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보안] 인텔리전스와 스파이의 차이를 아시나요

2025-01-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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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리전스와 스파이, 합법과 불법의 사이에서

[보안뉴스 성기노 기자]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산업보안이 허술하면 한순간에 기밀이 털려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첨단기술 확보가 곧 경제발전의 척도가 되면서 세계 각국은 갈수록 산업보안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그 방비에 집중투자를 하고 있다.


[이미지=gettyimagesbank]

산업보안을 뚫는 방식은 해킹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가장 확실한 방식은 산업스파이의 활용이다. 산업스파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산업스파이는 대개 회사에 종사하는 임직원이 경쟁사나 외국 기업 등에 의해 ‘매수’되어 유출하거나, 전직 종업원이 이직하면서 경쟁사에 영업비밀을 통째로 넘기는 경우 등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산업스파이는 독자적인 자본과 기술에 대한 투자 없이 경쟁업체의 첨단기술로 뭉쳐진 정보를 한꺼번에 빼낸다는 점에서 ‘절도’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때 그 행위가 발각되면 ‘범죄’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나 국가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 ‘영웅’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인텔리전스(intelligence)와 스파이(spy)의 차이점은 앞으로 살펴볼 산업보안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인텔리전스와 스파이는 모두 정보 수집과 관련된 개념이나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양자의 사이에는 합법과 불법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존재한다.

인텔리전스는 정보 수집과 분석을 통해 국가나 조직의 안전을 보장하고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국정원을 비롯해 미국의 CIA, 영국 MI6 등과 같은 정보기관이 인텔리전스를 수행한다.

스파이도 인텔리전스처럼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하지만 밀행성이라는 보다 은밀한 영역에 있다. 스파이의 생명은 ‘들키지 않는’ 은밀성을 통해 ‘적’의 중요한 정보를 획득한다. 스파이는 주로 적의 군사적·정치적·경제적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다.

스파이는 위험한 존재
인텔리전스는 정보 수집뿐만 아니라 정보 분석, 보고, 전략 수립 등의 ‘정보 수집과 분석’의 포괄적 측면이 있는 반면, 스파이는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정보 수집을 들키지 않고 해내는 개인을 지칭한다. 이런 인텔리전스와 스파이의 개념 차이는 우리가 앞으로 산업보안을 어떤 자세로 대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선행사’이다.

스파이는 비밀정보원을 의미한다. 은밀하게 상대방의 비밀을 볼 수 있는 인물이며 하나의 정부에 속하여 다른 정부의 비밀정보, 특히 최근 들어서는 경제 산업정보와 기술을 입수하는 사람들이다. 스파이는 긍정적인 존재가 아니며 공동체와 기업, 사회의 안위를 손상시키는 위험한 존재이다.

그리고 스파이의 핵심은 비밀성에 있으며, 스파이 범죄활동의 목적은 상대방의 비밀정보를 손에 넣는 것이기 때문에 한 국가의 국내정치는 물론 경제와 기술무대 이면에서 비밀정보를 훔치며 암약한다(노연상 2022).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산업스파이’ 용어에서 산업에 인텔리전스를 사용하지 않고 스파이를 붙였다는 것은 산업보안의 영역이 기밀성과 밀행성을 요구하는 불법적이고 비밀스러운 활동임을 단어에서 이미 내포하고 있다.

굳이 ‘산업인텔리전스’라고 명명했다면 산업보안의 영역도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정보쟁탈전’의 세계가 되었겠지만 산업에 스파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을 보면 불법적인 기술 탈취나 절도라 하더라도 들키지만 않으면 용인되는 국가간의 치열한 산업 전쟁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굳이 우리의 역사로 보자면 고려말의 문익점이 한국 산업스파이의 ‘원조’쯤 되지 않을까. 문익점은 1363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목화의 실용성을 깨닫고 목화씨를 붓뚜껑 속에 몰래 숨겨 고려로 들여왔다고 전해진다(원나라에서 금수품목으로 지정한 것은 화약 등의 무기류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근거가 없다는 설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파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다소 걷히게 된다. 몰래 들여왔다는 것은 ‘절도’로서 도덕적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그 목화의 보급으로 조선의 의복 문화는 물론 상거래 관행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문익점은 스파이가 아니라 조선의 문명을 발전시킨 국가공헌자로 칭송된다.


[이미지=gettyimagesbank]

미국에도 ‘문익점’이 존재했다. 영국은 17세기 후반 국부 창출의 엄청난 원천이던 방직기 기술이 국외로 유출될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방직기 기술을 엄격히 통제했으나 결국 ‘산업스파이’의 창을 막지는 못했다.

1811년 미국인 캐벗 로웰은 스코틀랜드에 ‘잠입’해 당시 최첨단 산업이었던 카트라이트 방직기(Cartwright Loom) 기술을 빼내는 데 성공했고 그런 ‘절도’ 행위를 통해 미국은 19세기 중반에 경쟁국인 영국의 독점적 기술을 넘어서는 전기를 마련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스파이 활동의 미묘한 지점이 발견된다. 산업스파이가 타국의 첨단기술을 빼내 자국의 발전을 이끌고 사회를 문명화시킨 것은 인류의 공동번영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영국이 자국의 최첨단 방직기술을 미국에 ‘탈취’ 당한 뒤부터 미국에 경제적으로 서서히 추월 당해 오늘날까지 맥을 못 추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은 산업스파이의 부정적 인식과 경계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산업스파이의 암약은 인류 공동번영을 이끈 공헌자로서가 아니라 한 국가나 기업을 파멸로도 이끌 수 있는 위험하고도 치열한 산업전쟁의 산물임을 우리가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gettyimagesbank]

전 세계에서 산업스파이를 주도하는 나라로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인도, 이스라엘 등이 꼽힌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산업스파이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가로 인식된다. 미국 내 산업스파이의 약 50~80%가 중국과 관련된 것이라는 기록도 있다(윤종행 2017). 2024년 한국의 기술유출 25건 가운데 70%가 중국으로 갔다는 통계도 있는 것을 보면 이웃나라 중국을 요주의 국가로 삼을 만하다.

러시아의 산업스파이는 주로 해킹에 의하여 이뤄지기 때문에 그 근원지가 어디인지, 정부의 후원이 있었는지 등의 규명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의외로 산업스파이 활동에 ‘개방적’(?)인 국가로 꼽힌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산업스파이가 활동을 활발히 하게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인도는 산업스파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대한 법으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데, 기업의 14% 정도가 산업스파이의 피해를 본 적이 있지만 많은 기업들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 함께 세 번째로 가장 위협이 되는 산업스파이 국가로 분류할 정도다. 유대교 특유의 공동체 문화와 응집력으로 안보와 산업이 하나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이다 보니 산업스파이 활동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지적도 있다.

국정원, 해외 기술유출 방지에 역량 총동원
그렇다면 한국은? 국정원은 앞서 지적한 5개국 등과 함께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산업스파이 활동을 탐지하고 방비하는 우리의 믿음직한 방패다. 국정원의 주요 업무에는 방첩, 대테러와 함께 산업보안이 있다.

국정원은 ‘정보전쟁 시대, 산업스파이로부터 첨단기술을 지킨다’는 모토 아래 산업보안에 특히 힘을 쏟고 있다. 국정원은 2024년 1월 수사권이 폐지돼 다소 위축돼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해외 기술유출 방지와 관련 정보 수집에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하며 점진적인 혁신과 변화를 꾀하고 있다.

분단 상황인 우리 현실에서 국정원의 주 임무는 방첩과 대테러가 돼야 하지만 갈수록 ‘경제전쟁’이 첨예화되는 상황에서 첨단기술 보호와 그 유출 방지 또한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에게 상당히 중요한 미션이 되고 있다. 국정원에는 ‘인텔리전스’도 있지만 블랙요원으로 불리는 ‘스파이’들도 세계 각국의 음지에서 오로지 국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정보전쟁을 수행한다. 그들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성기노 기자(kino@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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