가 나타났을 때 이스라엘 군은 황급히 네타냐후 총리에 이를 알렸고, 마침 UN총회에 참석해 회의를 하고 있던 네타냐후는 현장에서 공격 명령을 내렸으며, 이로써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를 없앨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공격이 즉흥적으로 진행된 건 아니다. 이스라엘 매체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군은 이 공격을 수일 전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여기서 준비라는 건 지하 방공 시설을 폭격하기에 알맞은 폭탄을 마련해 전투기에 실어두는 것을 말한다. 지표면 아래에 있는 단단한 방어막을 뚫으려면 적잖은 양의 미사일과 폭탄을 비행기에 싣고 날라야 했으니 언제나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출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나스랄라가 어떻게 움직일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100발 이상의 폭탄이 투하됐으므로 방공 시설만 피해를 입은 건 아니었다. 가디언의 보도에 의하면 민간인 주거용 건물 네 채가 파괴됐다고 한다. 세 곳은 심각한 피해를 입어 사실상 완파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한다. 인명 피해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300명 이상이 죽었다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11명이 죽었다고 한다. 20명이 사망했다고 하는 곳도 있다. 헤즈볼라 소속 인물들과 민간인이 구분된 통계는 없다.
이스라엘은 이미 지난 주 헤즈볼라가 사용하고 있던 호출기와 무전기를 폭발시킴으로써 레바논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한 바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통신 장비들이 터지는 바람에 사망자도 다수 나왔지만, 무엇보다 손과 얼굴 부근에 심각한 절단상을 입은 사람들이 수백 명 나왔다. 헤즈볼라의 전투력이 크게 훼손된 것인데, 여기에 더해 이제는 그 범위를 알 수 없는 첩보의 힘을 통해 최고 지도자까지 성공적으로 암살한 거라고 한 것이다. 헤즈볼라는 순식간에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무장해제 상태가 됐다.
이번 작전의 이름은 ‘New Order’ 즉 새로운 질서였다.
New Order 그 후
이스라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헤즈볼라가 약화됐다는 걸 간파하고 이번 기회에 아예 뿌리를 뽑을 생각으로 계속해서 미사일 공격을 이어갔다. 헤즈볼라의 군 시설들을 수십 곳 겨냥해 파괴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이스라엘 지상군이 레바논으로 직접 쳐들어가기도 했다. 레바논 남쪽 지역에 있는 30여 곳의 마을들에 대피령을 내리더니 군사 작전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고도로 표적화된 작전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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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 땅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현재 시점에서는 명확하지 않다. 증언과 보도들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밤새 총소리가 들렸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전투 요원들과 조우한 적이 없다고 하고 있으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지상군이 침투했다는 게 가짜뉴스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스라엘이 7,500~1만 명의 병력을 레바논 남부에 투입시킨 게 맞아 보인다.
이 작전의 여러 가지 세부 내용이 아직 확실해지지 않은 가운데,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서방 강대국들이 중동 상황에 대해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의 질서는 서양의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었다. 이들이 설정하는 방향에 따라 세계는 나아갔고, 이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 근래 이런 질서들이 자꾸만 부정되고 있다. 미국이 질서를 어느 정도 확립한 듯이 보였던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미군이 물러나자마자 탈레반이 장악해 그 전 20년의 미국 통치가 사실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서방 세계는 사실 옆에서 응원과 잔소리만 하며 입을 놀리기에 바쁠 뿐, 실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기거나 러시아가 곤란을 겪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또 어떤가. 각종 협상의 시도들은 거의 모두가 실패했다. 레바논에서 삐삐와 무전기가 터졌을 때도 서방 강대국들은 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뜯어 말렸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번 New Order 작전은 이런 ‘슈퍼파워들의 무기력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슬슬 ‘서방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에 금이 가고 있다. 여기에 브릭스(BRICS)의 출현과 성장이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뭉친 이 경제 블록은, 사실 말이 경제 블록이지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과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미국과 유럽을 향해 “더 이상 너희들이 세계를 좌지우지 하지 못하게 하겠어”라는 뉘앙스로 움직이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기도 하다. 브릭스에 가입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움직이기 시작한 이란
이런 상황에서 드디어 이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후원자였던 이란은 진작부터 이스라엘을 향해 원한을 품고 있었으나 세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서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비판해도, 아직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의 동맹이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치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편을 들 것이 분명했다. 이란으로서는 아직 반이스라엘 여론이 좀 더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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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공격에 무참히 당하고 있어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이번 주 화요일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180개가 넘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대공 방어 시스템이 작동해 거의 모든 미사일을 격추시켰다고 하며, 일부 민간인들이 부상을 입은 것 외에 큰 피해는 없었다고 이스라엘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격을 당한 건 당한 것이라 복수를 다짐했다. 이스라엘은 서방 슈퍼파워들과 달리 입으로만 말하는 나라가 아님을 이미 여러 차례 입증했기 때문에 아마도 실제 보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의 대대적인 공습이 있고 나서 “이란은 오늘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발표하며 “곧 후회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년 동안 그림자 속에서 싸워왔다. 그것이 중동 지방의 질서였다. 전면에서 드러나지 않게 싸우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비판이나 여론전, 전면전의 계기를 주지 않는 게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이었다. 이란은 이스라엘 뒤의 미국과 서방 세계가 두려웠고, 이스라엘은 중동 지방 전체를 들끓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란은 헤즈볼라와 같은 무장 단체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리저리 건드리고, 이스라엘은 미국과 서방 국가들을 통해 이란에 경제 제재를 해왔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의 일이 쌓이고 쌓이며 이런 질서는 무너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번 주 이란의 대대적인 이스라엘 공격으로 무너진 것일 수도 있다. 둘 사이의 전면전이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서가 다가오고 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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