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2024년 10월 2주차 <보안뉴스>가 선정한 키워드는 ‘언어’이다. 한국이 10월 둘째 주에 한글날을 기념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고 있다는 듯이 언어와 관련된 상황들이 여기 저기서 조명을 받았던 한 주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낯선 언어의 흔적이 말에 스며들면 ‘나의 언어가 오염되고 있다’고 절규하는 건 아무래도 세계 공통인 모양이다. 그 와중에 중동 지방의 상황을 ┖언어’로 풀어보고자 했던 이의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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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난리 난 ‘영어’
독일은 요 몇 주 동안 독일어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로 진통을 겪고 있다. 홑따옴표 하나 때문에 촉발된 상황인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흔히 영어를 배울 때 ‘아포스트로피’라고 알려진 것 때문이다. 기억을 되살려보자. 영어에서는 아포스트로피를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유’를 나타낼 때이다. 피터의 책상은 Peter’s desk이고 안나의 의자는 Anna’s chair이다.
한글은 홑따옴표가 있긴 해도 라틴어 계열 알파벳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이 소유격 아파스트로피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해서 이 아파스트로피가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은 없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독일과 영어는 같은 알파벳을 사용한다. 언어 자체가 많이 닮았고, 독일어의 많은 어휘들이 영어로 편입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아파스트뢰피와 같은 작은 문장 부호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원래 전통적인 독일어 문법에서는 아파스트로피를 소유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영어이긴 하지만 위의 예시를 가져오자면 Peter’s desk는 독일어에서 Peters desk가 된다(물론 desk는 독일어에 상응하는 단어로 사용하겠지만). Anna’s chair도 마찬가지로, 그냥 Annas chair가 된다. 그게 독일어고, 그게 영어와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요 몇 년 독일에서는 아파스트로피가 영어에서 사용된 방식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상점 간판들에서는 Peter’s desk와 같은 표기법이 이제 흔히 보이게 됐다. 간판으로 상황을 한정한다면 아파스트로피를 활용하는 사례가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것보다 주류로 보일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이 영어식 아파스트로피가 독일에 만연하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국립국어연구원과 같은 독일어 표준 표기법 제정 기관에서 “이런 식의 아파스트로피 활용 방법이 너무 만연해서 이를 허용하기로 한다”고 결정을 내렸고, 이것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제 Peter’s desk는 독일어로 치면 틀린 표현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식으로 독일어를 썼다가 ‘독일어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런 주장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걸 문법적으로 허용했다는 걸 문제 삼는 칼럼들이 독일 매체들이 잔뜩 실리기 시작했다. 영어의 영향을 받아들였으므로 독일어의 순수성이 사라지고, 결국 영어에 정복을 당하게 됐다는 게 이들의 탄식이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 역시 외래어나 과도한 줄임말이 일반 대중들의 언어에 하나 둘 자리를 잡을 때마다 거부감을 느끼곤 하기 때문에 이 논란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왜 꼭 영어의 승리로 봐야 하는가, 라는 반박도 나오고 있다. 편리하기 때문에 아파스트로피를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ndreas Tavern이라는 독일식 표현의 경우, 전통적인 방법대로 Andreas Tavern이라고 쓰면 그 여관(Tavern)의 주인이 Andreas인지 Andrea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아파스트로피를 사용해 Andrea’s Tavern이라고 하면 전혀 혼동될 일이 없다. 뭐, 그래도 아직은 독일어가 더럽혀졌다는 탄식이 많은 듯한 분위기다.
영국에서 난리 난 ‘미국어’
영어 구사자들이라고 해서 온 세상이 영어를 쓰는 것에 만족해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 나름 대로의 논란과 고충이 있다. 최근 영어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미국식 영어가 영국으로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대대적으로 나오는 중이다. 영국 대표 매체인 BBC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24/7, deplane(비행기에서 내리다), touch base(연락하다) 등과 같은 표현이 영국인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미국식 언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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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의 성향에 따라 이런 미국식 영어를 오염 물질이나 언어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미국 문화의 정복이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미국 양식의 침투라고 표현하는 쪽도 존재한다. 긍정의 목소리는 거의 들어볼 수 없다. 다만 영국 대중들은 자신들의 언어에 미국식 영어가 알게 모르게 들어오는 것을 크게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언어학자들은 디지털 신기술이 미국에서 대부분 개발되고 있고, 또 미국의 대기업들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이 미국식 영어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때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미국 시트콤도 영국 영어를 ‘오염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보는 의견들도 있다.
재미있는 건 영국에서 이런 성토가 주기적이다시피 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엘리트들은 미국 영어에 대한 성토를 즐겨 한다 ”고 표현했다. 영어의 본고장으로서 다른 지역에서 파생되는 용어를 일종의 사투리로 보는 모양이다.
더 재미있는 건 그런 영국도 미국의 언어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도 영국식 영어를 꽤나 많이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 bespoke(맞춤형), brilliant(오케이, 좋았어), chat up(말 걸다, 수작을 부리다) 등을 이코노미스트는 꼽고 있다.
그 외에도 영국식 욕이나 비속어가 미국으로 꽤나 빠르게 흡수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인들이 격양됐을 때 사용하는 단어들이 미국인들 귀에는 재미있게 들린단다. 그래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영국에서 사용되는 ‘오리지널’보다 훨씬 가벼운 어조로 욕과 비속어가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같은 단어라도 영국인이 사용하면 미국인이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센’ 의미를 갖게 된다.
미국인들 역시 이러한 현상(영국 영어가 미국 대중들의 언어로 스며드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영국에서처럼 이게 큰 사회적 현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 영어에 대해 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느끼고, 미국 영어에 대해 영국인들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영어가 언제나 어려운 우리 입장에서는 사치스러운 현상이다.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언어’
중동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협상을 이끌어내려 했던 미국 CIA 국장 윌리엄 번즈(William Burns)가 한 마디 했다. 또 다시 터질지 모르는 중동 전쟁의 핵심 플레이어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정말로 주의해야 할 건 서로의 언어라는 내용이다. “양쪽 다 전면전이 시작되는 걸 원하지는 않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번즈는 “다만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작은 오해 하나가 큰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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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대면하여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현재 둘은 미사일과 폭격과 암살이라는 표현법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서로 누구를 향해 미사일을 얼마나 쐈고, 그랬을 때 피해가 얼마나 있었는지를 발표하기에 바쁜데, 이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궁이 있는 곳으로 미사일이나 전투기를 날리면, 그 공격이 실패했든 성공했든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지방의 군 시설을 하나 공격한다는 건 체면 차리기나 단순 경고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포탄과 미사일을 날리는 지역에 무엇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무기를 사용하는 가 등으로 대화의 메시지가 정해진다는 건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모두 100% 정확할 수 없어 어느 한 쪽이 의도치 않게 상대의 심장부를 직격하게 된다면 그것이 중동 전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게 번즈가 지적한 내용이다.
당분간 협상을 진행하려는 중재자들이나 양측 모두 이스라엘과 이란이 사용하는 언어의 해석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번즈는 밝혔다. 이스라엘이 쏜 미사일에 대하여 이란이 크게 격노하지 않도록 하고, 반대로 이란의 움직임을 이스라엘이 과도히 해석하지 않도록 하는 게 미국과 이집트와 요르단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양측의 진짜 의도가 상대의 멸절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는 전제 하에 성립되는 이론이다.
명확한 언어의 중요성?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인공지능의 열기 직전에 수많은 기업과 IT 전문가들은 죄다 메타버스라는 것에 매료되어 있었다. 페이스북이라는 거대 기업이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면서 이 메타버스라는 생소한 이름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었다. 저커버그는 “앞으로 사람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생활하고, 친구를 만나고, 회사 업무를 하고, 데이터까지 할 것”이라고 하며 페이스북이 새로운 미래로 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여기에 많은 기업들이 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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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럭셔리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과도 제법 있었다. 구찌는 샌드박스(Sandbox)라는 플랫폼에서 디지털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메타버스에의 투자를 선포하더니 디오니서스 핸드백들을 가상 제품으로 만들어 로블록스(Roblox)에서 판매했다. 이 때 이 가상의 제품들은 실제 제품보다 800달러 정도 더 비싸게 팔렸다.
티파니앤코도 메타버스에 뛰어들었다. 가상의 목걸이를 만들어 제품 당 5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버버리는 마인크래프트(Minecraft)라는 게임 내 버버리 스킨을 판매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외에도 여기에 다 열거할 수 없는 기업들이 NFT 버전의 상품을 만들기도 하고, 암호화폐 코인을 출시하는 등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메타버스에 발을 들이밀고자 했다. 2030년이면 메타버스 시장이 5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거라는 전문가 예측도 나왔었다.
하지만 그런 숨가쁜 성장의 와중에도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백 명이면 백 명 모두 서로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대강 가상현실 기술로 구현하는 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정도 혹은 VR 기계를 머리에 착용하고 입장하는 어떤 공간 정도의 흐릿하고 모호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 ‘사전적 정의’를 내린다거나 국제적인 표준을 정립하려는 시도는 없었거나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모두가 신기루를 쫓은 셈이다.
물론 구찌가 새롭게 임명했던 메타버스 책임자의 의견은 달랐다. 지난 봄 그는 뉴욕의 한 행사에 참석해 당시에도 이미 죽어가고 있던 메타버스의 유행에 대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했었다고 와이어드는 이번 주 보도했다. 수정의 과정을 밟고 있을 뿐이며, 안정화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었다. 메타버스에 대해 더 진지하게 임할 사람과 기업들만 남게 될 거라고 장담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인터뷰를 하고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구찌를 떠났고, 아직까지도 메타버스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유행을 주도했던 메타는 현재 인공지능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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