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2024년 11월 4주차 <보안뉴스>가 선정한 키워드는 ‘Next Phase’이다. 중동의 짧은 휴식이나, COP29의 종결이나, 트럼프의 전쟁 선포나, 프랑스의 ICC 체포 영장 거부나 모두 다음 단계를 위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시원치 않은 느낌이 난다. 평화나 환경이나 무역 보호주의나 국제 기관들이 가진 본질적 한계까지는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휴전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상호 휴전에 합의했다. 레바논 시민들은 크게 환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레바논 고위급 인사들 역시 대다수 휴전이 빨리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한 레바논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휴전이 효력을 발휘하기 전날 밤, 마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충돌하면서 레바논에서만 3500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이번 휴전은 60일 동안만 지속될 예정이다. 일단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동의한 게 딱 거기까지다. 그 후에는 다시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 휴전이라기보다 휴식에 가까운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중재자들 사이에서의 분주함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휴식기를 꼼꼼하게 활용해야 60일 이후 더 장기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60일 동안 이스라엘이나 헤즈볼라 어느 한 쪽이라도 휴전 협약을 어기지 않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 양측과 더 심도 깊은 대화를 해 이후 더 긴 기간의 휴전에 동의하게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즉 이번 주 휴전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중간 정산’ 정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은 더 바빠졌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이 기세를 몰아 가자지구의 사태에도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고 알렸다. 헤즈볼라와도 휴전을 했으니 하마스와도 휴전을 해보지 않을 거냐고 이스라엘을 재차 설득하려 한다는 것이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휴전에 동의한 직후 바이든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움직일 때”라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인질을 석방시킬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통해 사이가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미국-이스라엘의 동맹 관계가 위태로워진 건 아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휴전에 동의했다고 해서 중동 지역에 갑자기 평화가 찾아오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도 60일을 채우지 못하고 깨질 거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적개심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는 ‘팔레스타인(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을 이스라엘 영토로 보느냐, 독립 국가로 인정하느냐’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휴전은 더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둘은 여러 조건을 휴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는데, 상대가 도무지 찬성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한 쪽은 독립이라고 하고, 다른 쪽은 영토 분리라고 하니 입장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2. COP29 이후 플라스틱 국제 회의
기후 변화 대책 회의인 COP29가 드디어 종결됐다. 예정된 시간보다 33시간이나 늦게 결론이 났다. 그만큼 회의가 격렬하게 진행됐고, 세계 지도자들 간 의견을 좁히는 게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만큼 아직 모두가 기후 변화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회의는 지구 온난화에 맞서기 위한 자금을 어떻게 확보할까, 를 다루고 있었기에 더 첨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돈 문제 앞에 민감해지지 않을 사람(나라)은 없다. 결국 선진국들은 매년 3000억 달러를 개발 도상국에 지원한다는 선에서 합의했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그러고서는 회의가 끝났고, 모두가 집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숨도 돌릴 틈 없이 다시 한국 부산에 모였다. 또 다른 환경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175개국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플라스틱 공해와 관련하여 협약에 이르기 위해 논의를 시작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 2년 동안 이어져 온 플라스틱 관련 국제 회의의 ‘최종판’으로, 참가국들은 이번에 명문화 된 합의문에 이른다는 목적으로 회의에 임하고 있다. 기한은 이번 주 일요일까지다.
하지만 COP29에서도 그랬듯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만 나오고 있다. 플라스틱이 지구를 아프게 하고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기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면 가장 먼저는 플라스틱 용품의 생산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반대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대형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과, 그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석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가 심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참가국 대표들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야기 하고, 논쟁을 벌이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중이지만 헛돌기만 하는 대화의 쳇바퀴를 빠져나갈 구멍은 딱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COP29가 수년 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아직도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다음 단계의 목표인 플라스틱 역시 획기적으로 줄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3. 트럼프의 무역 전쟁 선포
진짜 대통령이 되기 약 두 달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가 벌써부터 자신의 정책을 발표하기에 바쁘다. 가장 처음 트럼프가 예고한 것은 무역 전쟁이었다. 대상이 되는 나라도 콕 짚었다. 바로 인근 국가인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라이벌 국가인 중국이다. 트럼프는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부터 수입되는 물품들에 전부 25%의 관세를 적용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이걸 막는 유일한 방법은 멕시코와 캐나다 정부가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획기적으로 통제하는 것 뿐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그러면서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 오묘하다. 트럼프는 “캐나다와 멕시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할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묘하게 현 정권을 치켜 세우기도 한 것이다. 멕시코와 캐나다의 수장은 곧바로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심도 깊은 통화를 했다고 발표했다. 그 대화 내용과 결과가 어쨌든 이미 미국과 그 주변국을 움직이는 건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음 시대의 미국이 이끄는 세상은 이미 도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한편 트럼프는 중국을 놓고 35%의 관세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전에 백악관에 있었을 때도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서슴치 않았었다. 따라서 그가 중국을 따로 언급하지 않았어도 이미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중국은 캐나다나 멕시코가 앗 뜨거 하면서 트럼프와 통화한 것과 달리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그럴 걸 다 알고 있으며 큰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이렇게 전쟁을 선포하면서 사용한 표현이 하나 더 있다. “취임하는 첫 날부터”가 그것이다. 정말로 대통령이 된 그가 백악관에 들어서자마자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에 25~35%의 관세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말 한 마디로 무역 관세를 마구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만큼 이들 국가와의 무역 관세에 그가 시급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 되며, 따라서 세계 무역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차기 세계 경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상업계는 걱정 반 근심 반이다.
4.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 영장
얼마 전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스라엘의 총리 네타냐후와 전 국방부 장관인 갈란트, 그리고 하마스 사령관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국제 기관이긴 하지만 사법권이 없어 이 체포 영장은 실질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나마 ICC의 회원국들에만 미약한 효력을 발휘한다. 그 효력이란, 회원국들은 체포 영장을 가지고 ICC가 원하는 것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나마도 강제력이 있는 건 아니다. 회원국들은 네타냐후나 갈란트가 자국 영토에 나타나는 순간 체포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게 제대로 지켜진 적이 최근에는 없다. 참고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회원국이 아니다. 그러므로 ICC의 체포 영장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ICC의 체포 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래서 푸틴은 ICC의 그러한 발표 이후 한 동안 외국에 나가지 않았었다. 팬데믹 기간과 묘하게 겹치는 바람에 푸틴과 러시아 정부는 “코로나 때문에” 외국으로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는데, ICC의 결정도 적잖은 고려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당시 “ICC의 결정에 따라 푸틴 대통령을 체포할 경우 러시아와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전 세계에 발표하기도 했었다. 당시 남아공은 “푸틴이 우리나라에 와도 체포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ICC의 권위를 땅에 떨어트린 바 있다.
그리고 이번 주 프랑스가 남아공의 뒤를 이어 ICC에 망신을 줬다. 네타냐후 총리가 프랑스로 와도 체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가 사실상의 국가 원수로서 가지고 있는 면책권 때문이라고 프랑스는 설명했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ICC의 체포 영장은 별 의미 없으니 네타냐후는 자유롭게 여행을 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한 건 아니다. 오직 “우리나라는 면책권을 우선시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 뿐이다. 프랑스는 ICC의 회원국이다. ICC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판이 나오고 있다. ICC가 가진 지위와 권한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며 ICC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고, 푸틴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을 때는 별 말 없던 프랑스가 갑자기 네타냐후에 대해서는 반기를 드는 건 이중성일 뿐이라고, 프랑스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는 “여전히 ICC의 결정을 존중하고, 회원국으로서의 임무를 다 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왜 이번에는 예외인지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최근 프랑스는 미국과 함께 이스라엘-헤즈볼라 중재에 나선 바 있다. 중재가 성공한 후 레바논 총리는 프랑스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었다. 그런 후 미국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중재를 재시작하는 중이다. 프랑스도 이 중재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재를 위해 프랑스가 잠시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것일 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랬든 저랬든, 다음에 ICC가 체포 영장을 발부했을 때 또 어떤 국가가 거부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황이 된 것도 사실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