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강력한 기능을 가진 고급 컴퓨터 칩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줄 아는 기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그 중에서도 인공지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최첨단 칩셋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들은 더 적다. 칩셋을 가지고 뭐라도 만들어 출시한다고 했을 때, 기업들은 이 소수의 생산자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칩셋 부족 현상의 근본적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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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은 어마어마한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합니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죠. 시장에서 경쟁이 될 만한 인공지능 기반 제품이나 장비를 만들려면 아무 칩이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PwC의 반도체 부문 파트너인 스콧 알마시(Scott Almassy)의 설명이다. “최근 그래픽을 처리하는 GPU들이 이런 컴퓨팅 파워를 적절히 충당한다는 것이 알려졌고, 그러면서 GPU의 값이 크게 올라갔습니다.”
알마시는 “인공지능이 이미 주류로 올라섰다”고 말하며 “앞으로 GPU와 인공지능 전용 칩셋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상황에서 칩셋의 수요가 올라간다는 건 결국 자본금이 충분한 기업들만 칩셋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하려는 스타트업 등 작은 기업들에는 기회가 돌아가기 힘들죠.”
LLM이 가속시킨 인공지능 수요
컨설팅 회사 KPMG의 수석 총괄인 아이린 시뇨리노(Irene Signorino)는 “인공지능 칩셋의 공급망이라는 것도 수요가 서서히 늘어나면서 서서히 확대될 수 있었어야 했는데, 챗GPT와 같은 LLM 모델의 급작스런 인기몰이 때문에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말한다. “칩셋 제조 시설이라는 것도 그렇고 관련 인력이라는 것도 그렇고 대단히 고급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자본만으로 확충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 칩셋 대란이 해결되기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시뇨리노는 “IT 업계에서 특정 부품이나 기술에 대한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라며 “특히 신기술이 나타나 주목을 받을 때 해당 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늘 병목현상이 일어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얼마 간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하여 제품이나 솔루션의 가격이 올라가긴 할 겁니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고효율화에 더 매진하겠고, 그 과정에서 기술은 좀 더 가다듬어집니다. 자유 시장의 경제 원리가 작용하면서 기술이 일반화 되고 정착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고 불균형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시뇨리노는 지적한다. “이런 대란 속에서 인공지능 칩셋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들, 그러므로 인공지능 기술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업들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후발 주자들의 싹이 제거되는 건 아니죠. 이전에 등장했던 모든 신기술들이 그랬듯이 이런 불균형이 자리를 잡는가 싶다가도 후발 주자들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틈새 시장 공략 등으로 시장은 더 다채로워질 겁니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노력
아이디얼세미컨덕터(iDEAL Semiconductor)의 의장인 마이크 번즈(Mike Burns)는 “지금의 인공지능 칩셋 공급 부족 현상을 해소하려면 칩셋 생산량을 늘리고, 니어쇼링(near shoring)을 도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장의 원리에 의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시선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고, 또 그 시간까지 지금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화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회의 시간이라는 게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번즈는 “이러한 상황을 정계도 알고 있고, 그래서 반도체법이 통과해 정착한 상황”이라며 “기업들 역시 이런 정책에 힘입어 생산 시설을 늘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공급 문제는 해결 가능성이 보이는데, 문제는 인력 확보입니다. 미래에도 공급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인력을 확충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와 데이터 과학자도 필요하지만 칩셋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엔지니어와 기술자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일단 미국에서는 그러한 인력이 크게 부족한 게 맞습니다.”
부즈앨런(Booz Allen)의 수석 엔지니어인 줄리안 워챌(Julian Warchall)은 “지금으로서는 현재의 공급 부족이 장기화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칩셋 공급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강화해야 합니다. 생산 시설 확충도 중요하고, 칩셋 설계자와 엔지니어를 교육하는 것도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각 요소들 간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생산 기업과 엔지니어 사이, 엔지니어와 유통사 간, 유통사와 최종 사용자 간의 모든 부분들이 투명해져야 합니다. 병목현상은 의외로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워챌은 “지금 인공지능 시장은 대형 클라우드 업체들과 GPU 제조사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아직 이 기술의 혁신이 다 끝난 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강자가 나타나길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는 건 지금의 시장 상황이 고착화 되어서는 안 되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을 거라는 뜻입니다. 다만 그 때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죠. 정부와 기업, 그리고 엔지니어와 교육자, 최종 사용자까지 시장 내에서 자신이 할 일을 부지런히 찾아 해내는 게 중요합니다.”
글 : 네이선 에디(Nathan Eddy), IT 칼럼니스트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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