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의 현재 난제 둘 : 불안정성과 탈중앙화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낸시랭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맞아, 낸시랭이란 인물이 있었다. 기자에게 낸시랭 씨는 ‘굉장히 난해한 인물’이었지만, 우연히 강남의 길거리에서 실제 모습을 보고는 ‘눈에 띄는 미인’이 됐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뉴스들에서 보게 되니 뭐가 그를 그렇게 난해하게 만들었는지, 실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고양이’만 떠오른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미지 = iclickart]
그래서 낸시랭 씨의 그 마스코트 같았던 고양이부터 찾아봤다. 이름이 코코샤넬이더라. 맞아. 찾는 와중에 고양이를 어깨에 얹은 세종대왕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그림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기억 저 구석에 있던 작품들이다. 순간, 내가 왜 낸시랭이란 인물을 난해하다고 여겼는지도 덩달아 기억났다. 바로 이 작품들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또 다시 보게 된 낸시랭 씨의 사진들을 보며 그를 직접 봤던 강남의 거리 풍경마저 생각났다. 모조 고양이 한 마리 찾으려다 한창 낸시랭 씨가 ‘핫’했던 시절의 개인적인 기억들이 다 떠올라버린 것이다.
최근 IT 보안 업계에도 ‘고양이’가 기억 혹은 학습의 매개 역할을 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블록체인 게임, 크립토키티(CryptoKitties)다. 마치 그 옛날 다마고치 게임처럼 블록체인 시스템 안에서 가상의 고양이를 기르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다만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를 수집하는 것도 가능하고, 그 여러 마리를 교배시켜 새로운 고양이를 얻어낼 수도 있다. 올해 유행했던 포켓몬과도 비슷하다.
크립토키티를 개발한 액시옴젠(AxiomZen)을 비롯하여, 이 새롭고도 구식인 게임에 대한 이더리움 블록체인 사용자들의 공식적인 ‘기대감’은 “귀여운 전자 고양이를 게임처럼 육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더리움 혹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더 나은 이해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었다. 놀면서 공부하고, 뭐 그런 거. 음악 들으면서 책 읽는 뭐 그런 거. 영화 보면서 기사 쓰는 뭐 그런 거. 눈 가리고 아웅, 아니, 야옹이던가.
그런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크립토키티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활발하게 이 게임에 참여했는지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느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이 고양이들의 거래량이 1천 2백만 달러를 초과했다. 얻기 힘든 종은 10만불 이상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거 원화로 대충 계산해 보면 억 단위 돈이다. 실재하지 않는 고양이 하나가 억이라니, 한국 ‘린저씨’ 같은 부류들이 이더리움 네트워크 구석구석에 또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나 활발히 게임에 참여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 기술과 좀 더 친해지지 않았을까? 물론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뭔가를 저장하고, 사람들과 거래하는 방법 자체에는 익숙해졌을 것이다. 스마트 계약서라든가, 거래 수수료, 가스비에 대한 개념도 익혔을 것이다.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방법도 고양이들이 가르쳐준 것 중 하나다. 물론 그것이 블록체인의 전부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디지털 자산이 빈곤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야 한다. ‘컨트롤 C, 컨트롤 V’만 하면 원본과 똑같은 것을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디지털 자산인데, 블록체인 환경으로 가면 이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탐나는 고양이를 가지려면 마우스 우클릭을 하거나 복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지불해야 한다. 모두가 장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복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이 가상의 자산일지라도 고유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디지털 자산이 ‘고유해질 수 있다’는 개념은 블록체인 환경이 점점 더 확산될수록 일반 사용자들이 장착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쉽게 복제가 안 되는 디지털 환경이기 때문에 ‘탈중앙화’가 의미를 갖게 되고, 오랜 논란거리였던 ‘정보의 소유권’ 문제가 새롭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쉬운 복제와 유통으로 죄다 망가졌던 질서가 어쩌면 블록체인으로 다시 잡힐지 모르는데, 그러려면 참여자가 될 일반인들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개념이 받쳐줘야 한다. 비싼 고양이를 통해 이더리움 사용자들이 이걸 좀 느낄 수 있었을까?
하지만 크립토키티를 통해서 드러난 가장 심각한 블록체인의 문제점은 ‘탈중앙화’라는 본질이 현실로 구현됐을 때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크립토키티 거래가 이더리움 트래픽의 11%를 차지했다. 때문에 다른 거래들은 극도로 느려졌다. 외신에 따르면 한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ICO 날짜를 이 예고 없이 느려진 트래픽 때문에 미뤄야 했다고 한다. 모두가 주인인 네트워크, 맡은 포지션 없는 동네 축구처럼 우루루 공만 쫓아다녀도 되는 네트워크이니, 불안정성의 표본이 됐다.
게다가 디지털 고양이 한 마리가 억 단위로까지 거래되는 게 정말 블록체인에 대한 학습 열망 때문이었을까? 자연스러운 ‘수요와 공급’ 때문에 가상의 고양이 가격이 단 시간에 그렇게 껑충 뛴 걸까? 결국 투기로 변질됐다는 결론밖에 내릴 수가 없다.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활발한 적용 사례인 암호화폐(비트코인 등)도 똑같지 않은가. 모두가 주인이 되어 아무런 감시나 규제 없이 자유롭게 만들어가는 세상 – 탈중앙화-이 실현 가능이나 한 걸까. 블록체인이 주류 네트워크가 되려면 반드시 답하고 넘어가야 하는 질문이다. 우린 탈중앙화를 누릴 만한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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