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무서가 지겨워 FBI 입부.
2. 개인정보 밀매단 포착 후 감청.
3. 해킹을 사업적으로 행했던 단체의 최후.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마이클 모리스(Michael Morris)는 자기가 하는 일이 지겨웠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세무사로 활동하며 고액 연봉을 받고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참다 못해 일을 그만두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FBI에 들어갔다. 세무사 경력을 살려 FBI에서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를 담당했다. 받는 돈은 적었지만 일은 훨씬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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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8월, 만족스러운 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한 사설탐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군가 자기에게 미심쩍은 것들을 구매하지 않겠냐고 접근해왔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신용평가보고서는 75달러, 자동차 관련 기록은 2달러, FBI 범죄 기록에서 빼돌린 정보가 100달러, 유명인 혹은 중요 인물의 주소나 전화번호는 500달러였다고 한다. 모리스는 뭔가 거대한 것이 배후에 있음을 직감했다.
사설탐정에게 부탁해 녹음기를 차고 판매자와 접선하게 했다. 그 때부터 개인정보 판매자들의 정체를 파악해나갔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놈들이었다. 11명의 20대로 구성된 이들을 FBI 내부에서는 폰마스터즈(Phonemaster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이미 AT&T, 브리티시텔레커뮤니케이션즈(British Telecommunications), GTE 등 내로라 하는 미국 대형 통신사들의 망에 침투해 각종 정보를 주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신망을 뚫고 들어가 장난전화를 한다거나 도청을 한다거나 하는 데서 그쳤다면 귀여웠을 것이다. 폰마스터즈는 정말 ‘마스터’였다. 거대 통신망을 통해 신용 조회 전문회사 에퀴팩스(Equifax)의 데이터베이스에 들락거렸다. 넥시스(Nexis)와 던앤브래드스트리트(Dun & Brandstreet)도 당했다. 급기야는 국가 전기 공급망 일부에도 접속했고, 항공 관제 시스템과 백악관에까지 손길을 미쳤다. FBI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런 데서 얻어낸 정보를 가지고 은밀히 판매하다가 모리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었다.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해킹이라는 행위에 낭만이 섞여 있었다. 범죄라기보다 장난에 가까운 뉘앙스였고, 어느 정도는 ‘지적 호기심’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침해한 곳으로부터 돈을 요구한다거나 어둠의 사업을 벌이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간밤에 성공시켰던 해킹 공격을 희희낙락하며 자랑하는 게 해커들의 일상이었다.
폰마스터즈는 그렇지 않았다. 자랑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대화했을 뿐 바깥에서는 침묵했다. 이미 그들에게 해킹은 사업 행위였기 때문이다. 더 오랜 시간 사업을 영위하려면 들키지 않아야 했다. 조용한 가운데 폰마스터즈는 신용 정보를 팔고, 범죄 기록을 넘기고, 각종 유명인 연락처를 매매했다. 나중에 FBI는 이들이 일으킨 피해액을 돈으로 환산하면 185만 달러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90년대 초중반 기준의 금액이다.
모리스는 이들을 잡고 싶었다. 감청 승인을 신청했다. 상사들과 판사들을 수차례 교육하고 또 교육해야만 했다. 이 은밀한 추적 행위는 의회로까지 올라가서야 승인이 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기술이었다. 당시는 모뎀이 사용되던 때다. 범인들이 컴퓨터로 주고 받는 디지털 신호가 모뎀에서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돼 전화선을 타고 퍼졌다. 그러므로 모리스는 그 아날로그 신호를 받아 디지털로 역재생하는 장비가 있어야만 했다. 시장에는 없어 FBI 내 엔지니어링 팀이 직접 제작했다. 개발 기간 6개월, 비용 7만달러가 들었다.
장비가 입수된 94년 12월부터 모리스는 편하게 폰마스터즈를 쫓을 수 있었다. 폰마스터즈가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실명이 무엇인지, 서로 어떤 관계인지 죄다 알아냈다. 그러면서 슬슬 마지막 때를 준비했다. 재미있게도 남들 전화 통화는 그렇게나 엿듣던 폰마스터즈는 FBI의 감청 사실은 한참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1월 17일이 되어서야 숨어있던 FBI의 존재를 눈치챘다. 패닉에 빠진 사람도 있었고, 웃어 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반응들을 FBI는 다 기록하고 있었다.
폰마스터즈가 깜짝 놀랄 일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2월, 자신들이 해킹해 들어간 FBI 데이터베이스에 자신들의 전화번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모리스도 폰마스터즈가 FBI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했다는 걸 인지했다. 서둘러야 했다. 그 달 22일, FBI는 주요 멤버들의 집을 급습했다. 부모님 집에서, 기숙사 방에서, 혼자 살던 독신자 아파트에서 체포가 이뤄졌다. 2년 여의 재판 끝에 체포된 자들은 2~3년의 징역형과 적잖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다크웹이나 ‘범죄 산업’이라는 말이 있기도 전에 이미 기업형 해킹 범죄를 저지르던 최초의 그룹 폰마스터즈는 그 해 2월을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재판이 끝나고 모리스는 당시 FBI가 자체 개발한 역해킹 도구와, 수사 기간 동안 쌓인 노하우를 여기 저기 수사기관들에 전수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게 됐다. 그의 삶이 따분했다는 공식적 기록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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