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평 남짓한 낡고 허름한 건물에, 21대 CCTV와 도청기 설치
성진애드컴 노조, “노조인정하고 CCTV와 도청기 철거” 요구
사측, “보안 때문에 설치한 것을 인권침해라니!” 변명
CCTV의 오-남용으로 인해 원래 CCTV가 가진 순기능 이미지가 점차 훼손되고 있어 장기적 관점에서 이용에 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군가 나를 보고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당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위축되고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방해하고 인격적인 모멸감까지 느끼게 만들어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무인현금지급기가 설치된 모든 장소에는 CCTV가 설치돼있다. 어느 누구도 그 곳에 설치된 CCTV를 가지고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꼭 필요한 곳에 설치된 CCTV라는 인식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반면 CCTV로 근무하는 직원들을 감시하고 노조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CCTV에 대해서는 ‘인권침해’와 함께 ‘노동운동 탄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그와 같은 일이 지금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CCTV와 도청장치를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감시하고 노조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장비로 사용하는 사업장이 있어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 풍전호텔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성진애드컴(대표 김정호) 노조는 현재 접수실 건물 2~4층을 점거하고 농성 중에 있으며, 건물 앞 천막농성장에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노조측의 요구를 계속해서 묵살하는 등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하기만 하다.
1998년에 설립된 성진애드컴은 인터넷을 활용해 전국을 대상으로 인쇄물을 주문받아 공급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성장해 하루 매출이 5~7천만원, 연간 2백억원의 매출액을 올려왔던, 충무로 인쇄바닥에서는 꽤나 유명한 업체다. 직원은 70명가량.
<성진애드컴 건물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노조. CCTV와 도청등으로 직원을 감시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한 김 이사의 사과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단체교섭에 나오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노조측>
문제의 발단은 사측의 ‘비인간적인 노무관계’와 ‘CCTV를 통한 노조원 감시’에 있었다. 김 회장의 아들, 김세진 이사(31살)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직원들은 그의 욕 짓거리를 들으며 일을 해야 했다. 그가 직원들을 부르는 호칭은 ‘야, 이 새끼, 저 새끼’가 보통이었고 ‘전라도 깽깽이는 앞으로 절대 뽑지마’, ‘보건휴가 쓸려면 월경증명서를 떼와라’는 식이었다. 철저하게 노동자의 인격과 인권은 무시됐다.
그러한 연유로 최초 21명의 인원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됐고 이후 사측의 노동조합 탄압이 심해지면서 20평 남짓한 작은 건물 내부에 21대의 CCTV가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CCTV는 주로 노조원들이 근무하는 자리와 휴게실 등에 집중 배치됐다.
<노조원들이 점거농성에 돌입후, CCTV를 분해해본 결과 고성능 도청기가 내장돼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노란색 원 내부가 도청장치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노조원들 자리 가까이 설치된 CCTV와 직원들이 담배를 피고 담소를 나누는 휴게실 등에 설치된 CCTV 등 3곳에서 도청기가 발견된 점이다.
농성중인 노조원은 “1년여 동안 회사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 다 엿듣고 있었다”며 “직원을 직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의 대상으로 생각해왔다는 것이 참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성진애드컴 경영진은 설치된 CCTV로 누가 화장실을 갔는지, 누구와 전화통화를 했는지, 누구와 만나 얼마간 수다를 떨었는지 아주 세세한 사항들을 시간대 별로 기록해왔던 것도 밝혀졌다. 신 모직원은 자신이 그러한 감시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퇴사했다.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인쇄노조 소속 김미란 사무국장은 “현재 노조원들은 사측의 회유와 협박으로 7명만 남았다. 이 7명은 ‘죽을 각오로 끝까지 간다’는 생각으로 건물 점거농성에 들어갔다”며 “이들의 요구는 김세진 이사의 공식사과와 사측이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단체협상을 체결, 감시카메라와 불법도청장비를 철거하고 부당해고자와 원직복직 및 징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점거농성은 불법이기 때문에 사측이 경찰에 공권력 행사를 요구할 경우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다.
사측의 입장은 “직원 감시용으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 화재예방용으로 설치한 것”이라며 “보안을 위해 설치한 것을 가지고 노조원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문문주 조직부장. 그는 "직원을 감시의 대상으로 보고 CCTV나 도청 장치를 설치한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고 노동운동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20평 남짓한 낡고 허름한 4층 건물에 21대의 CCTV(실제 작동은 17대)가 돌아가고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에 도청기가 설치돼있는 것이 과연 ‘보안’일까.
보안은 회사나 개인의 자산을 위협하는 ‘적’으로부터 정보와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다. 직원은 적이 아니라 기업의 자산임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문문주 조직부장은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CCTV가 설치되면서 노동조합의 활동이 위축되고 직원들이 조합사무실을 드나들거나 조합가입을 꺼리는 경향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측은 보안이라는 명목하에 CCTV를 설치하고 있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최근 CCTV 뿐만 아니라 도청이나 메일 모니터링 등 고도의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노동자 감시가 급증하고 있다”며 “경영자가 노동자를 감시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러한 감시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장기적인 기업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길민권 기자(sw@infoth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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