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 팩트체크] 초격차 기술은 없다

2025-03-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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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뉴스= 박병욱 IP코드 대표(前 한국표준협회 산업표준원장)] 지난 2018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중에 <초격차>라는 책 있었다. 이는 리더와 조직, 전략, 인재 등의 관점에서, 기업이 어떻게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지에 관한 책이다.

책에는 기술적 초격차 관련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기업과 산업이 글로벌하게 초격차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의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정부는 초격차 기술에 대해 국가의 기술 주권을 책임지는 기술로,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라고 하며, 2022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국가전략기술은 사이버보안과 AI, 양자 등 총 12개 분야였다. 2025년 현재 우리에게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은 과연 이중 어떤 것일까?


▲박병욱 대표 [자료: IP코드]
中 기업, 충격적 행태
지난해 11월 지식재산 전문 사이트인 IP Watchdog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배터리 제조업체인 CATL(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Co., Limited)이 미국 특허청을 속이고 특허등록 받아 왔다.

일반적으로 미 특허청의 심사를 받아 특허를 등록받기까지 대부분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반해, CATL이 미국에 출원한 특허의 경우 330건 이상의 특허가 180일 이하였으며, 그 중 44건은 100일 이하의 기간밖에 안 걸렸다는 것이다. 이는 CATL의 특허에 대해서 면밀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부실한 권리로 등록을 해 주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미국특허청과 중국 기업간의 커넥션의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중국 배터리 업체 CALB(China Aviation Lithium Battery)와의 특허분쟁 과정에서, CATL이 중국 특허청을 속이고 특허등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지난 2021년 7월, CATL은 경쟁사인 CALB가 자신의 특허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복건성의 복주중급인민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손해배상액으로 주장한 금액이 1억 8,500만 위안으로, 한화 361억5,270만원이었으나, 2022년 5월에는 CATL이 주장하는 손해액을 5억 1000만 위안(한화 996억6,420만원)으로 상향했다.

이에 CALB는 CATL이 침해를 주장하는 특허가 무효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그 결과가 2023년 7월에 나왔고, CATL의 해당 특허는 무효로 결정되었는데, 그 사유가 충격적이다. CATL이 특허명세서에 기재한 내용이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조작된 데이터로 특허를 취득했기 때문에 무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중국 특허법 제26조 제3항에서는 특허명세서에서는 해당 발명에 대한 명확하고 완전한 설명을 하여야 하며, 이는 해당 기술분야의 평균적 지식을 가진 자가 재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규정하고 있는 요건과 거의 동일하다. CATL이 침해를 주장하는 특허가 이러한 규정에 맞추어 충분한 발명의 설명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은 것이고, 더 나아가 허위와 조작된 데이터가 들어있거나 아예 뒷받침되는 데이터가 누락되어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번 IP Watchdog 기사에 대해 중국에서조차 비판이 있는데, 지난 11월 20일 중국의 기업특허관찰(企业专利观察)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 두 중국 배터리 업체간 소송은 최근 몇 년 간 지속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CATL은 CALB를 상대로 2024년 7월에도 또다른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고, CALB도 이에 맞대응하여 2024년 10월 18일 호북성 고급인민법원과 강소성 고급인민법원에 CN202210155731.8, CN202210302091.9, CN201820895186.5 및 CN202222803519.6. 등 4건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10억 7백만 위안(한화 1,967억8,794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침해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중국 배터리 기업인 두 회사간에 치열한 특허쟁송이 중국에서만이 아니어서, 2021년 11월 미국에서도 CALB가 CATL의 미국 특허(특허번호 10,930,932)에 대해 무효심판을 제기하는 등 두 회사간 국경을 넘은 치열한 법적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있을 소송의 진행에 따라 또다른 데이터 조작이나 허위 데이터를 이용한 CATL의 특허가 더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ATL이 특허를 등록받는 과정에서 행한 기만적인 행위는, 허위의 데이터와 조작된 수치를 제공하여도 등록 후에 무효가 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드러난 것은 CATL이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 또다른 중국기업들이 비슷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혁신기업, 지식재산제도 활용해야
과거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기술은 우리가 중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비호 아래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시장을 중국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와 기업은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물리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 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수많은 특허권을 우리 기업들은 가지고 있었지만, 중국의 후발업체들을 견제하고 무분별한 기술탈취나 인력의 유출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 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은 어떤 분야이든 중국 기업들이 단기간에 한국의 기술 수순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눈부실수록 소위 패스트 팔로우는 더욱 빠른 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시대인데, 우리가 중국보다 기술적으로 2년을 앞서 있네, 5년을 앞서 있네라는 말은 지금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다. 바로 내년이 지나고 나면 이차전지 기술력에서 CATL 등 중국업체들이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을 능가했다고 자부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AI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검색해서 정리해 주고, 코딩도 해주고, 이러한 것들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 어디나 뿌려주는 초연결, 초융합, 초지능의 시대에 (물론 기술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진정한 초격차 기술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의 1등 기술이 오늘은 평범한 기술이 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먼저 앞선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자신의 기술을 적절히 보호하는 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진정한 혁신자들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지식재산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그랬듯, 태양광 업계에서 그랬듯, 소극적이고 일관되지 않은 정부의 정책 및 지원과 더불어,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기업들에게 과감한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삼아 견제구를 지속적으로 날려야 한다.

이를 통해 특허에 대한 로열티를 받아내고, 수익으로 연결하는 전략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CDMA 칩에 대한 특허권으로 퀄컴은 지난 2023년 53억 달러(한화 7조 5,859억원)의 수입을 얻었고, 2030년에는 70억 달러(한화 10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도 퀄컴 같은 회사를 가져야 하며, 초연결 시대에 기술적 우위로만 안주하면 곧바로 후발 주자들에게 따라 잡히고, 결국 시장을 잃게 되는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겠다.

CATL이나 BYD 등의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약진과 전기차 캐즘의 악조건 속에서 우리 배터리 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LG에너지 솔루션은 지난 2002년 세계 최초로 자동차에 대형 이차전지를 탑재하여 성공적인 상용화를 한 기업으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선도해 왔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 LG에너지 솔루션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을 활용하여 라이선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허권이라는 무형재산을 이용하여 수익화를 꾀하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움직임이 큰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그래야 특허가 막대한 가치가 있는 무형자산으로 인식되는 한편,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의 공세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허라는 무형의 자산을 활용한 수익화를 통해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주체가 존중받는 사회와 국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글_ 박병욱 IP코드 대표(前 한국표준협회 산업표준원장)]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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