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김형중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최근 중국이 가장 먼저 ICO를 금지한데 이어 한국 정부도 ICO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암호(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 모집 방법인 ICO(Initial Coin Offering)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근거는 단순하면서 명쾌하다. 소비자 보호가 규제의 명분이다. 화폐를 매개로 유사수신행위나 다단계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단계는 돈이 된다 싶으면 뭐든 다 걸고 들어가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고 다단계 대상품목의 유통이나 생산을 전면 금지할 수 없다. 더군다나 암호화폐나 ICO는 아직 개념 규정도 제대로 되지 않아 상품인지 화폐인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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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러한데 암호화폐나 ICO 분야에 대해 규제부터 할 일이 아니다. 블록체인을 소개하는 특집 방송은 수없이 봤지만 정작 블록체인을 가장 잘 활용하는 암호화폐에 대한 소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암호화폐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는 전문기관이 하나라도 있으면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피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정부가 블록체인 연구에 천문학적 금액을 배정하려고 하는데, 정작 블록체인 연구의 핵심이 바로 현재 규제를 받고 있는 암호화폐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처리속도를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샤딩, 스테이트 채널, 플라즈마 기술은 모두 이더리움에서 나온 용어들이다. 컨센서스를 위해 사용하는 스텔라 프로토콜은 리플 코인이나 스텔라 코인과 연관이 있다.
규제를 논할 때는 기술의 장래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BIS가 최근 보고서를 냈는데 그 제목이 CBCC, 즉 중앙은행 암호화폐다. 소매금융용 코인으로 페드코인, 도매금융용 코인으로서 캐드코인을 소개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에스토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갸흐드가 최근 열린 콘퍼런스에서 암호화폐를 자세히 언급하면서 디지털 버전의 특별인출권(SDR)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언론들은 조만간 IMF 코인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중앙은행이 암호화폐를 발행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예감할 수 있다. 학자의 관점에서 암호화폐는 경이로운 이론들의 보고다.
ICO도 마찬가지다. ICO를 전면 금지하기보다 지켜보며 규제를 해도 늦지 않다. “기술·용어 등에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할 방침”이라는 한국의 발표는 성급한 감이 없지 않다. 미국은 선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며, 증권법을 따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태다. 캐나다, 싱가포르 등도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하우이(Howey) 기준에 근거해 DAO 토큰은 증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1933년 증권법 5장은 모든 증권의 공모와 판매에 등록을 요구한다. 그런데 등록에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등록을 규제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등록이 면제될 수 있지만 면제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증권으로 판명이 되면 우선 등록하고 이어 공모절차를 따르면 된다.
SEC의 보고서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모든 토큰이나 코인을 증권이라고 판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우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토큰이나 코인은 증권으로 보지 않는다. 이 경우 증권법의 관할 밖에 놓이게 된다.
채권처럼 부채가 되는 것도 아니고 주식처럼 경영권을 넘기는 것도 아니므로 누구나 무분별하게 백서 하나 들고 ICO를 남발하는 것은 마땅히 규제해야 한다. 그런데 싹부터 잘라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ICO가 악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미국의 사례를 본받아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령을 활용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기존 법령들을 손봐야 한다. SEC처럼 하우이 기준 또는 새로운 환경에 더 적합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즉, 발행할 토큰이 증권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판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선도적으로 증권형 토큰 등록절차를 마련하면 좋다. ICO에 필요한 간략한 서식과 절차를 정해 공시하면 된다. 등록절차를 통해 옥석이 가려질 것으로 본다. 필요하다면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캐나다가 최근 규제 하의 ICO를 실험할 수 있도록 샌드박스 사례 1건을 허용했다.
스위스를 ICO의 적지로 여기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증권 법령이 별도로 없고, 스위스 금융시장감독기구(FINMA)가 이더리움을 증권으로 분류하지 않았으며,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운용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 절대 공짜 점심이 없다. 스위스에서 ICO를 실시하기 전에 재단을 만드는 데 그 과정에서 드는 비용과 시간을 감안하면 등록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적어도 한 명 이상의 현지인을 재단 위원으로 임명해야 하는데, 연봉이 10만 유로 이상이다. 사실 은행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는데, 설립자가 스위스 국민이 아니면 그 절차가 복잡하다.

▲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김형중 교수
[사진=김형중 교수]
그래서 역으로 한국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금융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재단을 허용하면 그 재단은 한국에 사무실을 두어야 하고, 적어도 한 명 이상의 국민을 고용해야 하며, 국내 금융기관과 거래를 해야 한다. 또한, 한국에 세금을 내고, 재단은 감사를 받아야 한다. 스위스에서 다 하고 있는 일이다.
현재의 ICO 사기 피해는 다단계 영업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전문투자사업자를 제도화하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투자자도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로 구분해 탄력적으로 규제함으로써 더 창의적인 투자모델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증권형이 아닌 코인형도 전문금융투자기관을 통해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피해자 보호가 훨씬 쉬워진다.
이런 제도를 적극 활용해 우량 ICO를 준비하는 해외 기업이나 재단을 한국에 유치해야 한다. 한국에서 공모하는 재단의 토큰에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면 그게 적어도 한국의 투자자 보호의 차선책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현재 많은 국내 투자자들이 스위스 ICO에 참여하고 있고, 국내 기업도 스위스 재단 이름으로 ICO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가보지 않은 길을 눈앞에 두고 한국이 중국과 함께 세계적인 조명을 받으며 적기조례 같은 규제를 선도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글_ 김형중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khj-@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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