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안] 숨겨진 축복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 ‘그녀에게’

2024-10-0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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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지도 않고 쓰는 영화 이야기...그래도 원작은 읽었으니까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시골에 살면 좋지 않은 것 중 한 가지는 독립 영화를 관람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 <그녀에게>라는 영화에 관심이 갔으나, 기자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의 그 어느 영화관에서도 이 영화가 상영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녀에게>는 원작 도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였고, 요즘 잘 발달한 IT 기술 덕에 그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으며, 이틀 만에 후다닥 끝낼 수 있었다. 류승연 작가가 술술 넘어가는 문체로 글을 작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들이 기자에게도 친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미지=네이버 영화]

이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은 류승연 작가가 10년째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겪고 느낀 일들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기록들을 모아둔 것으로, 일반인들이라면 낯설게 느껴지는 재활 훈련 코스 이름이라든가 병명, 행정 절차 등이 여기 저기 언급된다. 아무리 문체가 쉽고 편해도 이런 용어들은 어지간하면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 많을 것이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면 평지 드라이브와 같은 독서를 하다가 중간중간 도로방지턱을 밟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그렇지 않았다. 최근 류승연 작가와 비슷한 삶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 지나고 보면 그게 다 묘미이고, 삶이라는 것의 고유한 특성 그 자체임을 인정할 수 있지만, 그 방향 전환의 순간에는 쓰나미에 압도되는 듯하다. 류승연 작가의 글은 그 쓰나미를 어느 정도 멀리 보내고 나서 뒤돌아 볼 수 있게 된 사람의 입장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담할 수 있고, 때로는 유머가 톡톡 튀기까지 한다. 어쩌면 이러한 삶을 살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게 이 부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런 삶속에서 여유롭고 태연할 수가 있을까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다른 도시로까지 운전해서 가지 않는 이상 <그녀에게>라는 영화를 볼 수 없어 인터넷의 리뷰들을 좀 찾아봤다. 영화가 막 슬프고 눈물을 쥐어 짜내는 ‘최루탄┖ 식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말들이 있었다. 담담하다는 표현도 나왔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리뷰들이 사실이라면 이상철 감독이 원작의 톤을 잘 살려낸 듯하다. 기자였어도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영화 시나리오를 구성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게 이 작품의 핵심이니까.

장애인과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았을 때의 거리에서 장애인이나 그 보호자들을 볼 때면 제일 먼저 측은한 마음이 들곤 했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전쟁 같을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무작정 불쌍했다. 어쩐지 그런 가족들은 인적 드문 동네에서, 대낮에도 컴컴한 암막 커튼을 드리우고 살 것만 같았다. 언제나 얼굴은 피곤에 물들어 있고, 노부모는 그 버거운 세월 동안 마모된 관절들에 파스만 겨우 붙이고 불편한 아이를 돌보느라 스스로의 삶은 내팽겨칠 것 같았다. 신음과 한숨, 울음이 가득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삶을 혼자 상상하곤 했다. 그래서 불쌍했었고, 그래서 기자 혼자 마음이 아파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그 삶을 1년 넘게 살아보니(류승연 작가의 10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길이이지만) 그러한 맹목적인 동정심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류승연 작가가 책 내내 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 아이가 ‘예뻐 죽겠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뽀뽀를 참을 수 없고, 자기도 모르게 달려가 부둥켜 안고 있다고 했다. 엄마만 그런 게 아니라 아빠도 그렇고 누나도 그랬단다. 그 아이가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래서 심지어 온 가족이 사랑을 덜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나마도 성공하지 못한 듯한 뉘앙스였다. 직접 경험해보니, 이건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더 나아가 피붙이들의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나 겉잡을 수 없이 증폭되더라.

한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게 되면 온 가족의 삶이 통째로 그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힘에 부쳐 관절들이 비명을 지르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도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이건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 가족은 류승연 씨가 그려내듯 어느 덧 매일 축제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평범한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들,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런 과정이 있는 줄 조차 몰랐던 것들이 우리에게는 하나도 거를 것 없이 환호와 박수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노래에 맞춰 팔을 잠시 흔들어도, 드디어 연지곤지에 성공해도, 네 발로 기는 속도가 붙을 때마다, 이미 뛰어다녀야 할 시기이지만 소파를 잡고 겨우 일어섰을 때에도, 우리 가족은 난리법석을 떨고 자축하며 맛있는 것을 사먹기도 한다. 그 성공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밤새 보고 또 보며 웃는다. 육아가 이렇게 기쁜 것이었나, 이미 두 아이를 키워봤는데도 다시 가슴 가득 느낀다. <사양합니다>에 자주 등장하는 말 ‘축복’이 정말로 자기 최면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건 외부인들이 바깥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숨겨진 축복이다.

다만 그 축복은 가족들 안에서만 느껴지는 것이고, 사회적 현실은 녹록치 않다. 기자가 영화를 보지 못하고 이 졸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그런 녹록치 않은 현실을 말한다. 원작 <사양합니다>라는 책에는 ‘편견이 깨지고 눈빛이 바뀌는 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그런 목적으로 쓰여진 글로 만든 영화를 제대로 관람조차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눈빛이 얼마나 깨지고 바뀔 것인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방의 문제라 하기에는 서울도 상영관의 수나 상영 시간이 참 애매하던데 말이다.

얼마 전 기자가 아이와 재활을 하러 다니는 서울의 큰 어린이 병원의 1층 로비에서는 전시회가 두어 달 동안 열렸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매일 세 줄씩 일기를 써서 전시 주최 측에 냈고, 주최측은 그것을 모아서 전시회를 마련하고, 아마 추후 책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 안내 문구 중에는 “장애 아이들을 키우며 느낀 힘든 점들을 나누고 세상에도 알려주어요”라는 내용의 표현이 있었는데, 이 역시 ‘편견이 깨지고 눈빛이 바뀌는 책’이라는 <사양합니다>의 부제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회의감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찾지 않을 이런 병원의 로비에서 열리는 전시회가, 장애인에 대해 세상에 얼마나 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전시를 근처 대형 쇼핑몰에서 했으면 그런 면에서는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문득 보안 업계도 비슷한 쳇바퀴에 갇혀 있다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보안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보안 업계가 계속해서 설파하지만, 그 목소리가 보안 업계 안에서만 울려퍼지는 건 아닐까. 그저 ‘중요하다’는 것 외에도 일반인들과 나누면 재미있을 보안 분야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그냥 우리끼리 우리 안에서만 소비하고 그치고 있다는 게 깨달아진다. 왜 보안 칼럼은 보안 매체에만 실려야 하는 걸까, 슈나이어 정도는 되어야 겨우 CNN과 같은 대형 매체에서 기고글을 받아주는데, 일반인들이 보안에 대해 접할 기회라는 건 사실상 전무한 것 아닐까.

그러니 해킹 사고가 사람들을 보안으로 잡아 끌 유일한 방법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사고를 한 번쯤 당해보면 그제야 보안의 그 많은 메시지들이 귀에 담기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보안 업계가 축적해 온 경고나 이야기나 통찰이나 지혜가 찻잔 속 폭풍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해킹 사고는 계속 그렇게 재앙의 탈을 쓴 축복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해커들이 우리의 부실한 현실을 더 단단한 미래로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가 되는 건데, 각종 IT 기술로 점철된 미래가 더 안정적이며 강력한 보안을 바탕에 둘 수만 있게 된다면 어떠하랴 싶기도 하다.

다만 해커들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려면, 매번 발생하는 사고에 성심성의껏 대응해 우리 역시 단련될 수 있어야 한다. 관절이 부서져도 아픈 아이를 축제처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장애가 축복처럼 느껴지듯, 여러 해킹 공격을 통해 단련될 수 있을 때 보안 업계는 그들의 활개침을 미래로 가는 단계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러 단계를 밟아 드디어 꼭대기에 이르러야 하는 이들은, 각 계단을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살며시 즈려 밟았을 뿐이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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