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성기노 기자] 지난 8월 16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핵잠수함의 도입 문제는 검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정권 2인자 국무총리의 공식 워딩이라는 점에서 군 관계자들도 상당히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핵잠수함은 핵을 무기가 아닌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핵확산금지조약’이나 ‘한미 원자력 협정’에 위배될 소지는 적다는 해석에 따른 것이다. 이는 대화로 북핵 국면을 풀어가려는 현 정권의 고육지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도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나오는 등 북한 핵 위협에 우리도 안보상 최소한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핵잠수함 도입’이라는 일종의 타협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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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핵잠수함 도입 의지는 이낙연 총리에게서 처음 나온 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당시 “핵잠수함은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고 이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며, 송영무 국방부 장관도 지난달 3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핵잠수함 도입을 검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현 정권 핵심부가 핵잠수함 도입에 강한 의지를 나타냄에 따라 우리가 만약 핵잠수함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형태로 되며, 그것이 한반도 군사정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현재 우리가 보유중인 디젤 잠수함으로는 핵무기를 탑재한 북한 잠수함 추적이 불가능하다. 기차로 말하자면 핵잠수함이 KTX라면 디젤 잠수함은 완행열차다. 디젤 잠수함은 하루 2∼3회 스노클(축전지 충전)이 불가피한데 스노클 때는 적 잠수함에 탐지돼 수중 잠수함 추적 작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핵잠수함은 원자로의 핵에너지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1회 핵연료 충전으로 10년 동안 쓸 수 있다). 핵잠수함은 내부에 이중소음차단벽을 설치해 소음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디젤 잠수함은 디젤엔진 소리 등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과거 핵잠수함은 소음문제가 있었지만 현재 기술적으로 많이 보완됐다. 오히려 중속이상의 속력에서는 디젤잠수함보다 소음이 적은 수준이다. 속도에서도 차이가 난다. 디젤 잠수함은 12노트(시속 22km) 이하의 속도를 내지만 핵잠수함은 20노트(시속 37km) 이상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잠수함이 해군 기동함대를 호위할 때 고속으로 항해할 경우 핵잠수함이 아니면 빠른 기동함대를 따라잡을 수 없다. 핵잠수함은 우리 해군의 전력 완전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군 기술력의 총화인 핵잠수함을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다. 제반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현재 핵잠수함을 보유 중인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인도 등이다. 이들은 모두 핵무기 보유국이다. ‘핵’에 관한 기술력이 상당히 축적돼 있다. 한국 또한 원자력발전소가 많기 때문에 ‘핵’ 기술력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핵잠수함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시절 비밀리에 진행되던 해군 핵추진사업(362사업)의 핵추진연구기관 팀장을 맡았던 김시환 글로벌원자력전략연구소장은 최근 한 언론에 “2004년 당시 핵추진잠수함용 원자로 기본 설계를 마쳤다. 지도자의 의지만 있다면 국내 기술력만으로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군의 핵잠수함 개발은 지난 2003년 5월 초 조영길 국방부장관이 ‘자주국방 비전보고’ 석상에서 기존의 300t급 중잠수함 건조계획(SSU)을 핵추진 잠수함 건조사업(SSX)으로 변경해 조기에 획득하라고 지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사업은 ‘362사업’이라고 불렀다.
해군은 2003년 6월 진해의 해군 조함단 내에 핵잠수함 전담부서인 362사업단을 만들고 단장에 209급 잠수함 도입을 담당했던 문근식 대령을 임명했다. 사업단은 설계 및 건조, 무장과 관련된 각종 현안 검토, 작전요구성능(ROC) 수립 등을 담당했고, 국방과학연구소(ADD)에 박모 박사를 팀장으로 하는 잠수함 선체설계팀이 각각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산하에는 앞서의 김시환 박사를 팀장으로 한 핵추진기관 연구팀(일명 진해팀)이 사업을 개시했다.
그러나 2004년 1월 26일 모 일간지가 ‘우리 군이 4000t급 핵추진 잠수함을 2007년부터 건조에 착수해, 2012년부터 2~3년 간격으로 ○○척을 실전배치한다’는 보도를 했다. 국방부와 해군은 2003년 5월부터 핵잠수함 독자 건조를 검토해 왔으며,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개념설계를 마친 후 2007년부터 건조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2004년 12월 말 362사업단은 갑작스레 해체됐다. 해군의 강력한 의지 부족과 육군과의 아파치롱보 공격헬기 도입사업(사업비 1조8000억 원)을 두고 벌였던 파워게임에서 밀렸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 2기에 속하는 문재인 정부는 다시 핵잠수함 개발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하지만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돈과 기술력 모두 해당된다. 일단 1척 건조에 1조 6천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편성하기가 쉽지 않다. 핵잠수함을 운용하는 제반적인 환경까지 계산하면 그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간다. 정부의 ‘예산’ 편성에 대한 강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더구나 핵잠수함 도입은 최소 5~7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 과제인데 당장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급성을 고려할 때 적절한 예산편성인지도 의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기술력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핵발전소를 건설·운용한 과학기술이 있지만 핵원료를 핵잠수함 동력원으로 사용할 만큼의 농축 기술이 없는 데다 선진국이 이 농축 기술을 전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기술을 자체 개발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기술력이 있다고 해도 핵연료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핵잠수함 원자로는 우라늄-235 비율이 20∼90%인 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쓰는데 한미 원자력협정 때문에 우리는 농축우라늄 자체를 군사적으로 쓸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지난 4월 대선 때 “미국과 협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돈과 기술력 모두 갖추었다고 해도 결국 미국의 동의 없이는 우리는 핵잠수함을 띄울 수 없다는 얘기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3중막을 뚫고 핵잠수함을 진수시킬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kino@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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