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으로 이해하는 AI 보안-15] 이데아와 사이버공간

2020-09-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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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에 등장한 인공지능과 사이버세상
인공지능과 사이버보안의 뿌리는 의심과 이성


[보안뉴스= 김주원 사이버보안 분야 칼럼리스트] 신들과 영웅들이 개입한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인간 세상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모든 사물에는 신들이 깃들어 있고, 그 신들을 섬겨야 행복해진다”고 믿었던 인간들은 기술과 문명이 발전하면서 생각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때 그리스 아테네 시의 한 광장에서 한 철학자가 군중을 모아놓고 자신의 철학 사상을 설파하고 있었다.


[이미지=utoimage]

“예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신이 사는 세상과 인간이 사는 세상을 구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신과 인간은 하나의 공간에서 어울려 지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세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동굴 속에 갇혀있다고 치자. 그들이 뒤를 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동굴 벽면에 비친 그림자만 본다면 그들은 그림자가 비치는 세상을 진실인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짜이고 허상일 뿐이다. 인간은 아직도 약한 존재다. 인간은 그 그림자에만 취하지 말고, 뒤로 돌아 또 다른 세상, 이데아의 세상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데아의 세상이 있음을 알려면 감성보다는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 플라톤이었다. 모든 사물에는 신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니며 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던 탈레스는, 이렇듯 또 하나의 파격적인 사상인 이데아론을 주장한 것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순간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 철학자 양반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허상이라는 건가?”
그 순간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플라톤의 주장에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잠시 미간을 찌푸린 플라톤은 눈짓으로 말해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이시여. 현실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허상일 수 있습니까?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스승님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너무 현실적인 인간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앞으로도 계속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며, 그럼으로써 문명은 번창할 것입니다. 먼 미래에는 집집마다 하인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주인이 노예를 부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이달로스의 움직이는 동상이나 헤파이스토스의 트라이포드처럼 명령을 받아서, 아니면 주인의 뜻을 알아서 헤아려 스스로 움직이면서 집안일을 하는 존재가 생겨날 것입니다. 베틀이 스스로 천을 짜고, 현악기가 스스로 곡을 연주할 것입니다. 어찌 이런 세상이 가짜이고 허상일 수 있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크레타 섬을 지키는 거대한 청동거인 탈로스(Talos)처럼 미래에는 인간도 신처럼 자동화된 기계를 만들고, 스스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로봇이 집안일을 돌볼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돌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플라톤은 잠시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다른 제자들은 스승이 어떤 말씀을 꺼낼지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자칫 말실수라도 하면 위신이 떨어질 수 있기에 탈레스는 점잖게 답변했다.

“내가 현실세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이데아라는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한 거야. 계속해서 동굴 속 인간 이야기를 해보자. 그 인간들에게 비춰진 그 그림자의 동작이나 형태 그리고 내용이 너무 재미있다고 하자. 아마도 그 인간들은 그림자에 취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설사 동굴 밖에 더 넓고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좁고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그림자만 바라보면서 낄낄대며 만족할걸? 그래, 먼 미래에는 인간들이 드넓은 세상을 바라보기보다는 동굴 속에 비친 그림자, 그 그림자를 누가 비추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그 그림자가 전부인 양 그 그림자만 바라보노라면 오직 자신이 머무는 좁은 방구석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아늑하다고 생각할 거야. 결국, 그 그림자를 조종하는 뒤의 누군가에 의해서 세뇌를 당한 인간들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될 것이 분명해.”

잠시 플라톤은 숨을 고른 후에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어느 누가 설득하고 애원한들 그들은 동굴에서 나오지 않아. 설사 그들의 부모가 설득을 시도해도 듣지 않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나? 그들을 설득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이성을 찾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지. ‘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현실세상이 아니구나! 지금 바라보고 있는 그림자는 허상(사이버세상)이야! 뒤를 바라보고 동굴을 나와서 이데아의 세상, 즉 인간이 활동하고, 실제로 인간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현실세상에서 살아가도록 해’라고 말이야. 물론 동굴 안이든 밖이든 현실세상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동굴 밖이 진정한 현실세상임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이성적·인간적인지 파악하고 깨닫게 해주는 세상임을, 바로 그곳이 이데아 세상임을 가르쳐주는 거야.”

플라톤이 말을 마치자 제자들은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를 쳐다봤다. 그가 뭐라고 반박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천히 자신의 형이상학적 철학 원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성의 세상이 있다는 주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그것은 분명 신들의 세상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그 세상을 인간이 만들 수 있다니요. 궁금해집니다. 저는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을 믿지요.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지속하는지와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를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론에 맞서 이야기를 계속하려다 포기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마무리를 지었다.
“지금이야 우리가 동굴 밖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주장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 세상이 바뀌어 인간 스스로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시기가 올 거야. 그 경우 그들은 다시는 동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그 동굴 안에서 그냥 살아가겠지 싶어. 내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려면, 가장 현명한 것은 시간이니, 모든 것은 결국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야.”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의 대화에서 최초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개념을 설파했고, 플라톤은 이데아 세상을 설명하면서 사이버공간의 존재를 암시했다. 당시 플라톤이 주장한 그림자 세상은 결국 지금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바라보는 사이버공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청소년들은 사이버중독으로 인해 스마트폰 좀비가 되어버렸고, 현실과 사이버공간을 구분하지 못하며 사이버폭력과 범죄에 익숙해졌다. 오죽하면 물리적 공간에도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밤새 게임을 즐기고 있겠는가. 결국 그러한 청소년들이 동굴 속, 즉 사이버공간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들 스스로 이성을 찾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고개를 뒤로 젖히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는 그로부터 2,000여 년이 지난 17세기에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에 의해서 다시 회자된다.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공지능 로봇과 플라톤의 이성을 결합해 새로운 학설을 내놓았다. 데카르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이 있으므로 동물과는 다르다. 그러니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두 가지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인공지능 로봇에게 다양한 질문을 했을 때의 반응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그냥 기계에 불과하다면 인간과 달리 상황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두 번째로, 기계는 인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방식에 따라 움직인다. 즉, 인간처럼 이성이 존재한다면 모든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겠지만, 기계는 이성이 없기에 특정 상황에 따라서만 동작한다. 물론 기계가 모든 일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기능을 가지고서 작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이성의 핵심 요소인 자율성과 창의적 사고력을 기계가 절대로 대신할 수는 없다.

데카르트의 이 두 원칙대로라면 기계는 절대로 인간처럼 될 수 없다. 결국 인공지능 설계자의 과제는 그가 만든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가 얼마나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느냐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면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존재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그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는 인공지능 분야와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동시에 중요하다. 생각과 존재는 모든 사물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이버보안의 시작점은 바로 의심이다.

데카르트는 존재의 이유를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볼 게 아니라 기계의 입장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우리 자신이 인공지능 자동차에 빙의했다고 하자. 주인이 원하는 장소를 입력하고 버튼을 눌렀을 때, 인공지능은 스스로 주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의심하지 않고 주행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은 인공지능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잘 모르는 이정표라든가 찾기 어려운 장소가 입력되면 인간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동차의 인공지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결국 주변의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주행 과정에 있는 고속도로의 갓길에 부착된 센서나 모바일 네트워크로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기능도 보조 수단일 뿐이다.

결국 자동차의 인공지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만일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스스로 아무 사고 없이 완주했다면 그 자동차의 인공지능은 데카르트의 주장을 완벽하게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외부적 환경에 대한 부분만을 고려한 사항이다. 의심은 외부는 물론 내부에도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프로그램에 결함이 없는지, 모든 부품이 이상 없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입력은 정상적으로 들어오는지, 혹시 사거리에 정차했을 때 사이버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상 여부를 동시에 판단해야 한다. 이렇듯 인공지능과 사이버보안의 뿌리는 의심과 이성이기에 어쩌면 둘이 하나의 존재인 듯싶다. 그러니 인공지능 시스템을 설계하면서 이런 생각에 기반을 둔 원칙과 기준을 마련한다면 사이버보안 문제도 자연스레 동시에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데카르트의 학설은 가까운 미래에 깨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많은 반응을 보이며 생각지 못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또 하나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감성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감성은 이성을 누르고 전혀 새로운 결정을 한다. 그것이 올바른 결정인지 잘못된 선택인지를 인공지능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 감정의 선택이 옳다고 판단하며, 그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인공지능이 감성을 가지고 판단하면 정말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만약 인공지능에 인간처럼 느끼고 헤아릴 수 있는 감성이 제공된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 신의 영역에 진입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인공지능을 섬기고 싶지 않다.
[글_ 김주원 사이버보안 분야 칼럼리스트]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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