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김호원 한국정보보호학회 회장] 항만은 국가 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최근 해양수산부 집계에 따르면, 2025년 전국 무역항의 총 물동량은 15억7101만 톤을 기록했으며, 컨테이너 물동량은 3211만 TEU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우리 항만이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축으로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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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안보 과제가 놓여 있다. 2026년 현재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국제적 물류 위기는 항로 제약과 운임 급등을 야기하며 글로벌 물류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위기 상황에서 항만 운영 시스템(TOS)이나 하역 설비에 대한 고도화된 사이버 공격이 결합된다면, 국가 물류망은 예기치 못한 정체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제 항만 사이버 보안은 단순한 기술적 관리를 넘어, 국가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전략으로 다뤄져야 한다.
스마트 항만의 가속화와 보안 패러다임의 변화
현재 우리 항만은 Physical AI와 디지털 플랫폼을 도입한 스마트 항만으로의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으며, 시스템의 연결성이 높아질수록 사이버 공격 표면(Attack Surface)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Anthropic이 공개한 차세대 프론티어 모델 Claude Mythos는 주요 운영체제와 웹 브라우저의 취약점을 자율적으로 분석해 실제 작동 가능한 익스플로잇 코드를 짧은 시간 안에 생성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며, AI가 제로데이 탐지와 공격 코드 제작을 동시에 가속화하는 새로운 위협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비록 현재 이 모델은 Project Glasswing과 같은 제한된 방어 협력 프로그램 내에서만 운용되고 있지만, 오픈소스 LLM과 에이전틱(Agentic) 기술, 하네스(Harness) 기술의 결합은 머지않아 공격자도 유사한 능력을 무기화해 사이버 공격의 대중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이른바 ‘AI Velocity Paradox’, 즉 AI가 코드와 공격 도구의 생산 속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반면, 레거시 기반의 항만 인프라와 보안 거버넌스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스마트 항만에 치명적인 균열을 낳고 있다. 만약 이러한 고도화된 AI 기반 공격 툴이 항만 터미널 제어 설비와 운영 시스템의 취약점을 단숨에 찾아내어 마비시킨다면, 그 충격은 개별 터미널의 장애를 넘어 선박 입출항과 환적 네트워크, 내륙 공급망까지 연쇄적으로 붕괴시키며 국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
도메인 특화 ‘융합보안 인력’ 양성을 통한 실질적 방어력 확보
복합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항만과 해사 분야의 특수성을 깊이 이해하는 ‘융합보안 인력’ 양성이 선행돼야 한다. 기존 IT 보안 인력은 데이터의 기밀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항만과 같은 운영기술(OT) 환경에서는 시스템의 가용성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적으로 항만은 일반적인 IT 환경과는 판이한 독특한 운영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특화된 프로토콜과 시스템: 항만은 NMEA 0183/2000, AIS 등 해사 프로토콜과 크레인 제어를 위한 Modbus, OPC UA 등 산업용 프로토콜을 사용한다.
·복잡한 운영 로직: 야드 플래닝(Yard Planning)과 선박 스케줄링(Scheduling), 컨테이너 반출입을 제어하는 게이트 관리(Gate Management), 그리고 양적하 장비(Quay Crane 등) 관리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도메인 지식의 필수성: 환적(Transshipment)이나 양적하(Loading/Unloading) 프로세스의 흐름을 모르는 보안 인력은 AI가 생성한 정교한 이상 징후를 판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야드 플래닝 상의 미세한 데이터 변조는 즉각적인 물류 병목 현상을 야기하지만, 일반 IT 보안 관점에서는 정상적인 데이터 갱신으로 오인될 수 있다.
따라서 사이버 보안 기술력과 항만 현장의 전문 용어, 장비 제어 메커니즘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할 때다.
가이드라인을 넘어선 ‘제도적 기반 마련’의 필요성
해양수산부와 항만공사, 국가정보원 등 유관 기관은 ‘항만 사이버보안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며 현장의 보안 강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필자 또한 해당 가이드라인 제정에 직접 참여하여 관리적, 기술적, 운영적 관점에서 항만 보안 체계를 촘촘히 설계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재의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이를 현장에 완벽히 안착시키고 실질적인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근거는 여전히 보완이 필요한 실정이다.
현재 항만 보안의 상당 부분이 민간 터미널 운영사의 개별적인 역량에 의존하고 있어, 국가 안보 핵심 시설로서의 통합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유관 기관들이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체계적인 예산 투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글로벌 추세와 국가적 지원의 방향성
미국은 이미 ‘해상 공급망 보안법’을 통해 항만 보안을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로 규정하고, 보안 인프라 구축에 국가가 직접적인 재정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는 항만 시스템의 안전을 민간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고,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제도화한 사례다.

▲김호원 한국정보보호학회 회장[출처: 한국정보보호학회]
우리나라도 항만 보안을 단순한 기업의 유지 관리 업무를 넘어 범국가적 안보 전략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민간 운영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개선하고, 국가가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공고히 함으로써 보다 체계적인 안보 망을 구축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한 제도적 노력 필요
항만은 국가 경쟁력의 관문이자 산업의 생명선이다. 지정학적 위기와 ‘Claude Mythos’급 AI 위협이 상존하는 오늘날, 항만 사이버 보안에 대한 투자는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미래 투자’다.
우리는 이미 사상 최대 물동량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항만 운영 역량을 증명했다. 이제는 그 역량을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방패와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합심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과감한 국가적 지원을 실천할 때, 우리 항만은 어떠한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글_ 김호원 제31대 한국정보보호학회 회장/부산대학교 정보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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