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보다 깊이에 다다르는 문제 해결, 정보보안의 특기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도널드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당선 소식과 함께 각종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반발’에 관한 내용이다. 이 상황에 대해 여기서 줄줄이 텍스트로 설명하는 것보다 7분짜리 다음 풍자 영상을 소개하는 게 더 나을 듯 하다. 영상 클릭. 초반 분위기와 달리 공포스럽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기자는 보안뉴스에서 국제부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민감해 하거나 잘 표현하지 않는 오피니언들을 접할 수 있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은 내용을 번역자라는 여과 없이 전달하고자 하지만, 딱 하나, 정보보안 분야에서의 여성 인력 증대에 관한 내용은 좀처럼 소개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직까지 기자가 본 주장들은 ‘성비가 맞지 않으니 이를 맞춰야 한다’는 것 이상의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더 많은 근거들이 표면에 등장한다.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여성만의 문제 해결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 ‘지금 보안 인력이 전 세계적으로 모자라니까’,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적절해야 근무 환경이 더 좋아지니까’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근거들은 결국 ‘성비가 안 맞는 게 어쩐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거 같아’를 포장한 것뿐이다. 그러니 설득력이 전혀 없다. 애초에 정보보안은 여성 지원자들이 일하고 싶어 몰려드는 분야가 아니라는 걸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들일까?
일반 사람들은 정보보안 담당자라고 하면 – 일단 기자 주위 사람들만 봐도 - 기계 소리가 웅웅 깔려 있는 곰팡내 나는 서버실에 앉아 두꺼운 안경을 끼고 소스코드를 들여다보면서 밤새 같은 자세로 뭔가를 뚝딱거리는 수리공 캐릭터를 떠올린다. 그나마도 개발 환경이나 서버실 같은 걸 좀 아는 사람들이나 그 정도지 나머지는 정보보안이란 말을 들으면 신조어냐고 되묻는다. 외국 오피니언 리더들이 아무리 보안 분야의 성비 평등을 외쳐도, 당사자들인 여성들이 오고 싶어 하지 않거나,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모를 확률이 더 높은 게 사실이다.
정보보안 분야의 성비가 반반에 근접하지도 못하고 있는 현상은 차라리 여태까지 정보보안이란 분야가 IT 기술의 하위 카테고리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성이 너무 적다는 표면 상의 문제점은(애초에 그게 왜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정보보안이 곧 IT 개발 업무와 비슷한 일을 한다는 선입견 자체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 더 맞는 방향인 것이다. 성비 불균형 문제는, 보안이 인적 관리 및 사업 운영 리스크 관리 등의 비(非)기술 영역까지 아우른다는 게 알려지기 시작하면 더 많은 여성 지원자들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다행히 보안은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므로 어지간히 좋은 글이 아니면 기자를 통해 성비 문제가 토로되는 오피니언이 소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성이 기술에 약하다는 게 아니라, 정보보안이라는 분야 자체가 여성들에게만 높은 진입장벽을 들이대고 있지 않다는 거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완벽한 보안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긴 마찬가지고, 특히 빠르게 진화하는 각종 기술은 그 어느 누구라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정보보안 분야의 성비 문제라는 건 정치적 올바름에 기인한 허상의 한 종류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는 표면의 현상과 내부의 본질로 이루어져 있다. 시스템의 내부와 일반 사용자의 인식에 가서 닿으려고 애쓰는 보안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면 이를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표면으로는 디도스 공격이 일어난 것이지만, 그 본질에는 한 달 전 들여다 놓은 사물인터넷 기기의 디폴트 암호를 바꾸지 않았다거나, 주요 임원의 시스템이 해킹을 당해서 수사를 하다보니 평소 SNS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왔던 당사자의 습관이 교훈처럼 드러난다든지 하는 걸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이에 있는 인간 본연의 안일함, 보안 무기력증, 정책적인 한계, 입법 시스템의 느려터진 속도, 각 나라와 문화권의 독특한 정서차이와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등까지도 얼마나 심도 있게 다루는가.
무슬림들이 불편할까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하고, 미국 내 외국 학생들이 불편할까봐 미국 국기를 중고등학교에서 내리게 하고, 종교적 이유로 술을 수차례 배달하지 않은 배달원을 해고한 배달 회사에 오히려 종교를 탄압했다고 벌금형을 내리는, 말 그대로 표면의 올바름만을 구축하기에 급급했던 오바마 정부가 ‘프로불편러’들만의 편을 들어주었던 것이라고 미국은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표면에 머무르는 문제 해결은, 갈증 나는 목에 아이스크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 심한 갈증이 곧 찾아온다. (물론 이는 트럼프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정보보안은 깊이에까지 다다르려고 하는 분야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인력들이 매력을 느낄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단순히 여성의 머릿수를 채우자는 의견은 – 설사 겉으로 그렇게 표현되지 않아도 – 그런 정보보안과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더 고민해야 할 건 성비가 아니라 보안 영역의 자연스러운 확대에 어울리는 개개인의 능력 계발 내지는 조직 차원에서의 운영 능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성평등적 생각이 아닐까 한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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