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영화] 위태한 바다 위에서 ‘더 스위머스’, 메달을 버리다

2024-04-2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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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다룬, 스포츠 영화인척 하는 영화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얼마 전 난민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다가 위기를 맞아 일부가 사망하고 일부가 구조되는 일이 있었다. 크지 않은 고무보트 한 대에 100명이 넘게 탔었다고 하며,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은 인터뷰를 통해 “난생 처음 보는 일”이었다고 증언했다. 당연히 기자 역시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일이었다. 고무보트가 아무리 커도 그렇지 100명이 넘게 타는 게 가능하다고? 빈약한 상상력은 ‘세상에는 꽤나 큰 고무보트들이 존재하는가보다’라고 결론을 지어버렸다.


[이미지= 네이버 영화]

운명처럼 바로 다음 날 넷플릭스에서 고른 영화가 ‘더 스위머스’였다. 올림픽 출전을 꿈꾸는 시리아 출신 수영 선수의 이야기다. 자기 기록을 거듭 갱신하는 전성기에 하필이면 시리아에서 내전이 터지는 바람에 꿈을 키우기는커녕 나라를 탈출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 탈출 과정 중에 작은 고무보트를 타게 된다. 브로커들은 여기 저기 기운 자국이 있는 낡은 고무보트를 가져와 바람을 불어넣은 뒤 딱 봐도 절대 수용 불가능할 것 같은 인원들을 태운다. 사람들은 뼈까지 접은 듯 움츠려 배에 올라타고 검은 바다를 향해 출발한다. 어제의 빈약했던 상상력은 ‘저런 일이 정말 있구나’라고 결론을 정정했다.

적정 인원을 한참 초과해버린 배는 바다 한 가운데서 이상 신호를 보낸다. 엔진이 꺼지고 배 안으로 물이 점점 차오른다. 누가 봐도 무게가 문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짐을 바다로 던지기 시작한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모든 짐을 버린다. 주인공인 수영 선수도 그렇게 하는데, 짐 하나를 쉽게 던지지 못한다. 메달들이다. 여태껏 시합에 나가 땄던 승리의 징표들이다. 좋은 선수였으므로 메달 역시 한두 개가 아니다. 메달만 봐도 이 선수가 어떤 수준에 있었는지가 보일 정도다. 수영 선수로서의 주인공은, 그 메달로 말끔하게 대변이 된다. 그러니 버릴 수 없을 수밖에.

하지만 과거의 영광 때문에 모두를 가라앉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 메달들은 남김없이 주인공의 손을 떠난다. 입 벌리고 있는 바다에 먹이를 주듯 던져넣는다. 목숨보다 귀한 정체성을 버린 줄 알았는데, 의외로 주인공은 멀쩡했다. 물론 폭풍이 치는 바다에 위태한 고무보트 위라는 상황 자체는 계속해서 위협이 됐지만, 메달이란 게 버리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던지고 보니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그를 정의하지는 못했다. 나라고 믿었던 정체성이, 위험한 항해에 무게만 더해 갈 길을 정체시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랬더니 그의 진짜 정체성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짐을 다 버려도 배가 버티지를 못하자 주인공의 언니(역시 수영 선수)가 바다로 뛰어든 것이다. 자신은 수영을 할 수 있으니 배의 끈에 몸만 묶고 바다 위에서 버티겠다는 것이었다. 더 나은 수영 선수였던 주인공도 합류했다. 두 사람의 무게가 줄었다. 뒤를 이어 다른 사람도 따라 뛰어내리지만 곧 다시 올라탄다. 주인공은 배의 뒤를 좇으며 파도를 가르고 자신의 레인을 찾는다. 나중에야 배에 탔던 사람들이 두 자매가 프로 수영 선수라는 걸 알고 엄청난 용기를 내 준 것에(즉 정체성 대로 움직여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과거의 자맥질을 버린 주인공은 현재의 수영을 했고, 모두가 살았다.

과거의 영광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매일 그 영광의 순간을 갱신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엄청난 성과로 넉넉한 연금이 평생 보장된 사람이 아니라면, 혹은 - 과거에 통했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 막대한 돈을 은행에 예금했기 때문에 이자만 가지고도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은 매일 과거를 갱신하면서 살아간다. 그 대단한 애플도 매년 새 제품을 가지고 역대 판매량 갱신을 위해 애쓰는 걸 보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어제의 메달을 오늘이라는 바닷속에 던져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오늘은 오늘에의 메달이 있다.

보안은 메달이 없는 종목이라고들 말한다. 평화의 시기에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평화로 묘사하기에 부적절한 시절이다. 나에게 와닿지 않는다고 위험천만한 지금의 시기와 사이버 공간이 갑자기 평화스럽고 화목한 곳이 되는 건 아니다. ‘더 스위머스’의 주인공이 험악한 바다를 겨우 건너와 조금 안정을 취한 뒤 자기가 건너온 바다를 우두커니 쳐다보는 장면이 있다. 그곳에는 수영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각종 워터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저들은 같은 바다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걸 상상도 못하겠지’라고 언니가 중얼거린다. 인스타에 신상품 사진 올리고 코미디 쇼츠를 시도 때도 없이 즐길 수 있는 이 평화로운 인터넷 공간에서 누군가는 흉악한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빈약하다.

평화롭지 않은 지금은 보안 담당자들이 매일 가져가야 할 메달이 많은 때다. 한 때 바다로 표현됐던 인터넷은 온갖 음흉한 의도로 넘실되고 있다. 해커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업들도 온갖 지탄을 받는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들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소비자들로부터 정보를 짜내서 가져가고, 불리한 약관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동의하게 하며, 뒤에서 광고 회사들과 몰래 거래를 하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해커들은 뒷문을 이용하고, 기업들은 앞문으로 들어올 뿐이다. 기업이나 해커들이나 동급으로 나쁘다는 게 아니라, 원하는 데이터를 가져가기 위해 애쓰는 노력의 수위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번 회사에 있을 때 보안 강화를 기똥차게 했었다는 기억과, 한 때 취약점 발굴 전문가로서 끝발 날리게 활동했다는 기록, 각종 해킹 대회에서 수상했던 이력들은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 눈앞의 파도는 현실의 문제이지, 과거의 내가 강력한 방패를 대신 들어주지 못한다. 오늘 들어야 할 방패는 오늘 찾아야 한다. 매일 새로운 파도에 맞서야 하는 것, 어쩌면 그 바다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 내가 보호해야 할 조직이 안전하게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프로 보안러’다. 그렇게 했을 때 사람들은 ‘프로 보안러’들을 알아보고, 납득하며, 감사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뛰어드는 것일까? 수많은 행동이 여기에 비유될 수 있겠지만 오늘은 ‘더 스위머스’라는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만 할까 한다. 그건 바로 무게 줄이기다. 주인공은 갑자기 수영 선수로서 수영을 하고 싶어서 바다로 뛰어든 게 아니다. 자기가 타고 있던 조직의 위태로움을 보고, 문제를 파악해서(무게),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 것이다. 용기도 용기지만 문제의 핵심을 간파한 행동이었다.

회사라는 고무보트는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현대의 회사들은 대부분 과도한 무게를 떠안고 있기도 하다. 과거의 기술들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된 컴퓨터, 오래된 애플리케이션, 오래된 계정, 오래된 업무 프로세스들이 현대 기술에 전혀 맞지 않지만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 치우지만 않는 게 아니라 돌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해커들이 이런 것들을 타고 들어올 때가 많다. 케케묵은 것들이 묵직하게 조직 전체를 심해로 가라앉히고 있지만 그 침몰의 기운을 느끼기란 어렵다. 요 몇 년 보안 전문가들의 칼럼 속에 일관되게 ‘재고 정리부터 하라’라는 조언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디지털 자산들을 하나하나 파악하다보면 줄이고 버려야 할 것들이 보이고, 그것을 처리해야 배가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신기술이 좋다는 게 아니다. 오래된 것들의 가치가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보트의 구멍 역할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업무에 꼭 필요한 앱이지만 너무 낡았다면, 현대 인프라에 맞게 재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시 되는 업무 프로세스인 것처럼 보여도, 잘 뜯어보면 효율을 높일 구석이 있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회사 내 모든 계정들을 전수 조사하면 예상치 못한 것들이 나올 수 있다. 오래된 컴퓨터가 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지, 담당자가 지정되어 있긴 한지 검토하는 것도 무게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다.

아쉽지만 이 모든 작업을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기술은 아직 없다. 현존하는 자동화 기술이 일부 재고 파악 작업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버튼 몇 번 눌러서 기다리면 회사 인벤토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작성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해야 할 사람이 보안 담당자들이다. 단순 반복 작업의 바다 속에 뛰어들어야 한다. 가라앉는 배에서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누구나 외칠 수 있지만 바다로 직접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재고 정리를 주장하는 칼럼쟁이들이나 기자 같은 입보안쟁이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회사 네트워크 깊숙한 곳에 두손 두발을 다 넣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어야 배가 뜬다. 그리고 도착한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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