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요 근래 여러 기업들이 임직원들의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원격 근무를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던 IT 분야 기업들마저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있어 주목을 받는 중이다. 물론 회사들마다 사정이 있고, 출근을 요구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격 근무라는 것이 단순히 팬데믹이 엔데믹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진다면 여러 가지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IT 분야에서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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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빌트인(Built In)’ 보고서에 따르면 IT 기업 경영진의 30%는 다양성과 공정성, 포용성이라는 것을 추구하는 것과 기업의 성공 사이에는 큰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절반 이상의 직원들은 “회사가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임직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IT 기업들은 그 동안 산업 내 여러 가지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각종 요구를 수용하는 데에도 능숙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IT 기업들의 성공 비결 중 하나였다. 원격 근무가 필수로 변했을 때에도 IT 기업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하지만 그 원격 근무라는 것이 가져다 주는 보이지 않는 혜택들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팬데믹 사태가 진정되니 곧바로 출근 체제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 아닐까.
원격 근무의 보이지 않는 혜택이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일터로 초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지역 출신들, 장애를 가진 개인, 여성 등이 물리적 공간에서 겪는 차별이나 불편함 없이 비교적 공정하게 일할 수 있었던 체제가 바로 이 ‘원격 근무’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마저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하버드의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은 저서를 통해 “원격 근무 체제가 갖는 유연성은 여성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골딘의 주장에 따르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규정은 그 자체로 여성들에게 큰 장애물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통학시키는 것을 담당하는 것이 대부분 엄마인데, 회사는 아이들 통학 시간 때문에 사무실에 늦게 들어오거나 일찍 나가는 사람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이것이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재택 근무를 하게 된다면 이런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골딘은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무 공간에서 직원들 간 발생하는 사소한 신경전이라든가 감정 싸움과 같은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줄어든다는 것 역시 재택 근무의 큰 장점이다. 이것은 비단 특정 인종이나 소수자, 여성들에게만 집중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서나 겪을 수 있는, 결코 작다 할 수 없는 문제였다. 사무 공간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가는 건 대단히 불쾌한 경험일 뿐만 아니라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적잖은 사람들이 경험해 봤을 것이다. 재택 근무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감정 싸움이나 사소한 신경전, 보이지 않는 차별 등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들이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 ADHD를 가진 사람이 직장 내 있다고 하면 독특해 보일 수 있는 행동 패턴 때문에 회사 내 동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ADHD가 심하면 한 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는데, 그러한 이면에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다. 재택 근무를 하게 될 경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보다 원활하게 찾을 수 있게 된다.
원격 근무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게 된다면 직원들은 생산성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일하면 회사는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게 된다. 내부적으로 더 나은 아이디어, 다양한 아이디어가 논의되기도 한다.
원격 근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협업할 수 있게 된다면, 회사는 소비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는 단 하나의 균일한 그룹이 아니다. 정말 많은 종류와 계층의 사람들을 한데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 ‘소비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려 한다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 다양한 사람들이 ‘소비자’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음을 인지하고, 여러 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내부 직원들이 다양할 때 이런 접근법이 가능해진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직원들은 회사가 좀 더 다양성과 포용력 면에서 향상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회사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본다. 그 중 하나는 회사가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관이다.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천편일률적으로 한 부류의 사람들만 있다면, 입사하고 싶을까? 남자만 가득한 회사나 여자들로만 구성된 사무실이 인터넷 상에서 이따금씩 유머 소재로 소비된다는 걸 생각하면 원활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서라도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인재 확보가 더더욱 중요해지는 요즘과 같은 때에는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게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원격 근무는 단순히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모였다 흩어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얻을 수 없는 가치관들을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업은 보다 나은 조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사무실로 사람들을 주 5일 불러모으는 게 어떤 면에서 더 도움이 되는지, 재택 근무가 주는 혜택들에 어떤 게 있었는지 진지하게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글 : 메간 마네발(Meghan Maneval), 기술 디렉터, RiskOptics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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