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이만종 대테러안보연구원장] 2018년 5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이스라엘은 기쁨의 환호가 가득하지만 팔레스타인의 분노와 강경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 중동은 화약고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은 양상이다. 예상되는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대사관이전의 결정적 배경은 미국경제와 정치를 움직이는 정보기관과 유태인 파워다.

[이미지=iclickart]
국가정책결정과정에서 선출되지 않은 군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권력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는 조직을 ‘딥 스테이트(Deep state)’ 또는 ‘그림자 정부┖ 라고 한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사용되는 이 용어가 최근 미국과 자유국가에서 통용되고 있다. 대중에 의해 선출되는 권력은 임기에 따라 반복하지만, 정부 내에서 어젠다를 장악한 자들은 장기간 똑같은 자리에서 실제로 국정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어있는 실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민간 분야의 군산복합체, 정부 분야의 국방부, 정보부, 국무부, 법무부 등 실무자급 직업관리들이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군산복합체는 언론, 지식계층, 은행 등과 밀접하게 융합되어 큰 괴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중 가장 큰 ‘딥 스테이트’의 역할은 CIA와 NSA 등 정보기관이 담당한다. 이들 기관의 첩보와 정보는 미국정부와 대통령의 외교와 정책결정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즉, 안보기관(Security Apparatus)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안보와 첩보 조직들은 비록 정권이 임기가 끝나서 교체되어도 업무의 연속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 다음 지도자의 국가정책을 보좌하게 된다. 대부분 새롭게 조직되는 정부기관의 수장들이 전문성이나 논리를 갖추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처럼 강한 스타일의 대통령이더라도, 정책결정은 지도자 한사람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정당, 관료, 재계의 3자가 서로의 이해관계에 입각해 협상, 타협하는 프로세스에서 결정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정보기관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된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 맥락에서 ‘딥 스테이트’는 정부가 바뀐다고 하여도 실질적인 국가의 정책 기조가 계속 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더구나 전쟁과 테러와 같은 분쟁의 조정에도 깊이 관여한다. 국제테러단체인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탄생과 성장, 카슈미르 분쟁, 9·11테러 뒤에서 숨어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오사마 빈라덴 은신 등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과 모두 깊은 연관이 있는 조직으로 주목받는 곳이 파키스탄 정보부(ISI)다.
파키스탄 정보부(ISI)는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무장투쟁을 했던 무자헤딘을 키웠고, 이슬람국가(IS) 탄생 등에도 일조했다. 또한 인도와의 카슈미르 분쟁에서도 파키스탄 극단주의자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크로스 보더(Cross Border) 테러’를 감행할 수 있었던 배후조정 역할도 했다. 리더십이 불안한 파키스탄에서 실질적인 국정 운영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작용하는 기관이다. 비록 CIA가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으로 세계 최고·최대를 자랑하지만, 강대국이 아닌 정보기관 중 ISI만큼 명성을 떨치는 곳도 없다.
이처럼 정보기관이나 정부 관리들이 비밀리에 국가 정책을 조정하고 있는 것은 모든 국가의 공통적 현상이기도하다. 한국의 경우 최근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이 해외정보수집에 역량을 집중해 남북과 북미정상회담 성사에 큰 기여를 했다고 발언한 것은 음지에서 일한다는 국정원의 순기능적 작용이다. 그래서 최근 논의되는 국가정보원의 개혁방향도 국민의 신뢰를 받고, 일탈과 남용이 없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국가안보를 지키는 정보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 할 수 있는 방안도 강화해야한다.
그러나 딥 스테이트는 정보기관만 해당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농단을 자행함으로서 정권의 교체까지 가져온 사례이다. 결국 지도자는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도록 선출된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가 임기 동안 숨어있는 권력으로서 개인과 기관들의 접근과 남용을 차단하고 헌법과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이만종 대테러안보연구원장·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manjong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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