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장삿속’이라는 말에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뉘앙스가 들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윤을 꾀하는 장사치의 속마음’이라고 나와 있을 뿐인데도 사업가에게 ‘장삿속이 보인다’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 모욕에 가깝다. 돈을 자유롭게, 그리고 정당하게 버는 것이 누구나에게 허락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 단어는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입을 추구하는 범죄 행위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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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이라는 꾸밈씨도 비슷한 신세다. 원래는 ‘정치와 관련된’이라는 단순한 뜻을 가졌을 뿐인데 그간 모든 정치인들이 예외 없이 보여준 행동이 그러해서인지 ‘정치적이다’라고 하면 ‘일관된 기준 없이 처지에 따라 이리 저리 영악하게 움직인다’ 즉, ‘간사하다’ 정도의 뜻으로 실생활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건조한 사전적 정의와 일상 속 용례에 괴리가 있는 표현들은 찾아보면 꽤 된다.
이 괴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년 전 판결난 조영남 씨 대작 사건에 오는 대중들의 일반적인 반응에 힌트가 있다. ‘일반적으로’ 화가라고 하면 손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 우리 비전문가들은 생각하고 또 기대한다. 그러나 이미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 집단에서는 생각과 아이디어만으로도 화가가 될 수 있고, 손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부차적인 능력이라고 합의를 봤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썩 공감이 가질 않는다. 바로 그 괴리. 딱히 반박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선뜻 동의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괴리의 정체는 진심에 대한 인간의 추구 본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면 다 괜찮은 것이 현대 사회가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관이지만, 그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공허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이나 서비스에 대해 객관적이며 진심으로 평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고, 내 이상을 실현해줄 것만 같았던 정치인이라면 당리나 개인의 이득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진심어린 정치를 하리라 기대하고, 화가라면 자기 생각을 자기 손으로 직접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으레 받아들이게 되는 건, 사람은 진심에 항상 목마른 존재라서다.
사물인터넷이 그야말로 폭발하고 있는 시대에 이 진심에의 추구는 더 많은 형태로 이슈화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각종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들이나 장비 제조사들이 ‘우리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기능을 제공하는 게 아니다’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생활의 혁명이나, 인간 편리의 추구, 생명 연장 등 커다란 틀에서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고 꾸준히 설파해온 것이 드디어 심판대에 오를 때가 임박했다고 예상한다. ‘당신이 정말 환자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업인가?’ ‘거짓이 없는, 진실된 정보의 배포와 유통을 위해 당신 기업이 정말로 헌신하고 있는가?’ 소비자들이 물을 차례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신의 그 말들, 진심이었나?’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것에 대해 기업이나 서비스 제공자들은 어떻게 답해야 할까? 얕은 수에 익숙한 이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세치 혀를 놀리겠고, 그래도 어느 정도 정직한 자들은 상품과 서비스의 질로서 답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진심을 증명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패치다. 인간의 건강을 위한다는 장비 제조사가 취약점 정보를 제보 받았을 때, 제보자를 오히려 해킹 범죄자라고 노발대발 비판하며 고소를 준비하는 경우(가상의 사례가 아니다)와, 감사하며 취약점 패치를 개발하는 경우, 어느 쪽에 소비자들은 진심을 느낄까?
수년 전 독일의 한 대학에서 서명된 PDF 파일을 조작하는 해킹 기법을 연구해 발표한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PDF 뷰어 프로그램들에서 이 해킹 기법이 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들은 각 PDF 개발사들에 연락을 취했다. 이런 저런 위험성이 있으니 패치를 하라고 권하기 위해서였다. 패치 없이 연구 성과만 발표한다면 뷰어 사용자들의 위험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수많은 개발사들 중 연구 발표일 이전에 패치를 내놓은 곳은 딱 세 군데였다. 최소한의 진심을 갖춘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게 충격이다. 다행인 건 이러한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패치를 개발해 내는 속도가 전체적으로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안전한 가정용 라우터를 만든다는 각종 회사들의 제품을 분석했을 때, 대부분 공짜로 구할 수 있는 오래된 OS를 사용하고 있었고 비밀번호 설정 규정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는, 라우터 산업 전체에 대한 혹평 가득한 보고서가 나온 적도 있었다. 그 보고서에서는 그나마 나은 세 회사가 꼽히고 언급됐는데, 이 세 회사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건 ‘패치’ 항목에서였다. 패치가 비교적 빠르고 신속하다는 게 큰 강점으로 평가됐던 것이다. 취약점 하나 없는 완전무결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면, 패치라도 빨라야 한다는 게 이 보고서가 가진 숨은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혹여 패치가 귀찮은 작업이라고 느끼는 회사가 있다면 사물인터넷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에 생각을 바꾸기를 권한다. 패치는 귀찮은 A/S의 연장이 아니라, 당신의 진심을 가장 손쉽고 설득력 있게 공표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그 진심이라는 게 애초에 있다면 말이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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