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고개를 드는 세계의 우경화와 민족주의 반영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도입부에는 당시 공권력에 눌려 조용히 살아야만 했던 나라의 분위기가 이렇게 묘사된다. “질식할 것만 같은 거짓 평화.” 굳이 독재정치 상황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아무도 반목하지 않고, 아무도 다투지 않으며, 아무런 대립도, 반대도 없는 평온한 세상은, 과연 상상만으로도 질식할 거 같다. 반대로, 한결같이 따듯한 스마일을 유지하며 반대 의견도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며 매 사안 절충안을 찾아가는 모습은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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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만리장성입니다
사실상 세계 대통령이라고 하는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서 지난 8년 동안 자기 철학을 열심히 펼친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나 화합과 용인으로 다툼과 차별을 없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각종 언론의 찬양과 그가 만들어간 분위기는 미국 현지인 절반 이상에게 있어 “질식할 것만 같은 거짓”이었던 듯 하다. 오바마의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도 완전히 반대 색깔을 가진 자가 국민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간접 민주주의 허점으로 인해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느니, 러시아가 해킹 기술로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느니 하는 루머들도 있다. 아직도 세계 메이저 언론은 트럼프를 조롱하는 기사를 연일 게재하고 있다. 그의 취임식이 평화롭게 지나가지 않을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만리장성을 약속하다
트럼프가 이토록 환영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경선을 벌일 때 했던 발언들이, 오바마 시대를 거쳐 온 사람들에게 굉장히 생경하고 무례하며 때론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말 중 이민자들을 차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는 “미국식 만리장성 건축” 발언이 있었다. 멕시코로부터 도망 나와 자유와 풍요의 땅 미국을 찾기 위해 불법으로 국경선을 건너는 이들을 막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선에 거대한 담벼락을 치겠다는 내용이었다. 뜨거운 반응이 즉각 웹을 달구었다. 정확한 워딩들이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 중 하나였다.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살 기회를 허락하지 않겠다니!’, ‘이민자를 차별에 반대한다!’, 증오에 반대한다!’
이민자라고 하면 즉각 불쌍하고 소외된 사람으로 비춰지는 현상이나, 현대 국가들이 이민자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식으로 변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않고, ‘오바마식 타성’에 의거해 감정을 거칠게 쏟아내는 이런 네티즌들의 반응에 트럼프의 반응은 간단했다. “나라에서 승인 안 해주면 내 돈으로 할 거다.” 정말 자기 돈으로 하지야 않겠지만, 일단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되었다. 국경과 출신, 인종의 벽을 넘어 불쌍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겨주지는 못할망정, 미국만 잘 살 먹고 잘 살 거라는 이 속 좁은 발상은 정말 트럼프의 머리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일까?
한편, 유럽에서는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시선을 유럽으로 돌려보자. 유럽은 꽤나 오래 전부터 이민자 문제를 앓아왔던 곳이며, 한 시대의 기조가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나온 발상이 미국이라는 스피커를 통해 광고되어 온 세상으로 퍼지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이민자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이 필수 덕목처럼 굳어지게 된 것도 애초에 유럽에서부터였다. 유럽 이민자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크리스토퍼 콜드웰(Christopher Caldwell) 프리랜스 기자는 이에 대해 “죄책감에서 발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이 세계 여러 대륙에 잔혹한 방법으로 식민지를 건설했고, 단물을 쪽쪽 빨아 먹고 난 후유증을 제3세계 국민들이 아직도 겪고 있다는 건 일반 상식이다. 거기다가 독일은 세계2차대전 당시 한 민족을 거의 말살시키기까지 했다. “그래서 독일이 특히 난민 수용 및 이민자 받아들이기에 적극적인 것”이다.
원래 죄책감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어떻게든 용서를 받고 싶기 때문에(혹은 스스로를 용서하고 싶기 때문에)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2차대전 때문에 온 대륙이 쑥대밭이 되었는데, 복구할 사람이 부족한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안으로는 죄책감이 파고들고, 겉으로는 경제문제가 심각하니, 유럽 정부는 당시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콜드웰 기자는 2009년의 저서 『유럽의 혁명을 다시 생각하다(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Europe』에서 이를 두고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너무 시급하게 해결하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미래를 빌려다 쓴 해결책 때문에 더 큰 부작용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그건 바로 유럽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과 유럽이 줄줄이 도산하기 직전에 놓였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사라지는 유럽 – 인구 문제와 테러
유럽은 좁은 대륙 안에 여러 나라가 따닥따닥 붙어 있어 이민이라는 게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웃 나라들마다 다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인이 옆 나라 독일로 간다고 해서 사회적인 술렁임이 일지는 않았다. 큰 줄기에서 보면 기독교라는 종교도 비슷하고, 문화도 크게 이질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다른 대륙에서 전혀 다른 생김새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대규모로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기독교와 1400년 동안 반목해온 무슬림이라는 종교였다.
무슬림이 유럽에서 문제가 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다. 무슬림 신자들은 국가의 법보다 무슬림의 교리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아이를 조금 낳는 걸 선호하는 유럽 원주민들에 비해 다산하는 무슬림 이민자들의 수가 훨씬 빨리 불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서유럽에는 약 1천 7백만 명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 프랑스에 5백만, 독일에 4백만, 영국에 2백만 등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 젊은이다. 프랑스에서 ‘젊은이들’이라고 하면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 후예들을 가리킨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테러 사건의 주범이 된다.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 유럽 일반인들에게 “정부와 엘리트들은 ‘다문화주의’를 선전하기 시작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럽에서 진행된 한 통계에서 이민 정책이 유럽에 득이 되었다고 느끼는 이는 19%에 불과했고, 유럽 전체의 57%, 프랑스인 73%, 영국인 70%가 “이민자가 너무 많다”고 답했지만 다문화주의라는 새 시대의 도덕만이 반복해서 강림했을 뿐이었다. 이민자 혹은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가시화된 것이 작년에 있었던 브렉시트 사태이며, 트럼프 당선이다. 정부들이 이런 시민의 마음을 몰라줬거나, 모른 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 뿌리 깊은 죄책감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였다.
거칠고 단시안적인 경제 봉합책, 이민 장려
유럽 각국 정부의 미션은 죄책감 해결 외에 한 가지 더 있었는데, 바로 큰 전쟁으로 무너진 경제를 다시 살리는 것이었다. 이민자를 마구 받아들이던 때, 외국인들은 환영받는 일꾼이었다. 부족한 일손을 메워주는 고마운 이이며 친구였다. 대부분 사정이 더 안 좋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 역시 돈도 주고 환영도 해주는 외국에 감사했다. 쌍방의 감격이 감성적으로는 매우 아름답고 훈훈하기 그지없으나, 경제적으로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이민자들에게 감사할 수 있었던 건 ‘모자란 일손을 채워주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주고, 그런 후에는 너네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눌러 앉아 떡고물을 같이 나눠 먹을 줄 몰랐거나 잊어버렸던 것이다. 이민자들 역시 주어진 책임만 다하면 그 환영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의 땅이든 어쨌든 내 손으로 일군 것에 대한 결실을 포기 및 양보하고 얌전히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노후를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이민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유럽을 다시 일으키긴 했지만, 대신 적지 않은 수의 부양가족을 낳고 길러냈다. 이민자를 ‘임시적인 노동력 충전’으로 생각하고 열렬히 받아들였는데, 좀 지나고 보니 장기 부양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부 국가에선 부랴부랴 정책을 바꾸어 단기 이민자만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새로운 인력을 반복해서 적응시켜야 하는 비용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부를 압박해 단기 이민자를 장기 이민자로 스스로 바꾸었다.
그러자 사회적 비용이 들기 시작했다. 이민자들이 비교적 싼 노동력으로 건물과 집들을 일으켜줌으로써, 겉으로 보기엔 나라의 경제가 활력을 찾는 듯 했으나, 실상은 그 건물과 집들에 빠르게 불어나는 이민자들이 들어찼다. 다문화정책을 펼치는 정부는 이민자들을 배려해 거리 표지판에 그들의 언어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이민 2세, 3세들이 일으키는 사업들은 대부분 자기 동족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독일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라는 지역에서 가장 큰 업체는 오거투르크라는 여행사인데, 이 여행사는 대부분 터키 여행 상품만을 다룬다. 고객들도 대부분 터키 이민자들이다. 이런 회사가 성장하는 건 국가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밖에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이민 정책의 허점들이 최근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어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다문화주의가 단시일 안에 사라지지야 않겠지만, 그 허울이 점점 벗겨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주요 유럽 국가들의 국경 보안
최근 영국의 수상 테레사 메이(Theresa May)는 “브렉시트 투표로 유럽연합에서 완전히 탈퇴하게 된다면 이민자 관리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골라내겠다는 뜻이며,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우연이나 뜻밖이 아니라, 이민자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정서가 반영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여기에, 작년 12월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국경 개방을 위해 맺은 솅겐협정(Schengen Agreement)의 다섯 개 국가가 국경 검문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덴마크가 바로 이 나라들인데,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의 입장은 강경해 이런 식의 국경 강화 조치가 최근의 난민사태만을 의식한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이 중 난민의 천국인 것처럼 앞장서서 사람들을 받아들인 독일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재미있는데, 이는 지난 해 말에 발생한 베를린 테러 사건의 영향이 크다. 메르켈 총리조차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독일 사회가 느끼는 위협감이 너무 높아 국경 검문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다시 미국으로
트럼프 당선에 힘입어 그 동안 오바마의 ‘업적’에 역차별을 받아왔던 사례들이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미국 내 거주하는 무슬림들을 배려하기 위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미국 내 외국 학생들이 불편해 할까봐 일부 학교에서는 미국 국기를 게양하지 않기로 하고, 배달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종교 때문에 술을 배달하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을 해고시켰더니 종교 탄압이라며 무시무시한 벌금형을 내리는 등 일반 미국인으로서는 “질식할 것 같은” 내용이다. 유럽인들이 “유럽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지점이 미국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민자 문제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트럼프의 만리장성은 이민자 전체를 향한 적대감이 아니라 ‘불법 이민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폭스뉴스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정말로 거대한 벽이 세워지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기사를 내며 “가상의 벽이 세워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예측했다. 가상의 벽이란 “감시 카메라, 센서 등 국경 감시 및 검문 강화를 위한 장비들로 구성된 통과선으로 이미 10년 전부터 논의되어 왔지만 진행이 지지부진 되었던 것”이다. 국경 감시대의 활동을 원활케 해주는 각종 기술 장비와 통신 장비, 입출국 관련 추적 기술 또한 국경선에 추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언급됐다. 가디언지는 멕시코 태생이지만 미국 국적을 취득해 현재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센트 파코(Vicente Paco)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길게 실으며 국경선과 이민자, 애국주의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전 같았으면 뉴스거리가 아닐 일”이라고 표현하며 트럼프의 당선과 그가 공약한 만리장성이 단지 국경 보안이나 불법 이민자 문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걸 드러냈다.
무엇이 국경을 통과하고 있는가
국경 문제는 이민자 문제와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얽혀있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세계는 이민 혹은 이민자에 대해 호의적인 편이었다. 지금 지구 상에 살아남아 있어 여론을 만들고 시대의 기조를 전파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2차대전 이후 출생자들이다. 나면서부터 이민의 좋은 점과 윤리적인 면을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이민과 이주의 자유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국경이 예전만큼 삼엄하게 지켜질 필요는 없었다. 예외적인 국가가 물론 존재해오고 있지만, 보편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십 수 년 전 비자 받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쉬웠다.
하지만 이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민의 좋은 점과 윤리적인 면에 대한 반론이 나오고 있다. 이주의 자유가 갑자기 모든 헌법에서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리라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현지 문화와 법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다문화주의의 허상이 엷어지는 자리에, 신식 엘리티즘이 들어서는 것도 가능하게 느껴진다. 고향을 떠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보다, 귀향을 위해 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세워질지 안 세워질지 모르겠지만 트럼프의 만리장성은 그 존재가 언급된 순간부터 트럼프 한 사람의 성향을 넘어 시대 전체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차갑던 냉전시대의 소련을 비틀즈가 흔들어댔던 것처럼(How the Beatles Rocked the Kremlin)”, 국경 보안 검문대를 통과하고 있는 건 이민자가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는 생각이나 문화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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