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해킹 사태가 발생한 지 어느덧 3주가 지났지만, 사회 전반에 퍼진 혼란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SKT의 유심(USIM) 정보 해킹사고는 단순한 기술적 침해를 넘어 국민의 감정과 판단을 겨냥한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과 인지전(Cognitive Warfare)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자료: gettyimagesbank]
심리전은 공포와 혼란을 조장해 상대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마비시키려는 심리적 공격 수단이며, 인지전은 허위 정보와 인식 왜곡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판단 체계를 흐리게 만드는 정보 조작 기제다. 이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 국가들이 현대전에서 활용하는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단순히 유출된 정보의 양이나 시스템 피해를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이 초래한 사회적 불안, 공공 신뢰의 약화, 집단 심리의 동요는 훨씬 더 중대한 장기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포의 선취점, 심리전을 노린 사이버공격
정부는 유출된 정보가 전화번호, IMSI, 인증키 등이며 단독으로 유심 복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이러한 기술적 설명보다는 “내 정보가 털렸다”라는 불안에 먼저 반응했다. 이처럼 공포와 불확실성은 이성보다 앞서 움직이며, 공격자는 이를 정교하게 활용한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는 “군 통신도 이미 뚫렸을 것”, “국가는 개인을 지켜주지 못한다”라는 식의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빠르게 퍼졌다. 이는 해킹의 목적이 단순한 데이터 절취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공포와 혼란을 확산시키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불확실성과 불신이 결합된 사회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닌 감정에 의해 움직이고, 이는 정책에 대한 신뢰와 공공 시스템에 대한 지지를 급격히 무너뜨린다.
현대 사이버전은 단순히 네트워크를 무력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총을 쏘기 전에 국민의 심리 방어선을 먼저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공격자는 여론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부의 통제력을 의심케 하며, 사회 내부의 결속을 와해시키는 정치·사회 심리전의 도구로서 사이버를 활용하고 있다.
판단을 노린 해킹, 인지전의 실체
이번 사고는 단순한 정보 유출을 넘어 국민의 인지 체계 전반을 겨냥한 인지전의 실례로 봐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례는 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비교 지점을 제공한다. 러시아는 물리적 침공에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기관, 언론,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대규모 사이버공격을 선제적으로 감행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행정 혼란, 금융 불안, 정보 왜곡에 노출되며 심리적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 사례는 사이버전의 목표가 단순한 정보 파괴가 아니라 국민의 판단력 약화와 사회적 무기력 유도에 있음을 보여준다. SKT 해킹 사건 역시 물리적 피해는 제한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인식 구조에 충격을 주고 공적 신뢰를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인지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무능하다”, “대기업은 보안보다 이익만 챙긴다”라는 식의 불신 프레임은 국민들이 체계적 대응을 요구하기보다 자포자기식 무관심에 빠지게 만들고, 이는 민주주의 체제의 내구성 자체를 위협한다. 기술적 피해보다 지속적이고 깊은 인식의 침투가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이유다.
기술 방어를 넘어, 인식 방어로
이 사건은 사이버전에 대한 대응 패러다임을 기술 중심에서 인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정부와 통신사는 사이버공격에 대한 기술적 대응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감정, 신뢰, 사고 흐름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IMEI는 유출되지 않았기에 유심 복제는 어렵다”라는 기술적 설명보다는, “피싱, 스미싱은 예방할 수 있으며 금융 OTP, 이중 인증으로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라는 생활 밀착형 안내가 국민 불안을 완화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사이버전은 이제는 군사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간 인프라 역시 국가안보의 최전선에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미 이를 인지하고 심리전·인지전까지 포함한 사이버 대응 체계를 구축해왔다.
미국은 사이버사령부(USCYBERCOM)를 중심으로 국가안보국(NSA), 중앙정보국(CIA), 국토안보부(DHS)와 정보 공유 및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위기 발생 시에는 SNS 플랫폼, 주요 언론 등과도 협력해 여론 조작과 인식 왜곡 차단에 나선다. 이를 통해 단순한 해킹을 넘어 사회적 혼란을 유도하려는 심리전적 시도에 실시간으로 대응한다.
이스라엘 역시 단순한 기술 방어에 머물지 않는다. 사이버국(National Cyber Directorate)은 평시에도 민간·군·정보기관이 통합된 전략 체계를 운영하며, 해킹뿐만 아니라 사이버 심리전·인지전 위협까지 포함하는 대응 프레임을 가동한다. 가짜 정보의 은밀한 확산이나 국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 조작 시도에 대해 조기에 식별하고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은 사이버전을 국가 전반의 인식 전쟁으로 인식하고 기술과 정보기관, 심리전 대응 역량을 결합해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를 미래전의 핵심 전력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보의 투명성과 신뢰 회복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체계 정비 △심리·인지전 대응을 포함한 전사적 사이버 위기 훈련 체계 구축 △사이버 리터러시 교육 강화를 통한 국민 역량 제고 등의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은 더 이상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다
▲송종석 영남이공대 사이버보안과 교수
사이버전의 시대, 국민 개개인은 정보 공간의 전투원이다. 단순히 계정을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정보 해석 능력, 가짜뉴스 분별력, 사회적 혼란에 동요하지 않는 정서적 내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이러한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국민은 정보 소비자의 위치를 넘어 인식 방어자로서의 역할을 자각해야 한다.
인식의 방어선을 놓치는 순간,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SKT 해킹 사건은 단순한 통신망 침투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심리적 균형과 인식 질서를 직접 겨냥한 공격이었다. 이번 공격을 단순한 정보 유출로만 인식한다면, 우리는 더 큰 타격을 자초할 수 있다. 공격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채 대응이 부실해지면, 상대는 이를 약점으로 판단한다. 그 다음엔 유심이 아니라 전력망과 금융 시스템, 군 통신망 같은 국가의 핵심 기반시설을 노릴 수 있다.
사이버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지만, 그 피해는 물리적 충돌보다 더 넓고 깊게 퍼질 수 있다. 국민의 신뢰와 인식을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디지털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되어야 한다. 방화벽보다 먼저 우리는 국민의 심리와 판단의 방어선부터 구축해야 한다.
[글_송종석 영남이공대학교 사이버보안과 교수·육군발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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