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 해킹 사고로 인해 ‘보안’이 이제 전 산업에서 꼭 필요한 기반 인프라가 되고 있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보안뉴스>는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김정덕 명예교수의 연재를 통해 일상과의 비유를 바탕으로 보안의 여러 이슈를 짚어보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보안 패러다임과 지속가능한 보안을 위한 거버넌스와 리더십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연재목차 Part 1. 보안 다반사- 보안, 일상과 비유에서 길을 묻다
1. 골프 지혜로 배우는 사이버 레질리언스
2. 케데헌 현상에서 배우는 사이버 보안문화
3. 트럼프발 ‘각자도생’ 시대, 한국의 디지털 안보 전략은?
4. 자전거 라이딩과 사이버 보안
5. 불꽃야구로 본 사이버 보안
6.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7. 나무의 전략, 보안의 지혜
8. 기술중독, 사이버 보안의 새로운 위협
9. 워렌 버핏에게 배우는 사이버 복원력 원칙
10. 내면의 방패, 마음챙김
11. 따뜻한 보안교과서, 육아
12. 손흥민의 리더십과 사이버 보안
13. 의학 3.0시대, 보안의 새로운 지평
[보안뉴스= 김정덕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명예교수/인간중심보안포럼 의장] 가을 국화 군락 앞에서 벌은 더 가까운 꽃이 있어도 같은 종의 꽃만 연달아 찾습니다. 이른바 ‘꽃 항상성(Flower constancy)’은 서로 다른 꽃 사이를 오가며 생기는 혼선과 손실을 줄이고, 한 가지 꽃에 집중해 채집 효율을 높이는 자연의 지혜를 뜻합니다. 학습과 기억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해 수확을 극대화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전략입니다.
‘꽃 항상성’은 고대의 관찰에서 출발해 근대 과학을 거치며 정교해졌습니다. 20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을 시작으로, 다윈과 뮐러의 연구에서 체계적으로 확인되며, 마침내 측정과 분석이 가능한 과학적 틀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그 긴 축적 끝에 ‘꽃 항상성’은 현대 수분 생태학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확립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연은 ‘선택과 집중’으로 효율을 끌어올립니다.

[자료: AI Generated by Kim, Jungduk]
가을 들판에서 배운 집중
들판의 벌이 한 종에 집중할수록 수확이 커지듯, 보안도 원리는 같습니다. 모든 경로를 한꺼번에 막으려 하기보다 임계 자산과 핵심 전술군에 초점을 고정할 때, 탐지와 대응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정렬됩니다. 초점이 정해지면 로그 스키마와 탐지 규칙, 대응 절차가 한 방향으로 맞춰져 신호대잡음비가 높아지고 전환 비용과 오탐이 줄어듭니다.
가을 수확처럼 일이 몰리는 시기일수록 무엇을 수확 바구니에 먼저 담을지 결정하는 일이 성패를 가릅니다. 이제 들판의 교훈을 보안 운영 설계로 바꾸어, 어디에 시선을 고정해야 효율과 품질이 함께 올라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꽃 항상성’에서 배운 보안 설계 원리
‘꽃 항상성’에서 얻은 설계 원리는 네 가지로 이어집니다.
첫째는 ‘핵심 자산의 일관성 유지’입니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자산(가장 지켜야 할 정보와 서비스)을 하나의 ‘집중 구역’으로 정하고, 그 흐름에 맞춰 로그의 핵심 키와 태그, 보존 정책, 탐지 규칙을 같은 기준으로 통일합니다. 같은 대상을 같은 기준으로 반복해 보아야 미세한 이상이 신호로 떠오르고, 불필요한 경보는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가라앉습니다.
둘째는 ‘절차의 일관성 유지’입니다. 변경·배포 승인, 사전 검증, 롤백, 영향권 고해상도 모니터링을 하나의 플레이북으로 묶고, 매번 같은 순서로 실행합니다. 같은 길을 반복해 걸을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지듯, 대응의 속도와 품질이 안정되고 편차가 줄어듭니다.

셋째는 ‘선택적 다양성의 적용’입니다.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공격 전술군을 명확히 구획해, 서로 다른 꽃을 구분하듯 다르게 다룹니다. 유사 변형은 하나의 바구니로 묶어 중복 알람을 줄이고, 구분이 필요한 변형에는 개별 규칙을 두어 정밀도를 높입니다.
넷째는 ‘회복성의 일상화’입니다. 백업 무결성 점검, 단절 모드 리허설, 서비스 우회와 복원 시간의 실측을 정기적으로 수행합니다. 물난리를 대비해 제방을 미리 보수하듯, 복구 경로를 정교화하고 백업의 건전성을 사전에 확인해 복원력을 확보합니다.
최근 사건이 건네준 조용한 신호
올봄의 대형 통신사 침해는 핵심 식별자 보호와 계정·암호화 통제의 일관성이 흔들릴 때 어떤 비용이 발생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진 타 통신사의 경계면 위협은 네트워크·단말·코어 사이마다 변함없는 검증 체계를 순환적으로 두어야 함을 상기시켰습니다. 가을의 데이터센터 화재는 물리와 사이버가 서로 다른 장면이 아니라 한 무대임을 드러내며, ‘공공 영향이 큰 기능부터 되살리는’ 우선 복구 순서를 설계에 새겨야 함을 말해주었습니다. 세 사건이 공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초점이 분산될수록 중요한 것은 작아지고, 사소한 것이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들판의 벌이 한 송이 국화꽃에 시선을 고정하듯, 보안도 가장 중요한 것부터 같은 눈으로 반복해 보아야 합니다. 초점이 선명할수록 신호는 또렷해지고, 낭비와 혼선은 줄어듭니다. ‘집중 구역’을 정하고, 이를 관찰·보호할 정책과 프로세스, 솔루션을 일관된 기준으로 맞춘 뒤, 복원 리허설과 백업 무결성 검증을 정례화해 복원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꽃 항상성’ 원리가 운영의 습관이 될 때, 조직은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갖게 됩니다. 깊어져 가는 가을, 자연이 건네는 간명한 가르침을 오늘의 실천으로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필자 소개_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명예교수, 인간중심보안포럼 의장, 한국정보보호학회 부회장, 금융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위원, 전 JTC1 SC27 정보보안 국제표준화 전문위 의장 및 의원, 전 ISO 27014(정보보안 거버넌스) 에디터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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